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의 꽃’ 유격수로 진화중임다~
▲ 3루수 2루수를 거쳐 유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정근우.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그는 뼈아픈 실책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성장해 가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수비능력시험이라도?
정근우의 이번 시즌 목표는 타율 3할, 출루 4할, 실책 10개 이내다. 하지만 이를 어째? 5월 29일 현재, 정근우의 실책은 이미 11개다. 그중 결정적인 실책 하나가 터진 2007년 5월 20일, 인천 현대전.
1회 선두타자로 나선 정근우가 안타로 출루, 도루까지 성공시켜 선취득점을 올린다. 2 대 0으로 앞서가던 9회 2사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현대의 4번 타자 브룸바의 평범한 땅볼이 유격수 정근우의 가랑이 사이로 빠진다. 9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했지만 브룸바에 이어 타석에 들어선 현대의 송지만이 투런 동점 홈런을 때린다.
“앞이 캄캄하더라구요. 진짜 울 뻔했다니까요. 작년에 광주에서 기아랑 경기할 때도 3 대 2로 이기고 있는데 7회 말 2사 만루 기아공격 때 제가 공을 놓쳐가지고 졌잖아요. 그때 생각이 나서 미치겠더라구요.”
연장 10회. 정근우가 타석에 들어선다. 경기 내내 봐온 현대 선발, 캘러웨이의 공 하나가 실투로 들어온다. 정근우가 때린다. 홈런 치는 1번 타자, 정근우 생애 첫 번째 끝내기 홈런이다.
“기쁘지 않았어요.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그냥 살았다 싶었죠. 사실 유격수가 수비의 꽃인데 이때까지 해오던 2루수보다 던지는 거리가 멀다 보니까 좀 부담스러웠나 봐요. 캠프 때부터 아픈 어깨도 아직 100%가 아니지, 잘하고는 싶지, 그러니까 덤벙거리다가 실책으로 이어지는 거죠. 계속 내보내주는 김성근 감독님께 죄송해서라도 찬찬히 잘해야 되는데 솔직히 저는 아직 2루수가 조금 더 좋거든요.”
‘수비 자세 스캔들’
올 시즌 내내 정근우의 수비자세가 도마 위에 올라있다.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할 때 2루 베이스 커버를 하면서 주자가 머리부터 들이대는 방향으로 왼쪽 다리를 갖다 대는 자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근우의 항변이다.
“2루수 볼 때는 그런 적 없는데 올해 유격수를 보다 보니까 포지션이 완전히 몸에 익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저도 도루하는 입장에서 다른 선수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TV중계 보니까 다른 팀 선수들도 공이 옆으로 새면 다들 그러던데. 아무튼 더 조심하고 연습해야죠. 저는 지금 유격수로 진화 중입니다.”
프로 데뷔 3년차인 정근우는 지난 4월 29일, 시즌 중에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이대수와 친한 사이다. 나주환이 두산에서 오고, 이대수가 간 것이다. 그 후 5월 19일, 3루수 최정이 손가락을 다치자 SK는 조중근을 현대에 주고 채종국을 데려왔다.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게 프로의 세계다.
“어차피 야구는 트레이드로 이뤄지는 거예요. 여기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전력상 다른 팀에선 잘할 수 있으니까 선수도 팀도 서로 잘되자는 취지로 하는 게 트레이드잖아요. 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운동하던 사람이 하루 만에 다른 팀으로 가니까 마음이 무겁긴 하더라구요. 대수 형도 트레이드되고 바로 시합에 나왔는데 농담 삼아 송구연습 하자고 했더니 웃더라구요. 두산에서 잘하니까 정말 좋아요. 밥 한번 먹자 그랬죠.”
팬 있어야 재미도 있다
지난 5월 26일, 3만 400명의 관중으로 그득찬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프로야구 26년 사상 초유의 ‘팬티쇼’ 퍼포먼스를 SK의 이만수 수석코치가 벌인 그날, 정근우는 팬과 함께 하는 야구가 더 맛있다는 진리를 왼쪽 가슴에 새긴다. 정근우가 입단한 2005년 그해 SK 홈 개막전 만원 이후 처음으로 꽉 찬 홈구장에서 야구를 해본 것이다.
“감동 먹었잖아요. 헐크라고 불리던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스타가 팬티만 입고 뛰는데 다들 박수치고 이만수 이름을 연호하고… 짜릿했죠. 이만수 코치님 초창기에 텅 빈 관중석 보고 충격 먹었거든요. 매일 ‘팬, 팬, 팬이 최곤데, 팬이 없으니까 재미없다’라고 하시더니 솔선수범하신 거죠. 덕분에 저희도 한 수 배웠어요. 팬이 있으니까 야구하는 게 신나고 맛있던데요? 선수들하고 합동 팬 서비스 작전회의 중입니다.”
올림픽 메달을 꿈꾸며
5월 28일. 야구가 하루 쉬어가던 월요일. 한국야구위원회는 2007년 11월에 있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 엔트리를 발표한다. SK 정근우의 이름이 2루수에 올라가 있다.
“아시안게임 때 못했던 한풀이해야죠. 고등학교 친구인 추신수도 이번엔 외야수로 명단에 들어서 더 좋네요. 열심히 해서 군 면제 혜택 받으면 감사하죠. 시즌 마지막까지 잘해서 최종 엔트리에도 꼭 이름을 올리고 올림픽에서 뛰고 싶습니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