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 짜깁기는 기본, 부풀리기 황당 공약에 유권자들 냉소
주요 3당 20대 총선 공약집. 출처 = 각 당 홈페이지
여야는 지난달 말 정책 공약집을 발간해 공약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내일을 살리는 열정 앞으로!’, ‘누구나 행복한 희망 하나로!’, ‘안전하고 든든한 대한민국 미래로!’라는 3대 분야로 총 ‘180개’의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더불어 성장’, ‘불평등 해소’, ‘안전한 사회’ 3대 분야로 총 ‘151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당은 ‘미래’, ‘혁신’, ‘정도’ 3대 비전으로 공약 ‘111개’를 제시했다.
각 당이 대표적으로 내세운 공약은 역시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복지’ 부분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앞선 선거에서 이미 등장했거나 이미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공약이 재탕된 경우가 상당했다.
새누리당의 경우 ‘보육 및 교육’ 부분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중 세부 공약으로 ‘학부모 학교 참여 휴가제’, ‘돌봄 서비스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고교 무상교육’ 등은 대표적인 ‘재탕’ 공약인 것으로 파악됐다. 학부모 학교 참여 휴가제는 올해 초 교육부 업무계획에 이미 들어있으며 돌봄 서비스와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는 이미 지난 총선에서 내세웠거나 앞선 정부에서도 추진한 공약들이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후보)이 내세운 공약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고교 무상교육’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핵심 공약으로 출범 후 여러 차례 추진됐지만, 재원 조달 문제로 사실상 무산됐다. 이밖에 이번 총선에서 내세운 ‘초등 돌봄 교실 확충’ 공약 또한 지난 대선에서 제시됐지만 정부 출범 후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무산됐음에도 또 들고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여야 공약은 12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캠프 공약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더민주의 경우 ‘재원 마련 방안’이 상당히 부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공약이 0세부터 5세까지의 보육과 교육을 100%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재원은 전액 국고에서 부담하겠다고 내세웠지만 구체적이진 않다.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 및 체험 학습비 지원 공약도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재원조달 방안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민주 역시 새누리당에서 내세운 ‘고교 무상교육’을 내세워 ‘재탕’ 논란이 제기된다. 한국교총 한 관계자는 “고교 무상교육을 위해서는 재원이 3조 원 가까이 필요하다. 이미 한 차례 폐기했음에도 또 다시 들고 나온 여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3당인 국민의당은 복지 부분에서 상당수 공약이 급조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의당이 대표적으로 내놓은 ‘출산휴가 기간과 육아휴직급여 확대’,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아이 돌봄이 서비스’, ‘시간제 보육서비스’ 등은 이미 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을 되풀이 하는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총선의 또 다른 키워드는 ‘노령층’이다. 사상 최초로 60세 이상의 유권자 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총선 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이에 각 당은 앞다퉈 노인 공약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도 재원 마련과 더불어 ‘포퓰리즘’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노인 공약만 200여 개를 발표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대표적으로는 노인빈곤계층(소득 하위 50%) 기초연금 월 40만 원까지 인상, 노인일자리 매년 10만 개 창출로 총 ‘78만 7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실현 방안으로 노인친화기업 지정, 공공기관 노인생산품 우선 구매 권장 등에 그쳐 구체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56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재원조달 방안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밖에 ‘노인복지청 신설’, ‘치매 노인에 대한 국가 지원 강화’ 등 공약은 지난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의 공약을 그대로 재탕했다.
더민주의 대표 노인공약은 ‘기초연금 인상’이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최대 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는 방안에서 30만 원씩 일괄 지급하도록 변경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선 역시 모르쇠다. 전문가들은 공약을 이행하긴 위해선 연간 6조 원의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더민주 정책분야 관계자는 “여러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김종인 대표가 밀어붙인 공약”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을 만들기도 했다. 여야를 넘나들어 연금 비용을 좀 더 늘린 셈이다.
국민의당 역시 노인 공약에서 재탕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의 대표 노인 공약은 노인 일자리 사업 수당 40만 원(현행 20만 원)으로 인상, 일자리 사업 참여 기간 12개월(현재 최장 9개월)로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이들 공약은 이미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서 노인 일자리 급여를 단계적으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던 대선공약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야가 무작정 내놓은 공약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왼쪽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오른쪽은 새누리당 강봉균 선대위원장
무엇보다 표를 의식해 튀어나온 ‘무리수 공약’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명확한 대책 없이 일단 질러 보자는 식의 공약 발표다. 새누리당은 ‘최저임금 인상 공약’, 더민주는 ‘국회 세종시 이전’, ‘삼성 미래차 산업 광주 유치’, 국민의당은 ‘국민연금을 활용한 청년희망임대주택 공급’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의 최저임금 인상 공약은 지난 3일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가계 소득 순위의 하위 25%까지 높이겠다”며 목표치로 ‘9000원’을 거론하면서 제시됐다. 하지만 다음 날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이 “최저 임금 9000원을 공약한 게 아니라 9000원까지 올라가는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부인하면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더민주는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공약을 준비했다가 지난달 말 철회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국회를 이전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에 국회 분원을 세종시에 설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밖에 ‘삼성 미래차 산업 광주 유치’ 공약은 지난 6일 김종인 대표가 발표했다가 삼성 측이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 ‘무리수’ 논란이 일었다.
국민의당은 국민연금을 활용해 임대료 50% 수준의 청년희망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공약을 내놨지만 국민연금을 주택건설에 활용하고 그 대상이 청년에만 국한 됐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연금까지 총선용 ‘백지수표’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렇듯 여야 총선 공약들의 상당수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각 당이 내세운 공약을 실천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각 당의 공약 예산 추계에 따르면 더민주가 147조 9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새누리당은 총 56조 원, 국민의당은 46조 2500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총선에서 제기된 각 당의 공약을 모니터링 해온 경제정의실천연합 한 관계자는 “재원 마련에 대한 계획은 여야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며 “대체적으로 새누리당의 공약은 박근혜 정부의 기존 정책을 옮겨놓은 수준으로 집권 여당의 공약으론 부족하다. 더민주는 재정마련 대책 및 단계별 추진 전략 등이 미흡하며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의견을 절충해 나열하는 경향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