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서 “핵·미사일 개발 조금도 방심 말라”
북한의 이번 3차 핵실험은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2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진도 4.9~5.2규모에 해당하는 ‘인공지진’이 감지됐다. 지난 2006년과 2009년에 이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이었다. 핵실험이 진행된 풍계리는 2000m가 넘는 고산지대로서 비밀스러운 갱도 시설 구축이 용이한 핵실험 최적의 장소다. 이곳은 이미 지난 1차 핵실험 때부터 쓰였던 곳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한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 당국은 핵실험 직후 “이번 핵실험은 지난 1~2차와 비교해 탄두가 소형화, 경량화 됐다”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북한은 지난 12월 감행한 발사체 실험 성공과 더불어 이제 본격적인 핵탄두 장착 발사체 개발이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향후 5~10년 내 핵탄두 장착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 새롭게 등극한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이 모든 것을 지휘했다는 점이다. 핵실험과 발사체 개발을 이어왔던 아버지 김정일의 행보를 그대로 밟고 있는 모습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보다 향상된 기술과 가시적 성과를 결과물로 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3차 핵실험은 어느 정도 예상된 행보였다. 국내에서 대북 정보를 다루는 몇몇 기관에서 이와 관련한 첩보가 입수되기도 했다. 지난해 북한 정보 전문 사설 연구기관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가 입수한 ‘김정일 유서 추정 문건’을 살펴보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문제의 문건은 지난해 4월 국내에 처음 공개됐으며 공교롭게도 핵실험을 며칠 앞둔 지난 2월 10일, 이를 분석한 저서 <김정일의 유서와 김정은의 미래>(이윤걸 저/비전원 간)가 출간되기도 했다. 한 때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두고 시비가 붙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국정원에서도 이 문건에 대한 신뢰도를 높게 보고 있다고 한다. 문건을 입수한 이윤걸 NKSIS 대표는 “내부 소식통을 통해 2011년 1월, 김정일의 서재에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이후 이와 관련한 첩보를 지속적으로 추적했고 지난해 2월 처음 입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의 문건은 ‘3대 세습 권력 핵심세력’ ‘대내 통치 핵심전략’ ‘한반도 통일 핵심전략’ ‘대외관계 핵심전략’ ‘김정은의 안전과 안녕’ 등 총 5개 분야 44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이 중 이번 핵실험의 본질과 관련해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은 ‘대내 통치 핵심 전략’ 부분이다. ‘대내 통치 핵심 전략’ 부분 17번째 항목은 ‘핵, 장거리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히 보유하는 것이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임을 명심하고 조금도 방심하지 말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핵’을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해서 이어가라는 뜻이다. 결국 이번 3차 핵실험은 김정일이 남긴 최대 유산인 ‘핵과 미사일’을 지속 발전시키라는 유훈에 따라 ‘당연히’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활빈단 등 4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임준선 기자
‘대외관계 핵심전략’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해 더욱 분명한 목적이 드러난다. 이 부분 35번째 항목에는 ‘미국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합법적인 핵보유국으로 당당히 올라섬으로써 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하며 국제제재를 풀어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36번째 항목에는 ‘여기서 6자회담을 잘 이용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이 회담을 우리의 핵을 없애는 회의가 아니라 우리의 핵을 인정하고 우리의 핵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어야 하며 우리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풀게 하는 회의로 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일은 유서를 통해 ‘핵’의 가장 큰 목적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결국 지속적인 핵개발을 통해 외부의 제재를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겠다는 속셈이다. 버티고 버텨,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을 인정받고 더 나아가 ‘평화협정’을 체결해 꽉 막혀있는 ‘제재’를 단숨에 풀겠다는 전략이다. 그 첫 번째 단추가 ‘6자회담’이라는 가시적인 ‘테이블’인 것이다. 북한은 대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6자회담’에 모든 외교적 전략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이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북 핵 폐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우리 정부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문건을 입수한 이윤걸 대표는 “가장 심각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결국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을 주목적으로 두고 있다. 그 대화는 지난 과거부터 꾸준히 진행됐고 어떻게 보면 상당부분 근접해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도 현실정치를 하는 집단이다. 아직 우방인 한국과의 관계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지만,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전략 수정에 따라 ‘북 핵’을 인정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우리가 지난 과거 미국의 ‘대만 국교 단절’의 꼴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보수 진영에서는 극단적인 ‘핵무장 방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와 만난 한 예비역 장성 출신 군사 전문가는 “현실이 그렇다. 미국도 ‘득’이 돼야 우방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자주적 대응이 불가능해지면, 미국도 포기할 수 있다. 약한 ‘우방’에게 괜히 힘쓸 일 없다는 뜻이다. 예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했던 것처럼. 결국, 미국의 협조 속에서 자체적인 ‘핵무장’을 통해 북한에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우리 스스로 NPT 조약을 깨야 하는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미국의 허락도 미지수다.
