‘벤치 싸움’에 선수만 물먹는다
▲ 구단이 잡음에 휘말린 경남 FC 선수들. | ||
가뜩이나 독일 월드컵 이후 살아날 줄 모르고 있는 K-리그에 우울한 소식만이 들려오고 있다. 진원지는 경남 FC. 대표이사와 단장 등 경영진들이 대거 물러나면서 한바탕 회오리가 일었다. 구단주인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경영진들의 일괄 사표를 받은 뒤 사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 측이 강하게 반발, 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것.
대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염홍철 전 시장이 단체장 선거에서 낙선하자 강효섭 대전 구단 사장을 퇴진시켰다. 시장이 인사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전 구단 사장의 동반 사퇴는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의 장래가 걸린 공적인 업무까지 영향을 받았다. 대전의 스타플레이어 이관우가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려다 강 사장의 퇴진과 함께 ‘없던 일’이 돼 버린 것. 시민 구단을 표방했던 두 프로팀에서 벌어진 사건을 살펴본다.
사건의 발단은 7월 5일 경남 FC의 구단주인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박창식 대표이사(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장) 전형두 경기단장(경남도축구협회장) 김충관 경영단장(새마을금고이사장)의 사표를 일괄 수리한 것이다.
김 도지사는 연임에 성공한 뒤 경남도 출자 회사들의 경영 슬림화 차원에서 임원들의 일괄 사표를 받은 뒤 재신임을 물었다. 임원들은 관례적인 일인 줄 알고 사표를 제출했다가 경남 FC를 포함한 두 곳 경영진의 사표가 수리됐다.
경남도 측은 창단 7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방만한 경영과 인사 전횡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표 처리된 대표이사 등은 토사구팽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남도가 내세운 방만한 경영의 이유는 판공비. 무보수 명예직으로 알려진 대표이사와 단장들에게 매달 800만 원과 500만 원이 판공비조로 지급됐다. 경남 FC 구단 소식에 정통한 A 씨는 “처음에는 500만 원, 300만 원이었는데 어느 순간 슬그머니 판공비를 올렸다”고 밝혔다. 구단 직원들조차 대표이사와 2명의 단장이 창단 구단을 위해 무보수로 일할 줄 알았다가 판공비를 요구하자 어이없어 했다. 사무국장은 몇 번이나 판공비 지급에 대해 반대 의사를 개진했으나 무시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남 FC는 창단 초기부터 직원 채용 문제로 시끄러웠다. 말은 공채였지만 사실상 각기 다른 인맥을 타고 들어와 내부 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 편이 갈려 보이지 않는 알력으로 서로 견제했다.
대표이사 측은 경남도의 주장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박창식 대표이사는 7월 14일 이사회에서 “김태호 도지사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 창단을 위해 뛴 공신들을 이렇게 팽시켜도 되냐”고 거세게 반발했다. 구단주인 도지사가 사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통과라는 형식이 필요하지만 14일 이사회는 파행 끝에 정회됐다.
대표이사 측은 경남도가 창단 초기부터 구단 경영진을 무시했다고 도지사를 성토했다. 이들은 경상남도 문화관광국이 비선라인을 통해 구단의 경영과 운영 등에 대한 자료를 보고받는 등 내부 분열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부군수 출신의 사무국장이 구단에 대한 모든 정보를 문화관광국에 보고하는 등 사실상 단장보다 높은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고 분개했다.
김태호 도지사가 대표이사와 2명의 단장의 사표를 받을 때 사무국장의 사표까지 받았다가 사무국장만 반려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사무국장은 차후 대표이사에게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
경남도 관계자는 “처음부터 완전히 칡뿌리처럼 얽혀있었다. 이번에 단칼에 경영진들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창단 때부터 2명의 단장을 둘 필요가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아예 우리는 알력과 갈등이 있다고 대놓고 선전한 것밖에 더 되느냐”고 덧붙였다.
심판 판정에 대한 개입 여부를 놓고 책임 추궁을 한 것이란 얘기도 무성하다. 경남 FC가 심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 구단 관계자는 “솔직히 심판에 대한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심판들이 경남 구단과 알고 지냈다고 해서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 이관우 | ||
대전 시티즌은 염홍철 전 시장이 단체장 선거에서 낙선하자 강효섭 대전구단 사장을 퇴진시켰다. 그러나 강 사장의 퇴진은 대전의 대표적인 스타 이관우에게 불똥이 튀었다.
대전은 강 사장 재임 시절 이관우를 수원 삼성에 이적시키기로 의견 접근을 봤다. 이관우 역시 수원행을 간절히 희망했다. 그동안 대전과의 의리를 생각해 이적을 머뭇거렸지만 내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기 때문에 도의적인 부분에서도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대전은 강 사장 퇴임 후 이관우 이적 논의 자체를 무효화시켰다. 수원 삼성에는 이적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통보했다. 그러자 이관우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관우는 “서운한 마음에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훈련까지 거부하는 등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어려운 구단 사정을 생각해 7년간 대전에 남아있었는데 자신의 진로를 막아선 대전의 처사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김덕기 축구연구소 사무총장은 “구단 간의 이적 협상은 공적인 일이다. 사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논의하던 사안을 무효화시키는 일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이적에 대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구단이기 때문. 이관우가 만약 시민구단이 아닌 타 구단에서 뛰고 있었다면 이런 황당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남 구단의 모 인사는 “시민구단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이관우도 희생자일 뿐”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천유나이티드를 보라. 시민구단도 매끄러운 운영으로 좋은 성적과 흑자 경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적당한 견제와 책임이 전제된 자율이 적절하게 혼용돼야 시민구단의 성공이 보장된다”며 경남과 대전 사태를 안타까워했다.
변현명 축구전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