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 하우선 선생 소장 고서 1361권, 일반도서 771권 기증
![](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6/0601/1464739062091972.jpg)
하유집 씨와 도서관 관계자들이 <담헌문고> 현판식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남=일요신문] 하용성 기자 = 국립 경상대학교(GNUㆍ총장 직무대리 정병훈) 도서관(관장 허권수 한문학과 교수)은 지난 5월 31일 오전 11시 30분 도서관 고서실인 문천각에서 고문헌 기증자 환재(渙齋) 하유집(河有楫) 씨를 초청해 ‘담헌문고’ 현판식과 문고목록 증정식을 가졌다.
경상대 도서관은 “전 성균관 부관장인 하유집 씨는 지난해 7월 담헌 하우선 선생이 소장했던 고서 1361권과 일반도서 771권을 기증했는데, 1년간의 정리과정을 거쳐 이날 문고 현판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고문헌을 기증한 담헌문중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심방동에 세거해왔으며, 조선중기의 대학자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아우인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의 후손들이다.
낙와의 아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겸재의 학문을 이어 대대로 학문하는 집안이 됐고, 조선 말기에 와서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가 다시 학문을 일으켰다.
이후 그 손자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이 가학을 계승했다. 담헌은 자신의 학문도 대단했지만, 남명학을 중흥시킨 큰 공이 있다.
덕천서원 복원, 남명선생 신도비 등의 문제로 경상우도 선비들 사이에 남인과 노론으로 갈등이 생겨, 1926경부터 남인 가문의 선비들은 덕천서원에 출입을 하지 않게 되자 덕천서원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남명 후손들이 담헌을 찾아와 덕천서원의 위상을 회복하고 남명의 진면목을 다시 알려 줄 것을 여러 차례 간청했다. 이에 담헌은 먼저 계를 만들어 강우지역 3000여 명의 유림들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남명의 선배, 친구, 제자, 사숙인들의 생애와 학문 등의 내용을 포괄한 <덕천사우연원록>을 편집·간행해 남명학파를 다시 정립했다.
또 <남명집>도 새로 인쇄·배포했다. 남명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확실하게 닦은 것이다.
담헌의 집안에는 대대로 많은 고문헌이 소장돼 있었다. 담헌의 손자 하유집 씨는 이 문헌을 관리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다.
1970년 이후 서울에 살면서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고향에 와서 관리·점검했다. 도난의 위험 때문에 서울로 옮긴 적도 있었다.
어느 해 그의 숙부가 “서간이 여러 장 있는데 나에게 몇 장을 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가, 조카에게 나무람을 당한 사실이 있었다. 이 일은 유림사회에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다.
하유집 씨는 조상의 손때가 묻은 고문헌과 도서를 아무런 조건 없이 경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서간 3000통은 책자로 만들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보냈는데, 이 역시 경상대학교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하유집 씨가 기증한 책에는 도서관에 소장돼 있지 않던 경남지역 남명학파 선현들의 문집·저서 등 가치 있는 문헌이 많이 있어 남명학과 지역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유집 씨는 “아무리 가치 있는 문헌이라도 개인이 보관하다 보면, 전혀 활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훼손·도난 등의 우려가 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만다, 제때 기증하지 않다가 도난당해 땅을 치고 탄식하는 사람이나 가문도 여럿 보았다. 문중 고문헌을 누구나 열람해 연구에 활용되게 하기 위해 대학에 기증했다”며 기증 경위를 설명했다.
허권수 관장은 “상당한 재산 가치가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흔쾌히 기증한 환재 하유집 옹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한다. 올 8월이면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이 완공된다. 이미 기증받은 고서와 함께 최신 설비를 갖춰 새롭게 진열할 계획이다. 그 거룩한 뜻에 보답하기 위해 가장 좋은 설비로 정성을 다해 보존하고 연구자가 열람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