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늦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고고씽~
▲ ‘대기만성’ 기승호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늦게 지명을 받았지만 올시즌 뛰어난 활약으로 신인왕 경쟁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정지원(정): 이번 올스타전에 원더우먼 복장을 하고 나와서 히트를 쳤는데 본인의 아이디어였나요?
기승호(기): 제가 참가한 분야가 덩크슛 콘테스트였죠. 그런데 김효범, 김민수 등 덩크슛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 즐비해서 사실 실력으로 경쟁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그런 자리에서 적어도 팬들을 위해 뭔가 하나는 해야겠다는 고민은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팀에서 그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죠. 그런데 너무 망가지는 방법이라서 당일 아침까지 망설이다 결국 멀리서 올라온 창원 팬들을 위해서 결단을 내렸죠.
정: 그 날 덩크슛을 세 번 시도한 걸로 기억하는데 거추장스런 복장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제대로 링에 꽂던데요.
기: 그날 제 복장이 원피스 였거든요. 머리에 가발은 물론 얼굴에 화장까지 했고 팔에는 표창을 걸고 나왔어요. 복장 자체만으로도 심하게 불편했는데 ‘깜짝쇼’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남들이 몸을 풀 때 전 라커에 숨어 있었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평소 잘 되던 것도 안 되더라고요(웃음).
정: 대부분의 팬들이 ‘기승호’하면 길거리 농구를 떠올리던데 어떤 연유죠?
기: 제가 어릴 때는 축구를 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계속 했었고 팀의 주장까지 맡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키가 너무 자라면서 신체조건이 오히려 축구하기에 불리해진 거예요. 당시 <마지막 승부>라는 인기 스포츠 드라마에 영향을 받으면서 농구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됐죠. 하지만 집안에서 농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축구가 싫으면 공부를 하라고 해서 운동을 포기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농구대회에 출전했다가 창단을 앞두고 있던 안양고등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하게 된 건 안양고 1학년 때부터였어요.
정: 길거리 농구를 하다가 정식으로 학교에서 농구를 해보니 어떻던가요?
기: 창단한 안양고 멤버들이 너무 쟁쟁했어요. 전년도에 우승을 3번이나 했던 성남중학교 멤버가 세 명이나 있어서 그 친구들에게 농구를 많이 배웠어요. 이미 그 당시 제 키가 194cm로 신장은 가장 컸지만 기본기가 없다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슛 연습만 죽어라고 했어요. 그렇게 3년을 보내다보니 기량도 많이 향상됐고 고2 말미에는 이미 동국대로 진학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까지 됐죠.
정: 그 당시에 동국대학교 진학을 선택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기: 당시 하승진이 이미 연세대를 선택했었고 차재영이 고려대를 선택했던 상황이었어요. 강병현은 중앙대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이지운은 한양대행이 결정났었죠. 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저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동국대를 선택한 거죠.
정: 그런데 처음부터 주전으로 뛸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동국대로 진학했는데 예상과 달리 인생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를 맞았었다면서요?
기: 1학년 때는 그래도 주전으로 뛰었어요. 물론 성적이 좋진 않았었죠. 그런데 갑자기 2학년이 되면서 최성호 감독님에서 최희암 감독님으로 바뀌게 됐어요. 스타감독이 오시면서 때마침 개교 100주년과 맞물려 제 밑으로 좋은 후배들을 대거 보강했고요. 한순간에 저는 퇴출 영순위 선수가 됐고 2학년 때는 경기에 출전하지도 못했어요. 정말 그 때부터 “남들 다 잘 때 운동했다”는 말을 실천했어요. 내 모든 걸 농구에 투자했어요. 밤이면 혼자 체육관에 남아서 불 켜놓고 미친듯이 슛 연습을 했었는데 그걸 최희암 감독님께서 알게 되신 거예요. 결국 2학년 말미에 감독님의 인정을 받아서 출전기회를 얻게 됐죠.
정: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때 9번째로 지명됐다는 서운함보다는 LG에 지명돼서 만세를 불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죠?
기: 제가 원래 94년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우승했을 때부터 LG어린이 팬이었거든요. 전 부천에서 자랐지만 인천 연고의 팀보다는 서울 연고의 LG를 응원했어요. 야구든 농구든 무조건 LG만 응원해왔는데 드래프트 현장에서 7번 픽을 보유했던 KT&G가 정휘량을, 8번 픽을 보유했던 KTF가 윤여권을 지명하면서 저를 건너뛰기에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죠. 바로 그 순간 9번 픽인 LG에서 저를 지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정: 얼마 전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김성철 선수에게 팔꿈치로 일격을 당했었는데 지금 괜찮은 건가요?
기: 당시에는 정신이 좀 없었는데 조금 지나고 나서 턱과 치아를 만져보니 괜찮았어요. 사실 저보다는 팬들이 심하게 걱정을 하셨어요. 다음날 병원에 가면서 성철 형에게 먼저 전화를 드렸어요. “저 기승호입니다. 형! 저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겨서 죄송합니다”고 했더니 김성철 선배가 “너하고 네 가족 그리고 LG구단에 미안하다. 그런데 괜찮냐?”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서로 오해를 다 푼 거죠.
남보다 기본기가 떨어졌던 고교시절과 농구를 그만두라는 통보까지 받았던 대학시절을 이겨낸 기승호. 그러나 그의 루키시즌은 오히려 농구인생에 있어 최고의 황금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가장 늦게 지명된 자가 신인왕 경쟁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CJ미디어 아나운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