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다른 이름은 홍포수 라구요”
▲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영원한 포수’ 홍성흔. 그가 직접 그린 머릿속의 80%는 야구와 포수 생각뿐이라고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나 없이도 잘 돌아가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가 있다. 딱 서른 살이 됐던 2006년,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홍성흔은 시즌이 끝나고 오른쪽 발목과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서른한 살이 된 2007년 올 시즌은 허벅지부상까지 찾아와 급기야 지난 7월 4일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다.
“상처 많이 받았죠. 9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큰 역경 없이 여기까지 온 게 독이었는지도 몰라요. 그게 조금씩 쌓여서 곪아터진 거죠. 2군 가서 마음고생하면서 홍성흔이가 ‘항~상’ 두산의 주전포수는 아니구나,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나 없어도 좋은 포수가 내 자리 티 안 나게 채우고 팀은 잘 돌아가는구나, 반성 많이 했어요. 게다가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냉혹한 세상인심도 뼈저리게 느꼈죠.”
심리치료를 받았을 만큼 고독했던 2군에서의 42일, 홍성흔은 프로가 된 이후 처음 맛보는 두려움 속에서 외로웠다.
2군에서 보낸 한 철
홍성흔: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박종훈(두산2군 감독): 야! 홍성흔이 어디 가? 차분하게 한번 되짚어보자.
2군 방망이 성적은 10타수 5안타. 하지만 도루하는 선수마다 다 살아 나가고 송구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막말로 2000만 원짜리 선수보다 못한 플레이를 하는 거예요. 불안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 붙잡고 계속 물어보는 거죠.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땠습니까, 물어보고 흔들리고….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중심을 잡아야 되겠다. 슬럼프라는 게 뭐냐? 나한테 좋은 게 있는데 그걸 잊어버리는 거, 그래서 흔들리는 게 슬럼프다. 다시 내 스타일을 찾아보자. 답을 낸 거죠.”
가슴에 박은 ‘말뚝’
1군 복귀 후 홈런과 적시타로 두산의 포스트시즌용 해결사 포스를 뿜고 있는 홍성흔은 단전에 ‘말뚝’을 하나 박았단다. 누가 건드려도 흔들리지 않고 내 것을 내 스타일로 단순하게, 힘 있게 갈고 닦겠다는 거다. 홍성흔은 야구 이외의 잡동사니에 대해 냉정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딴 생각하면 말뚝이 또 흔들리고 빠져요. 나쁠 때 외로웠는데, 좋아진다고 ‘밥 먹자, 술 마시자?’ (이젠) 정리해야죠. 한잔 마시면 취하고 싶고, 취하면 노래하고 싶어지잖아요. 집중하려면 생활도, 생각도 단순해야 되거든요. 그래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요. 우리가 일반 직장인들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이유가 뭐예요? 몸값에 대한, 연봉에 대한 책임감, 행동으로 증명해야죠. 그래서 양준혁 선배가 대단한 겁니다.”
프로 18년차인 최고령 현역선수이자 포수인 현대의 김동수를 가장 존경한다는 홍성흔에게 시즌 초부터 나돌았던 ‘포지션 이동설’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제가 방망이는 잘하니까 감독님 생각에 아쉽고 아까운 거죠. 왜냐면 포수하면 스트레스 받고, 부상 입으면 방망이 장점까지 잃어버릴지 모르니까. 그리고 좀 길게 봐서 ‘선수생활 더 오래, 활기차게 하려면 포지션 1루로 바꿔서 방망이 한번 열심히 쳐봐라’ 그런 뜻인 건 알겠는데요. 저로서는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죠. 저는 진짜로 ‘포수 홍성흔’으로 남고 싶고 또 그렇게 은퇴하고 싶어요. 솔직히 포수 그만두라고 하면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스코어는 미지수. 김경문 감독과 홍성흔의 포지션 논쟁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보류 중이고 올 시즌이 끝난 뒤 ‘재개봉’될 예정이다.
포수 되찾기 작전
12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포수로 야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딱 20년. 그러니까 31년 인생 중 3분의 2를 ‘포수 홍성흔’으로 살아온 홍성흔에게 ‘포수’라는 두 글자는 땀과 눈물, 환희와 고독이다. 마치 ‘포수 홍성흔’은 자신이 공들여 키운 자식과도 같다고 말하는 홍성흔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요. 홍성흔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포숩니다, 포수.”
그러나 2007년 가을바람과 함께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온 홍성흔은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다. 굳이 포수로 따지자면 후배 채상병의 백업, 김진수의 백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래 내 자리였으니까 그걸 다시 찾아야겠다, 뺏어야겠다고 덤비면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해요. ‘되찾아야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맨 처음 포수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았을 때의 그 열정과 초심으로 연습하고, 기회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다시 그 자리에 앉아서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2008년 ‘프로 10년차’
봄여름 시즌 동안 비 때문에 취소됐던 잔여경기들이 치러지는 우천리그 첫날인 9월 4일. 홍성흔은 1군 복귀 후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공식적인 포수 훈련을 했다. 두산의 선후배들이 더 반가워했다지만 내심 홍성흔은 긴장됐다고 한다. 실제로 1군으로 돌아온 뒤 홍성흔은 매일같이 밤 12시까지 따로 남아서 포수 훈련을 했다고 한다.
“내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포수 마스크를 못 쓰는 거잖아요. 부족한 걸 채워야죠. 서른 넘으니까 몸에 변화가 오더라고요.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좋아질 수는 없어요. 대신 망가지지 않게 해야죠. 수술하고 나서 순발력, 공 때리는 포인트를 잃었는데 다시 찾아야죠.”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을 버렸다. 버렸더니 또 다른 홍성흔이 나오더라’는 홍성흔. 그라운드 안에서 야구하는 것에 감사하고 포수가 아니라 타자로 불러주는 것에도 감사하다는 그.
그러나 내 자리, 포수 자리에 다시 앉고 싶다는 홍성흔은 내년이면 프로데뷔 10년이 되고 내후년엔 FA가 된다. ‘지금은 두산에 남을지 어쩔지 묻지 말아 달라. 남은 시즌은 방망이로 팀에 진 빚을 갚고, 내년 시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자격을 갖춘 후 대답하겠다’는 두산의 포수, 홍성흔.
서른두 살이 되는 2008년, 프로 10년차에 벌일 ‘포수 홍성흔의 잔치’를 응원하자. 프로야구 최고의 오버맨, 파이팅맨 홍성흔이 외롭지 않게.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