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되게 당해본 빅리그 ‘’한국 경계령‘’
▲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출정식.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본래 WBC는 ‘세계 야구 고전’이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국제야구연맹(IBAF)이 주관하는 공식 국제대회는 아니다. 하지만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국가대항전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2회 WBC는 대회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또한 한국은 1회 때와 달리 투타 핵심의 불참이 예상된다. WBC와 관련해 몇가지 궁금증을 짚어본다.
박찬호의 존재감
박찬호(필라델피아)와 이승엽(요미우리)은 3년 전 1회 WBC 때 투타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와 1년 계약을 한 박찬호는 팀 내 선발 경쟁 때문에 이번엔 WBC 참가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물론 대표팀에선 어떻게든 박찬호를 데려가려고 한다. 이승엽은 이미 수차례 대회 불참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사실상 제외가 확정적이다.
박찬호가 왜 중요한지는 1회 대회를 기억해보면 답이 나온다.
당시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모 구단 감독의 소회다. “솔직히 처음 찬호의 구위를 보고 실망을 많이 했다.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라는 점이 사실일까 싶을 만큼 구위가 나빴다. 그런데 희한했다. 일본과의 아시아예선과 8강 리그 때 찬호가 나가서 던지면 뭐랄까, 일본 타자들이 위축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일본 타자들도 베테랑 메이저리거의 위세에 눌리는 듯 보였다. 아, 이런 게 바로 ‘찬호 효과’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박찬호는 3년 전보다 지금 오히려 구위가 한결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대표팀에 합류만 시킨다면 김인식 감독으로선 엄청난 힘이 된다. 그래서 끝까지 엔트리에서 제외하지 못한 채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박찬호가 최종 불참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여서 마지막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 박찬호(왼) 이승엽 | ||
승짱의 불참 선언 이유
이승엽이 불참을 선언한 표면적 이유는 소속팀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이다. 지난해 정규시즌과 재팬시리즈에서 사상 최악의 부진을 보인 이승엽은 올해만큼은 소속팀 요미우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WBC 아시아예선이 열리는 도쿄돔에서의 경기는 자이언츠의 모회사 요미우리사가 후원한다. 게다가 일본대표팀의 사령탑이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다. 이승엽으로선 소속팀 감독이 이끄는 일본대표팀과 또 한 번 날을 세운 채 대결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이승엽과 가까운 한 지인은 “작년 정규시즌 내내 부진했던 이승엽이 올림픽에선 일본과의 준결승 때 극적인 홈런을 터뜨리며 활약하자 비난조로 헐뜯는 일본 언론도 있었다. 마음 여린 이승엽으로선 신경을 안 쓰려해야 안 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참의 전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이승엽은 2000년대 들어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 대표팀 멤버로 참가해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때문에 이번 WBC와 관련해선 팬들조차 “이젠 놓아줄 때도 됐다”면서 불참 선언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찌보면 이번 WBC는 이승엽 없는 대표팀이 어떤 식으로 굴러갈 지에 대한 평소 의문과 앞으로의 국제대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는 기회다.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
1회 대회때는 간단했다. 아시아예선(A조)에서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4개국이 차례대로 붙은 뒤 그중 상위 두 팀이 미국에서 열린 8강 리그에 진출하는 식이었다. 보통의 국제대회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번엔 달라졌다. 소위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불리는 시스템을 WBC 사무국에서 도입했다. 2승을 거둔 팀이 상위 레벨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우연을 배제하고 진정 실력을 갖춘 팀만이 위로 올라가도록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8강행 티켓을 따낸 두 팀이 또 한 번 1, 2위 순위 결정전을 갖는다. 따라서 실력 있는 팀간의 경기수가 많아지므로 흥행 요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배정 3년 전과 판이
제2회 WBC의 또 하나 특징은 1회 대회와 달리 한국이나 일본이 준결승전에 가서야 미국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3년 전에는 8강 리그에서 한국, 일본, 미국, 멕시코가 한조였다. 당초 준결승 진출을 자신했던 미국은 한국에 패한 뒤 멕시코에게 또 한 번 덜미를 잡히면서 일찌감치 탈락하고 말았다.
아시아 국가들을 얕보는 식으로 조편성을 했다가 큰코를 다친 셈인데, 스타플레이어가 많은 미국이 일찍 탈락하면 대회 흥행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번에 미국은 까다로운 한국, 일본, 쿠바, 멕시코를 모두 준결승에나 가야 만날 수 있도록 조배정을 바꾼 것이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 원인제공을 바로 한국이 했다. 한국이 1회 WBC에서 파죽지세로 4강에 들면서 메이저리그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던 미국의 계획이 헝클어졌다. 물론 미국이 한국 야구의 힘을 인정하면서 대회방식과 시드 배정까지 바꾼 계기가 됐으니,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론 어깨에 힘줄 만한 일이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