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와 연정론에 호남 지지층 이탈 우려…안철수 대선 독자 후보론 걸림돌 될 수도
국민의당 내부에서 연립정부론이 불거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안철수계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이 촉발한 연립정부론은 야권 대통합의 ‘선제 대응적’ 성격이 짙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낮은 수준의 연대나 높은 수준의 연합인 통합에 선을 긋고 새판 짜기를 통해 2017년 대선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이슈 파이팅을 통한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평이다. 당내 호남파 의원들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연립정부론을 언급했다. 야권 외곽에 있는 연정론자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까지 정계개편 판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딜레마는 있다. 연립정부론이 독자 후보를 꿈꾸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안 대표의 독자적 대선 후보도, 호남의 구심점 역할도 모두 흔들릴 수 있다. 레토릭은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독약 발린 설탕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철수계 내부에서 불을 지핀 연립정부론은 거대 양당을 겨냥한 다중 포석이다. 이 전략홍보본부장은 ‘박지원 원내대표 추대론’이 정국 이슈로 부상한 4월 24일 “차기 대선 과정에서 가치나 비전이 유사한 다른 정치세력과의 통합이 아닌 연립정부를 이루는 형태의 정권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4·13 총선 참패로 차기 대선 주자가 공석인 여당 갈라치기를 노리는 한편, 더민주와의 야권연대에 선을 긋는 일종의 선언으로 읽힌다. 전자가 청와대의 ‘유승민 낙인찍기’ 이후 촉발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한데 묶은 ‘빅텐트’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면, 후자는 ‘더민주 고립작전’에 가깝다. 문재인 전 대표가 버티고 있는 더민주보다는 갈라쳐진 보수층을 역흡수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국민의당 내부에선 문 전 대표와의 야권연대가 현실화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전망이 많았다. 당의 한 관계자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적잖은 앙금이 있었던 두 인사가 또다시 독배를 들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국민의당이 ‘일하는 국회’ 프레임의 주도권을 쥘 경우 합리적 보수 인사를 흡수하거나, 제3지대에서 여야를 묶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의당의 연립정부론 카드에는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의 복귀를 위한 명분 쌓기가 깔렸다고 분석한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손 전 고문은 귀국 후 “독일의 정치적 안정은 연립정부 체제에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측근들에 자주 했다. 이념과 정치적 지향점은 다르지만, 여러 정당이 하나의 정부에 ‘동거 체제’를 형성하는, 다양성 속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 손·안(손학규·안철수) 연대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다만 안 대표는 연립정부론에 대해 “지금 제 머릿속엔 20대 국회를 어떻게 일하는 국회로 만들 것인가 하는 생각밖에 없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안철수계의 연립정부론에는 38석으로는 대선의 독자 세력화가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깔렸다. 실제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 21,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은 정권교체에 실패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안 대표 역시 2012년 대선 때 야권 후보단일화에서 사퇴한 뒤 새정치연합 창당에 나섰지만, 사실상 민주당(현 더민주)에 흡수 통합됐다. 연립정부론의 당위성 설파가 다당제 정치와 제3당 체제 구축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역으로는 정권교체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다만 연립정부론의 파급력은 컸다. 이 전략홍보본부장 발언 이후 호남파 의원들도 연립정부론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연립정부에 방점을 찍은 안철수계와는 달리, 박지원·주승용 등 호남 의원들은 ‘호남 중심의 연립정부론’을 주장했다. DJP 연합을 벤치마킹해 정권교체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는 논리다. 안철수계의 연립정부론 각론과는 다른 안이다.
박 의원은 “(보수 인사들이) 우리 당에 들어오면 된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갈 수는 없다”며 “DJ는 누구를 영입하든 다 DJ화했다”고 말했다. 호남 중심이 아닌 연립정부에는 반대를 천명한 것이다. 국민의당의 단독정부가 안 된다면, 호남 중심의 연립정부를 통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박근혜 대통령도 4월 26일 총선 패배 이후 첫 소통 자리인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오찬에서 연립정부론에 관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당 한 축인 호남파 의원도 보수진영도 안철수계의 연립정부론 각론인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새판 짜기를 비토하는 셈이다.
이 지점이 향후 연립정부론의 방향타다. 안철수계의 연립정부론이 대선 발 정계개편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국민의당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 셈이다. 변수는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 역할 장기화 △더민주 리더십 부재 및 계파 갈등 △새누리당 분열 등 크게 3가지다.
일단 최소한 2017년 대선 국면까지 국민의당이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당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쉽지만은 않다. 새누리당과의 대연정 논의에 물꼬가 트이는 즉시 ‘안철수계 vs 호남파 의원’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 판을 깨고 나간다면 국민의당은 연립정부론 추진의 주체가 아닌 야권연대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더민주 내부 갈등도 관전 포인트다. 대표 합의 추대설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불안한 동거체제’는 곧 연립정부론 추진의 명분이 된다. 새누리당 원심력 역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새판 짜기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최소한 이 3가지 조건을 갖춰야만, 연립정부론이 대선 정국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연립정부론이 안 대표의 독자적 대선 가도의 힘을 빼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의당은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지원 원내대표 합의추대’를 이끌어냈다. 대선 승리 방정식인 ‘안철수-박지원’ 라인을 형성한 것이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이 지원하는 안철수 대선 후보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연립정부론의 밑바탕에는 ‘독자적 단독 정권 불가능’이 깔렸다. 연정정치 어젠다가 국민의당을 제3당의 지위로 격하, 독자적 정치행위의 불능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당장 야권연대 없는 독자 후보 추진의 명분으로 작용한 결선투표제의 효과가 정면 배치된다. 안 대표가 총선 직후 주창한 결선투표제가 국민의당 독자화와 맞물려있는 것과는 달리, 연립정부론은 세력 통합식 정계개편 없이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연립정부론 추진은 안 대표를 제3당 후보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국민의당은 정치이슈가 아닌 민생 등 경제 문제의 주도권을 잡고 거대 양당을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연구원 초빙교수도 “연합정부를 얘기하는 것은 국민의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줄 수 있다”며 “지지층 확산에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호남 외연 확장에 최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당이 연립정부론을 놓고 백가쟁명식 논쟁을 펼치자 더민주 내부에선 ‘호남 지지층 복원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의 연정을 추진할 경우 호남 지지층이 이탈, 더민주로 흡수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의당 내부 갈등도 불가피하다. 국민의당 원심력이 더민주의 구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립정부론의 밑그림이 구체화되는 시기는 이르면 연말, 늦어도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는 내년 8~9월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잘하면 제2의 DJP 연합의 태동, 못하면 정치적 퇴장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