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해진 분위기 ‘파친코 금지령’
▲ 선동렬 삼성 라이온즈 감독 | ||
요미우리 신문이 주최하는 코나미컵의 당초 설립 목적은 우승팀 간의 친목 도모였다. 각국 리그의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두 번째 대회에 들어와선 성격이 바뀌었다. 마치 국가대항전과 같은 분위기가 돼버렸다. 올 초 WBC 때 도쿄돔의 아시아예선서 맞붙은 4개 팀이 9개월 만에 다시 만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1회 코나미컵 때 삼성은 출발부터 해프닝을 겪었다. 선수단 버스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일본 하네다로 떠나기 전 인원 점검을 했는데 한 명이 비는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투수 박석진이 없었다. 잠시 후 헐레벌떡 출국장으로 뛰어 들어온 박석진의 한 마디가 주위를 뒤집어지게 했다. “사람이 자고 있으면 깨워야지, 그냥 가냐!”
김포공항 도착 순간 버스 창문에 기대어 자고 있던 박석진이 내리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을 모두 토해낸 버스가 그냥 출발해 버린 것이다. 구단 버스가 김포공항을 막 벗어날 무렵, 주위가 허전해 잠에서 깬 박석진이 급하게 되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여차하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이번 2회 코나미컵에서도 해프닝은 있었다. 작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강도가 센 해프닝들이었다.
▶설마 오승환이 술을?
올 한해 WBC 출전과 정규시즌, 한국시리즈에 이어 코나미컵까지 강행군하고 있는 오승환은 최근 피로가 쌓여서 고생하고 있었다. 이런 참에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앞좌석을 붙잡고 일어서다가 때마침 비행기가 푹 가라앉는 ‘터뷸런스’가 겹치면서 어지러움을 느껴 뒤로 넘어진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는 당시 기사화가 됐고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건이 발생할 당시 오승환 주변 좌석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넘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지켜본 승객들 입장에선 충분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멀쩡한 야구 선수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국시리즈 2연패 이후 아무래도 삼성 선수들이 술 한 잔 할 기회가 많지 않았겠냐는 추측까지 곁들여졌다. 잘 모르고 “쯧쯧”하면서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승환은 평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또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도 선수단 축승 파티 외에는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 코나미컵 이전에 대구에서 훈련하다가 며칠 연속 코피를 쏟을 만큼 피로가 쌓였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는데 자칫 오해를 살 뻔했다. 유명한 선수는 어디서 쓰러질 때도 폼 나게 털썩 하고 넘어져야지, 절대 비틀거리면 안 된다고나 할까.
▶“도박하지 마!”
프로야구 선수들이 일본에서 경기를 치를 때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파친코장이다. 술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는 데다 달리 여가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선수들에게 파친코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다. 물론 돈을 많이 잃으면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도 있지만.
이번 코나미컵에서 삼성 선동열 감독은 도착 첫날까지는 선수들의 파친코 출입에 신경쓰지 않았다. 도쿄돔에서 5분만 걸어가면 꽤 큰 파친코장이 있는데 선수들은 도착 첫날부터 공식 리셉션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붕 뜨자 파친코장으로 대거 몰려갔다.
선 감독은 일본 주니치에서 뛸 때 파친코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말 삼성 감독에 취임한 뒤에는 “술 마시는 것보다야 파친코가 차라리 낫다. 다만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 오승환(왼쪽), 이승엽 | ||
선 감독 입장에서도 의식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작년엔 놀러온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달라졌네”라는 선 감독의 말 속에서 이 같은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최소한 결승전에는 올라야 하는데 대만의 라뉴 베어스 전력이 영 심상치 않았다. 자칫 예선 3경기서 2패를 해 탈락하면 한국시리즈 2연패고 뭐고 망신살이 뻗치게 된다. 선수단에 어느 정도 긴장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파친코장 출입 금지는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승엽의 잠행 이유는?
이번 코나미컵에서 요미우리 이승엽이 삼성과 니혼햄의 예선 경기 때 KBS 생중계 보조 해설요원으로 활약했다. “쩡말~” 하는 그의 사투리 섞인 평소 말투 때문에 “과연 해설을 편안하게 해낼 수 있을까”하는 주변 우려도 있었지만 이승엽은 첫 경험 치고 상당히 훌륭한 말 솜씨를 뽐냈다. 특히 3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경험을 통해 해박한 정보를 곁들인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번 코나미컵 기간에 철저하게 잠행을 했다. 삼성 선수단의 숙소인 도쿄돔호텔에 거의 매일 들렀지만 늦은 시간에 잠깐씩 방문했을 뿐이다. 게다가 한국 언론과의 접촉을 되도록 피했다.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최근 요미우리와 거액의 재개약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선수들의 연봉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일본 언론에 등장하는 선수들의 연봉은 거의 대부분 취재진이 지인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통해 넘겨짚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선 이승엽이 요미우리와 4년간 최대 30억 엔(약 240억 원)의 초고액 계약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역시 일본 언론의 현지 보도를 그대로 받아 쓴 경우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코나미컵에서 만난 이승엽은 “그 금액은 일본 언론의 소설일 뿐이다. 실제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좋은 대우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 수치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해준 셈이다.
제아무리 고액 연봉자가 많은 요미우리라 해도 선수 간 위화감이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일부 일본 매체에서 “이승엽에게 너무 큰 돈을 안겼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승엽 입장에선 구단측 방침도 있는데다 다른 선수들과의 위화감 문제 때문에 절대 정확한 연봉을 밝힐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과 자꾸 접촉하다보면 아무래도 친분이 있고 하니 어쩌다 무심코 실제 금액을 말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한동안 한국 언론을 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다른 이유는 친정팀 삼성을 배려하는 입장도 있었다. 이승엽은 2003년 56호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에도 자신의 기록 문제 때문에 어수선해진 덕아웃 분위기로 인해 팀 동료들이 피해 받는 걸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이번 코나미컵의 주인공은 삼성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엉뚱하게 자신에게 쏟아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이승엽은 잠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