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하면 쾅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 ||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김동현 고려대 연구교수,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실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등은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한반도에는 당분간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가 고조될 것”이라며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철 아주대 명예교수 또한 “북한의 핵실험은 분명히 성공한 것이며 사실상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이 됐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 등은 “북한도 어차피 대화 협상 카드로 핵실험을 사용했고 미국도 유엔 제재를 강행하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본다”며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1] 한국국방연구원의 김태우 군비통제연구실장은 올해 초 북핵문제를 다룬 책 <북핵 감기인가 암인가>를 펴내는 등 오랜 기간 핵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김 실장은 전화인터뷰에서 ‘북핵 실험 이후의 향후 시나리오’에 대해 “전면전 양상의 전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상당한 긴장고조 분위기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은 유엔 안과 밖에서 동시에 대북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일단 중국과 러시아가 견제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대북 제재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점차적으로 계속된다는 데에 있다. 또한 북한이 계속 강경일변도의 버티기로 나오는 이상 중국과 러시아로서도 마냥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기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실장은 “일본은 독자적으로라도 북한을 더욱 강경하게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상대적으로 일본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북한을 더욱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왕 칼을 빼든 북한은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 일본 등의 제재가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대규모 군중대회 등을 통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지금껏 북한과의 양자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해온 부시 행정부가 이제 와서 북미대화에 응한다면 결국 핵 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무력시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양자 회담에 나서겠느냐”며 타협 가능성을 낮게 잡았다.
김동현(미국명 통 킴) 고려대 연구교수 또한 “북한은 사실상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우리 갈 길을 가겠다’는 최후통첩을 부시 행정부 임기 중에 던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27년간 미국 국무부에서 선임외교통역관으로 일하면서 북한에도 17차례나 방문한 전력이 있는 한미 및 북미 외교관계 전문가다.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의 정성장 연구위원은 “다소 비관적인 전망과 낙관적인 전망이 모두 제기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안타깝게도 비관적 전망이 좀 더 우세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전제한 뒤 “미국의 금융제재에 의해 북한의 해외 계좌 대부분이 폐쇄되면 북한은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며 여기에 중국과 한국까지 제재에 동참한다면 북한으로선 더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벼랑 끝에 몰린 북한으로서는 이에 강력히 반발해서 추가 핵실험 내지는 최악의 따라서는 핵의 외부 유출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미국을 압박할 것이고, 미국은 다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로 군사적 긴장 고조 가능성을 높이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북한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김태우 실장은 “북한은 이미 핵실험 강행으로 인해 자신들이 무슨 불이익을 당할 것인가를 훤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그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일전불사의 성격”이라며 “핵실험을 강행하게 될 경우 미국·일본의 제재는 물론 중국·러시아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고, 심지어는 한국의 차기 정부도 자신들에 보다 적대적인 보수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점까지도 훤히 알고 있다. 북한은 당장의 제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이런 카드를 빼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현 교수는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단순히 북미대화를 위한 압박 수단으로 핵실험이라는 정치적 제스처를 한 번 취한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궁극적으로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북한은 이미 그 어떤 국제적 차원의 제재와 압박도 감내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살 심리’까지 불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아마도 부시 행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어떻게 하든 버티자는 내부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소한 부시 임기 말기인 내후년까지는 지금의 강경 일변도 입장을 계속 유지하며 버틸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일연구원의 허문영 북한연구실장 등도 “북한은 부시 정부가 끝날 때까지 버티기 전략을 구사할 것이며 결국 상당기간 한반도 위기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며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최강 교수 역시 “국제사회 분위기가 강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으며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을 절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핵 위협에 양보하는 모양새는 절대로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핵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김철 아주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이 된 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하며 우리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 역할을 해야만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2] 앞의 첫 번째 시나리오와 함께 전문가들이 가장 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암묵적 방조로 장기화’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시간끌기 작전’으로 당장의 극단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을 가능성을 상정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금융 제재만 해도 사실 국제적으로는 강력한 제재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놓고 협상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없겠지만 결국은 양측 중에서 최소한 어느 한쪽이라도 입장 변화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단 미국은 끝까지 북한의 핵 실험 성공 여부를 확인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들지 않을 것”이라며 “어차피 미국의 입장은 지금까지 (북핵문제를) 장기화로 끌고오면서 통제 가능한 선에서 통제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등의 상황이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제재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결국 유엔을 통한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 역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카드인 핵의 외부 유출을 감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연구소의 백학순 남북관계연구실장도 <기자협회보>와의 대담에서 “미국은 겉으로는 강경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고 지역의 군비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협상하려는 분위기도 있다”고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한은 일단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입장을 보일 것”이라면서 “북한은 이미 이긴 게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미국이 핵 국가를 공격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군사적 최소 안보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 북한 핵실험 사태는 과연 대화로 해결될 수 있을까. 부시 미 대통령(왼쪽), 김정일 국방위원장. | ||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만 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두 가지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핵을 갖도록 용인하는 대신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허용하는 대신 중국에게 핵을 막아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3] 정작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보유 자체보다도 그 핵을 외부 국가나 테러단체에 유출하는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에게 핵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점을 확약 받는 선에서 핵보유를 잠정적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느끼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미국은 핵우산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것.
