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던 불만에 팬의 한마디가 불 질러
▲ 지난 1월 9일 무소속 상태의 안정환 선수를 삼성에 불러들인 차범근 감독(왼쪽).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둘 사이의 신뢰는 두터웠다. 하지만 안정환 선수의 장기결장과 2군행 등이 쌓이자 이들의 신뢰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그런데 한편에선 안정환이 돌출 행동을 한 데에는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내부적인 부분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서포터스와 선수의 무력 충돌이 아닌 그 내면에 또 다른 사연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즉 자신의 불안한 위치, 한국 복귀 첫 해에 1군이 아닌 2군에서 경기를 뛰는 심리적인 박탈감, 그리고 차범근 감독과의 불편한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겉으로 보기에 안정환은 사면초가다. 숱한 기자회견을 가져봤지만 연맹으로부터 벌금을 받고 팬들에게 사과하는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건 생애 처음이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복귀한 뒤 ‘안정환’이란 이름이 최근의 스캔들 메이커 ‘신정아’만큼은 아니지만 그 다음으로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축구 실력으로, 골 득점으로 이름을 알린 게 아니라 팬과의 충돌로 빚어진 경기장 난입 사건이라 그동안 스타플레이어로 대접받아온 안정환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안정환은 차분했다. 그 사건 이후 가까이서 안정환을 지켜본 측근에 의하면 “주위에선 난리였지만 오히려 안정환은 침착해 보였다. 한국 복귀 이후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감정들이 수면 밑에서 잠자고 있다가 그 일로 폭발했고 본인은 오히려 사건 이후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이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켜켜이 쌓였다는 그 감정들은 무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수원 삼성에서 차지하는 안정환의 위치다.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안정환은 지난 1월 9일 수원 삼성에 공식 입단했다. 뒤스부르크와 재계약하지 않고 6개월가량 무적 선수로 지냈던 안정환은 국내 복귀를 앞두고 절치부심 끝에 ‘레알 수원’으로 들어갔다. 복귀 초반만 하더라도 삼성하우젠컵대회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리는 등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제대로 부활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규 리그에선 차범근 감독의 기대치를 밑도는 플레이를 보여줬고 그라운드보다는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에 대해 안정환은 지인들에게 경기 출전 시간이 너무 적다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즉 출전 시간이 적다보니 갖고 있는 기량을 펼쳐 보일 기회가 줄어 들었고 경기장에 들어가면 항상 쫓기는 기분으로 뛴다는 것. 안정환의 측근은 “몇 경기에 출전했는데 몇 골밖에 못 넣었다고만 탓하지 말고 안정환의 총 출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길 바란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안정환은 수원이 후반기 들어 치른 7경기에서 총 64분을 뛰었다.
최근 안정환이 5경기에서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자 수원 삼성의 홈페이지에는 안정환의 장기 결장에 대해 궁금증과 불만을 쏟아내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구단에서도 몸 상태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엔트리에 제외되는 걸 두고 차범근 감독과 안정환이 불화를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안정환의 측근은 “선수가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독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 안정환이 국내 복귀를 결정할 때만 해도 차 감독에 대해 무한 신뢰를 나타냈다고 한다. 축구계의 대선배이자 존경하는 스트라이커였고 더욱이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차두리의 아버지란 부분도 안정환이 수원 입단을 결심하게 된 중요 요인이었다. 차 감독 또한 안정환과 소속팀 선수로 인연을 맺게 되자 인터뷰 때마다 안정환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고 제 기량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며 오히려 기자들에게 부탁을 했을 정도다. 그런 신뢰의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원 삼성을 담당하는 축구 기자 A 씨는 “차 감독도 안정환에게 바라고 기대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안정환 또한 실력으로 보답하지 못한 부분에선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 감독이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일본에 다녀온 에이전트 B 씨는 수원과 1년 계약을 한 안정환이 올시즌 이후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B 씨는 “벌써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나돈다. 특히 일본 쪽에선 안정환에 대해 ‘러브콜’을 보내는 팀이 있는 것으로 안다. K리그에 적응하는 걸 버거워했던 안정환이 다음 시즌에는 일본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축구 인생이나 개인사 모두, 수많은 사연들로 점철된 안정환. 그의 축구가 K리그를 지나 또 다시 J리그로 향하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