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끊는 더티팬“우리도 맥 빠져”
▲ 리그 심판 34명 중 21명이 가족에게 소홀해 가장 큰 애환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진은 김현구 심판.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34명의 심판 중 축구선수 출신은 무려 27명이다. 또한 전임심판 중 14명은 공무원, 회사원, 지도자, 전문직 그리고 자영업에 종사하며 심판 준비를 해왔다고 말한다. 각자 다른 길, 다른 생활을 해오면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잊지 않고 매진해 온 결과다. 워낙 대우가 박하다 보니 대부분 ‘투잡스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심판의 판정에 시비를 거는 선수나 서포터스들을 만난 적이 있다’는 문항에 4명을 제외한 30명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심판은 “정말 난투극에 가까웠던 게임인지라 경고 9장에 퇴장 1명 판정을 낸 적이 있다”며 “그때 선수를 비롯해 축구팬들의 질타를 심하게 받았다”고 설명한다. 심판들은 원만히 경기가 진행되도록 가급적이면 휘슬을 불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플레이를 할 때 반칙을 선언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선수와 팬들은 심판을 향해 거친 언행을 일삼으며 항의를 해온다.
그런가 하면 많은 심판들이 ‘페널티 파울에 승패가 결정될 때’ ‘홈경기를 치른 팀이 졌을 때’의 경우 시비를 거는 이들이 많다고 답했으며, 일부는 “특정팀 선수들이 피해의식에 젖어 경기만 끝나면 비속어를 남발한다” “진 팀 서포터들이 경기 후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욕설을 퍼부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오판의 경험은 34명의 심판 전원이 겪은 적 있다. 경기 중 벌어지는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데다 보는 각도에 따라 파울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 경기 후 카메라 판독을 볼 때면 ‘아차’ 싶은 때가 있다는 것이 심판들의 이구동성이었다. 한 심판은 “내 각도에서는 분명 파울이 아니었는데 카메라가 있는 반대편에서 보면 명백한 파울일 때가 있다”며 “하지만 이는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시청자나 해설자들은 카메라가 잡은 각도에서 축구 경기를 보기 때문에 판정 결과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심판이 잡아내지 못한 판정에 대한 질책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해설자들이 카메라 장면만 보고서 심판 판정을 부정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수많은 경기에서 심판을 보다 보니 별의별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34명의 심판 중 8명이 “경기 중 운동장에 물병을 비롯해 수박, 닭다리 등의 오물 투척을 할 때 황당하다”고 답했는데 이 중 한 명은 얼음 물병에 맞아 얼굴 일부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을 정도다.
또한 선수들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계속 항의할 때와 시뮬레이션 행동으로 넘어지고도 감독의 눈치를 보며 항의할 때, 그리고 나이 어린 선수가 욕설과 반말을 할 때 “정말 어이없다”고 답했다. 이 외에 관중석에 있던 팬이 주심에게 할 말이 있다며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거나 “상대팀에게 돈을 받았느냐”고 묻는 축구팬들도 있다고. “특이한 서포터가 많다”고 답한 한 심판은 “9년 동안 한 축구장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장 가까이서 선수들을 만나는 심판들에게 각 포지션 별로 최고의 선수들을 꼽아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최고의 공격수로는 이근호가 16표를 받아 1위에 올랐으며, 정성훈(부산) 8표, 정조국(서울)이 5표로 뒤를 이었다. 최고의 미드필더로는 심판 75%가 기성용(서울)을 선택,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 외에 김기동(포항), 이청용(서울), 백지훈(수원), 하대성(전북), 이관우(수원)가 각각 3표를 받았다.
심판들은 최고의 수비수로 곽태휘(전남)에게 6표를 던졌다. 그 뒤는 5표를 받아 곽희주(수원)가 올랐으며, 나머지 심판들은 “없다”라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최후 수비수인 골키퍼 중 1인자는 13표를 받은 이운재(수원)였다. 그 뒤로는 정성룡(성남)이 11표를 받았다. 또한 김병지(경남)도 10표를 받아 베테랑의 힘을 입증했다. 역대 최고의 용병 질문에는 9명이 샤샤(전 성남)를 꼽았으며, 그 뒤는 라데(전 포항)와 에두(수원)가 각각 5표를 받아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K리그 최고의 매너를 지닌 선수는 누구일까. 심판들 중 10명은 “김기동이 상대팀 선수나 심판을 대하는 예의가 좋다”고 답했으며, 골키퍼 김병지도 7표를 받아 매너맨으로 꼽혔다. 송종국(수원, 5표)과 조원희(위건 애슬레틱, 3표), 신형민(포항, 2표)도 매너 좋은 선수로 지목됐는데 한 심판은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매너도 좋다”며 “해외 진출한 박주영, 박지성도 정말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플레이를 자주 하는 선수로는 전임 심판 90%인 30명의 지지(?)를 받은 수도권 팀의 K가 뽑혔다. 심판들은 “동업자 정신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너무 축구에 열중한 나머지 심판이 보지 않는 사이 반칙을 일삼는다”라며 K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했다.
6명을 제외한 28명이 “다시 태어나도 K리그 심판이 되겠다”고 말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가득한 K리그 전임심판들. 그들은 K리그가 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단, 지도자, 선수, 심판, 관중이 한 가족, 동업자라는 생각으로 축구를 사랑하면서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할 때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스폰서와 유소년부터 발굴해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으며, “언론의 적극성”, “겨울에도 경기 가능한 돔구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 심판들의 월급은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지급되는데 부심은 체력단련비 명목으로 최하 110만 원부터, 주심은 135만 원부터 등급별로 책정된다. 체력단련비 외의 경기 수당은 부심이 45만 원, 주심이 65만 원이다. 심판 한 명이 한 달에 경기에 배정되는 횟수는 2~3경기 정도. 만약 판정에 문제가 있거나 경기 중에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 심판들은 심판위원회에 회부돼 당분간 경기에 배정되지 않는 방법으로 페널티를 받는다.
제주=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문다영 객원기자dymoon@ilyo.co.k
▲ 체력도 업!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선수들뿐만 아니라 심판진도 동계훈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