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사제지간 ‘양보는 없다’
▲ 김인식 감독(왼쪽), 김경문 감독 | ||
김성근 감독보다 오히려 김인식 감독이 불같이 화를 냈다. 김인식 감독은 이례적으로 대전구장 기자실에 들어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다 “요즘 젊은 감독들이 너무 버릇이 없다”고 성토했다. 지면에 담기 어려운 표현까지 써가면서 두 젊은 감독을 비판한 김인식 감독은 “내가 얘기한 거 신문에 그대로 써! 알겠지?”하면서 신신당부를 할 정도였다. 실제로 언론의 보도 내용은 상당히 순화된 것이었지만 자세한 소식을 전해들은 김경문 감독과 선동열 감독이 바짝 긴장하게 된 건 당연했다.
김경문 감독은 오는 12월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예선전의 국가대표 사령탑이기도 하다. 본래 33명의 대표팀 최종 예비 엔트리 전부를 오는 11월 초 일본 오키나와 전훈지로 데려가 훈련시킨 뒤 최종 27명을 고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김인식 감독이 최근 한 언론을 통해 “훈련까지 데리고 갔다가 몇 명을 자르면 대표팀 분위기가 나빠진다. 처음부터 27명만 데리고 가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경문 감독은 이튿날 곧바로 “김인식 감독님 말씀이 맞다. 전지훈련에 27명만 데리고 가겠다”면서 ‘뜻’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뜩이나 얼마 전 발언 때문에 불경죄에 걸린 김경문 감독이 김인식 감독의 조언을 어찌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존경과 애정의 관계인 김인식-김경문 감독은 그러나 지난 2003년 말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으며 다소 미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2003년 가을, 선동열 당시 KBO 홍보위원이 일본 코치 연수를 마치고 국내 지도자 자리를 물색하게 되면서 프로야구판에는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쳤다. SK 와이번스가 선동열 위원을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당시 두산은 김인식 감독 체제하에 있었지만 그룹 고위층에서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의견이 득세했다. 그래서 당시 구단주이자 KBO 수장을 맡고 있던 박용오 총재가 선동열 위원과의 친분 관계를 고려해 스카우트에 열을 올렸다.
상황이 이리 되자 김인식 감독은 스스로 두산 감독직을 물러났다. 자존심을 지키고 후배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데 막상 선동열 위원은 여러 여건을 고려한 뒤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택했다. 결국 두산은 내부 승격을 통해 김경문 코치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김경문 감독은 본의 아니게 직속 상관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된 셈이다.
그처럼 애매한 상황을 겪었지만 현재 야구판에서 김인식 김경문 선동열 감독은 가장 끈끈한 관계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두 김 감독이 올가을 플레이오프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평소 꼼짝 못 하는 관계라 해도 승부는 승부다.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해 보인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