김동현 교수는 미국의 적극적인 입장 변화에 따라서는 외교 협상의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일부에서 잘못 판단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미국밖에 없다”며 “이번의 경우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듯이 어차피 북한은 중국의 말도, 우리 한국의 말도 절대 듣지 않는다. 오로지 북한의 관심은 미국뿐”이라고 단정지었다.
김 교수는 “현재 북한보다도 더 딜레마에 빠진 것은 미국 쪽이며 미국은 끝까지 6자회담을 고집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줄기차게 양자회담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특사 파견 형식의 양자접촉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것은 북한을 6자회담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 단체인 서울지역청년단체협의회의 송현석 의장은 12일 통일연대가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국제사회 여론이 미국에 점차 불리해지면 미국이 북한에 화해의 손짓을 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정했다.
고유환 교수는 “미국이 지금까지는 북한을 무시하는 정책을 고수해 왔지만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그만큼 핵문제 해결이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반대급부를 보상받는 선에서 북한이 핵 폐기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을까. 김철 교수는 “일단 기술적으로만 보면 북한 핵시설의 기폭시스템만 제거하면 일단 핵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고 밝혔고, 정성장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와 남아공 등의 예에서 실제 핵개발에 나섰다가 결국 핵 폐기에 이른 사례도 있다”고 밝혔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보고 있다.
[4]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9일(현지 시각) 북한의 핵 실험과 관련 “미국은 군사적 유사 상황에 대비한 전쟁 계획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적 제재 가능성도 열어두겠다는 메시지였다. 특히 미국이 촉각을 기울이는 것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더불어 핵무기 및 기술의 외부 유출에 관한 것이다. 대다수의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보고 있지만 긴장감 고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한이 최악의 수단으로 외부 유출까지 시도할 경우 미국으로서도 가만히 있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선제공격 시나리오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공군력을 통한 핵실험 지역 및 핵시설 지역에 대한 정밀 타격 가능성이 있고 또 다국적군을 구성한 군사작전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국민일보>가 10월 10일자 보도에서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은 눈길을 끈다. 이에 따르면 미국 공군의 북한에 대한 정밀 타격이 시작된 지 단 2시간 만에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군 수뇌부가 변변한 대응도 못한 채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꼬박 24시간의 집중 공격이 퍼부어지면서 북한군 전력의 90% 이상이 무력화된다는 것. 대북 공격 시작 이후 이틀이 지나면서 미국의 해·공군과 주한 미 2사단을 비롯한 지상군, 그리고 한국군의 북진이 시작되면서 평양 입성을 목전에 둔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반대로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벼랑 끝에 몰린 북한 군부 강경파가 공멸의 선택을 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전체가 전운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제공격 시나리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김동현 교수는 “아마도 미국 정부로서는 북한을 당장에라도 선제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뿐”이라며 “미국의 군사적 제재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고 단정했다.
정성장 연구위원 또한 “아무리 미국이 초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동북아에 있어서는 미국이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지난 94년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그 의미가 없다는 것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며 “만약 북한 체제 붕괴를 노리는 공격이라면 그야말로 전면전이 될 것이고 중국은 물론 우리 한국으로서도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5] 또 하나의 돌발 변수의 가능성으로 거론되는 것은 북한정권 내부의 자체 변동 및 붕괴 설이다. 북한이 온갖 위험 요인을 감수하면서까지 핵 실험을 강행한 것은 이미 북한 내부에 체제 위기가 닥쳤고 따라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대내용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대북 제재 압박이 가중되면 결국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붕괴 등의 큰 위기를 몰고올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허문영 실장은 “북한의 의도는 협상용이라기보다 체제유지용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 역시 “국제적인 비난이 큰데도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대내적인 이유 때문이며, 김정일 위원장으로선 인민의 사기를 진작하고 자신의 위신을 과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인하대 김명배 초빙교수는 “이번 핵실험은 북한의 만성적 경제 침체가 김정일 통치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와 만일의 사태에 있을지도 모를 군사제재까지 강행되면 북한의 만성적 경제침체가 심해질 수밖에 없고 북한의 자연붕괴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성장 연구위원은 “경제 제재가 계속 이어지면 내년 들어 북한의 식량위기가 가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 난민의 대량 탈북사태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북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섣부른 전망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체제는 권력 중심층이나 군부가 아니고서는 주민들의 동요로 쉽게 무너질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이번 핵실험으로 군부는 김정일 위원장에 더 더욱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김동현 교수도 마찬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은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려 들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결국 불쌍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체제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