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이자 풍운아 제대로 반상 흔들어
이세돌과 형 이상훈 9단은 지난 20일 맥심커피배 시상식 후 가진 인터뷰에서 “친목단체로 출발한 프로기사회가 초기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지금은 프로기사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단체가 됐다”면서 “프로기사회를 탈퇴하면 한국기원이 주최하는 기전에 참가할 수 없고, 기사회 적립금도 성적을 내는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등 형평성 없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프로기사회를 탈퇴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균등한 회비를 걷는 일반 단체와는 달리 프로기사회가 성적을 내는 일부 기사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저단 시절부터 바둑계 주류 단체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그가 제기한 문제점들이 이후 바둑계를 개혁하는 묘수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세돌과 한국기원, 그리고 프로기사회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세돌은 이미 저단 시절부터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 등 바둑계 주류 단체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이세돌이 제기한 문제점들은 나중 그의 뜻대로 규칙이 바뀌거나 바둑계를 개혁하는 묘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그의 뜻대로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세돌이 그동안 바둑계에 던진 승부수들을 간추려봤다.
#승단대회 불참
이세돌은 지난 2000년 3단 시절 “별도의 대국료도 없이 연간 10판씩 의무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승단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일반 기사가 그랬다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당사자가 이세돌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당시 이세돌은 32연승을 달리며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에는 제15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릴 정도로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기사로 우뚝 서 있었다. 당장 불편한 것은 기존 9단들이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3단’보다 약한 ‘9단’들이 양산된 셈이 됐으니 난감했을 터.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 1월 이른바 ‘이세돌 특별법’이라는 제도 개혁에 나서 승단대회를 폐지하게 된다. 일반기전 예선을 승단대회로 대체하고 주요 대회 우승 시 승단을 시켜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이세돌은 물론 후배 최철한, 박정환 등이 쉽게 9단 고지를 밟게 된다.
#기보저작권 위임 거부
이세돌은 2009년 기보저작권을 한국기원에 일괄 위임하는 규정에 대해 ‘기사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프로기사 중 유일하게 서명에 거부했다.
당시 이세돌은 “기보의 사용권은 기사와 후원사, 한국기원에 있다. 그런데 기사 개인의 권리는 배제하고 모든 권리를 기사회에 위임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사회는 단순 친목단체다. 그런 곳에서 기보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기사 개인의 권리도 보장하는 문구가 들어가야 사인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특히 “남들도 사인했으니 너도 사인하라는 식의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며 동의할 수 없음을 밝혔다.
이 기보저작권에 대한 논란은 후에 휴직사태 이후 복직하는 과정에서 한국기원이 내민 복직 조건에 이세돌이 일괄 사인하며 일단락된다. 하지만 당시 제대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서둘러 봉합해버린 것이 현 사태의 도화선이 됐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둑리그 출전거부를 둘러싼 휴직사태
이세돌은 2009년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한 뒤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한다. 당시 많은 얘기들이 오갔지만, 휴직계를 제출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프로기사회에서 표결을 통해 이세돌 9단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기사회는 이 9단의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문제 삼은 것은 물론 여기에 시상식 불참과 바둑판 사인 거부 등의 일까지 들춰내며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기사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이세돌 9단에게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안건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86 대 37, 압도적인 표차로 찬성표가 많이 나오게 된다. 그러자 이세돌은 “동료들이라고 믿었던 프로기사회가 나에 대한 징계를 두고 공개투표를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며 1년 6개월간의 휴직계를 제출하게 된다.
7년의 시간이 흘러 이세돌은 프로기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탈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현재 프로기사회 정관에는 ‘기사회를 탈퇴하면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세돌은 “친목단체에서 탈퇴했다고 해서 대회 참가까지 막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만일 대회 참가를 막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한다.
이에 프로기사회는 지난 19일 임시총회를 열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오는 6월 2일 임시총회를 열어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결과에 따라서는 지난 2009년 휴직사태에 못지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이세돌의 승부수가 ‘묘수’가 될지, ‘악수’가 될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이후 바둑계를 포함한 전 세계의 핫 이슈로 떠오른 알파고 해부를 위해 국가대표 바둑상비군이 뭉쳤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결의 실시간 해설을 비롯해 그간 수많은 프로기사들이 알파고를 분석했지만 기존 패러다임을 깨는 알파고의 수에 대해선 오해와 루머가 많았다. <너, 누구냐? 국가대표가 해부한 알파고 1, 2>(한국기원 발행)는 박정환·김지석·원성진·신진서 등 국내 최상위 랭커로 구성된 40여 명의 국가대표팀 상비군이 1국부터 5국까지 공동연구를 통해 파헤친 알파고의 실체를 고스란히 담았다. 역대 가장 완벽한 해설진이 1국부터 5국까지를 1권과 2권으로 나눠 수록한 이 책은 한 판의 바둑을 약 100개에 달하는 참고도로 한 수 한 수 해부해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다양한 실력의 바둑 애호가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편 바둑계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인 필자 5명이 공동연구에 직접 참여해 보고 들은 내용을 각각 한 판씩 맡아 생동감 넘치는 현장 분위기를 매판 다른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