이제 불과 30줄(1983년생)에 들어선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북한은 연이어 한국에 위협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짐을 짊어진 박근혜 당선인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한국의 핵무기 대응 수준은 ‘아리랑’ 믿었다가 4번 발등 찍혀 함대지 순항미사일. 사진제공=국방부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군이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대응 방식은 크게 사전 감지에 따른 ‘선제공격’과 ‘요격방식’으로 나뉜다. 앞서 김 장관이 지적했듯, 핵무기 사용 저지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 감지에 따른 ‘선제공격’일 것이다. 현재 한국은 북한 내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위성을 두 대 보유하고 있다. 아리랑 2호와 3호다. 하지만 이 두 위성에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포착할 기회가 네 차례나 주어졌음에도 영상 확보에는 모두 실패했다. 위성 공동 개발국인 러시아와의 계약도 지지부진해 추가적인 위성 개발도 늦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선제공격의 첫 번째 단계인 ‘징후포착’ 자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두 번째 대응 방식은 요격미사일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요격미사일 시스템은 ‘제로베이스’나 마찬가지다.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예산문제와 MD참여 논란 등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만약 요격미사일을 배치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신형 패트리어트 등 현존하는 요격미사일의 정확도가 아직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 호위총국 출신의 한 탈북자는 “북한과 한국의 영토 사이가 너무 짧다. 근거리 요격이 더 어렵다. 복합적인 요격미사일 시스템을 갖춘다 하더라도 속도가 빠른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정확하게 요격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아무리 이지스함을 가까이 붙여 요격을 시도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요격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게 나올 거다”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잠깐!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미사일은 크게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로 나뉜다. 순항미사일은 제트기와 유사한 원리로 작동된다. 자체적인 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미리 입력된 경로에 따라 저공비행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과 비교해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도는 높다. 반면 탄도미사일은 우주로 쏘아 올리는 ‘위성 로켓’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된다. 대륙에 설치된 로켓 발사대에서 발사체와 함께 발사되며 일정 고도에 도달하면 다시금 ‘타깃’을 향해 자유 낙하 하는 방식이다. 순항미사일과 비교해 고지대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때문에 ‘요격’이 쉽지 않다. |
대남 도발 3종 세트 무엇 이제 남은 건 해상 도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해상 도발은 그동안 북한이 지속적으로 해왔던 ‘대남 도발 3종 세트’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한 데 이어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이제 김정은이 시도하지 않은 것은 해상 도발뿐이다. 이 때문에 벌써 국내에서는 핵실험 후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윤걸 대표는 “결국 이번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어떤 것을 얻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이번 핵실험 이후 주변국의 경제적 지원이나 제재 해제와 같은 소기의 성과가 달성된다면, 위험부담이 높은 해상 교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도박’을 벌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만약 북한이 해상 교전을 감행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가 될 것이며 연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지난 1999년 1차 서해교전을 시작으로 2002년 2차 서해교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격침, 2011년 연평도 포격 등 갖가지 형태의 해상 도발을 이어왔다.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등 최근 해상 도발을 주도했던 인민군 대장 김격식은 지난해 12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됐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