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될 땐 ‘형 동생’, 짐될 땐 ‘형씨~’
▲ 스포츠 선수와 에이전트 간에 돈문제로 삐걱거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 ||
톰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영화다. 돈보다는 인간을 택했던 영화 내용은 스포츠 에이전트 세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인 법. 제리 맥과이어처럼 에이전트와 선수의 아름다운 동반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선수 몰래 뒷돈을 챙기는 에이전트가 있고 에이전트의 뒤통수를 때리는 선수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 “요즘 애들은 너무 영악”
한 에이전트는 “요즘은 특정 에이전트와 대리인 계약을 안 하는 선수가 많다”고 얘기했다. 필요한 경우에 한시적으로 에이전트의 힘을 빌릴 뿐 평상시에는 에이전트를 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이전트 수수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일부 선수이긴 하나 계약을 앞두고 친하게 지내던 에이전트의 자문을 받은 뒤 일이 성사된 뒤에는 입을 싹 씻는 경우도 있다. 자문만 받고 안면 몰수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일부 선수는 한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뜻을 이룬 뒤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하기도 한다.
형처럼 따르던 에이전트를 배반(?)한 선수도 있다. 어려운 시절 적지 않은 돈까지 꿔주고 사생활 문제가 퍼지는 걸 막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에이전트의 고마움을 모른 채 어느 정도 성공하자 무 자르듯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한 중견 에이전트는 “요즘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인간관계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선수가 꽤 있어 씁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에이전트가 능력 없다”
선수의 말을 들어보면 에이전트가 하는 얘기와는 ‘온도차’가 있다. 에이전트를 자주 바꾸는 걸로 유명(?)한 이천수는 지난 5월 “그동안 에이전트들에게 너무 실망을 많이 해 이제 누구도 믿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페예노르트와의 계약서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에이전트가 몰래 넣은 것 같은데 내가 한 시즌에 20경기 이상 뛰면 연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이다”고 주장했다.
에이전트가 몰래 뒷주머니를 차 배신감을 느낀 선수도 있다. 한 선수의 측근은 “몇 년 전 공익적인 목적으로 광고를 찍은 적이 있는데 광고출연에 따른 수익이 없다고 했던 에이전트가 나 몰래 돈을 받았다는 정황이 나와 화가 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자신의 판단 착오를 깨달은 이 선수는 군 입대를 결심했다. 이 선수가 군에 입대할 때 에이전트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하고 계약을 앞두자 연락이 왔다. 에이전트 자격으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 수평적인 동업자 관계
몇 년 전만 해도 에이전트가 선수의 일을 봐준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의 에이전트사에 투자한 선수는 물론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에이전트사를 차린 선수가 나왔다. 이제 에이전트가 선수의 일을 봐준다는 표현은 현실감이 없다. 선수가 필요에 따라 에이전트를 고용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최근 축구계에는 한 에이전트가 돈을 빌리러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자신의 회사에 투자한 선수가 가족의 요구 때문에 투자액을 전액 회수한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가 예전과 다름을 알려준 ‘사건’이다.
셈이 빠른 선수, 힘을 지닌 선수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에이전트계는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한다. 이 와중에 뜻이 맞는 에이전트사끼리 합병해서 거대 에이전트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 에이전트사 변화의 바람
한 중견 에이전트는 얼마 전 동료 에이전트들에게 “힘을 합치자”고 설득했다. △각자 자신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회사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만큼 수익 중 일부는 회사에 내고 나머지는 각자 갖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에이전트의 제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서로의 요구조건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에이전트가 하나로 뭉치는 거대회사가 탄생하지 못했지만 에이전트계에 변화의 바람은 계속 불고 있다. 능력 있는 회사가 그렇지 못한 회사의 일을 맡아주면서 자연스럽게 ‘메이저’와 ‘마이너’가 갈리는 질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 구단과의 협상 경력이 많은 한 에이전트사는 최근 선수들과의 친분 관계 외에는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는 에이전트사 선수들의 이적을 돕고 있다. 에이전트계는 이들의 ‘기묘한 동거’를 주목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합병하기 바로 전 단계로 파악하고 주시한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