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현명한 대처…범인들 오리발 안먹혔다
지난 5월 21일 저녁 6시경 신안군 한 섬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여교사 A 씨는 학부형 박 아무개 씨(49)가 운영하는 횟집에 들렀다. 이날은 토요일로 관사에 머물던 동료 교사들이 모두 육지로 나간 상태라 A 씨는 식사를 하기 위해 홀로 그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학교 관사와 2km 정도 떨어져 있어 A 씨는 평소에도 종종 식사를 위해 찾던 곳이었다.
식당 주인이자 학부형인 박 씨는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여교사인 A 씨를 반겼다.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권했고 양식업을 하는 이웃 주민 이 아무개 씨(34)까지 불러 합석시켰다. 박 씨와 이 씨는 평소 ‘삼촌’ ‘조카’라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A 씨는 평소 술을 잘 못 마시는 데다 다음 날 여행 계획까지 있었지만 박 씨의 강권으로 인삼주를 10잔가량 마셨다. A 씨가 마신 담금주는 35도에서 43도 정도 되는 독주였다. A 씨는 술자리에서 두 번 구토를 할 정도로 만취 상태가 됐다.
강력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지적돼 온 경찰의 초동수사가 이번만큼은 제대로 역할을 해냈다. 사진은 초동수사를 맡은 섬 파출소 전경.
A 씨가 만취해 정신을 잃자 박 씨는 밤 11시경 승용차로 관사까지 바라다 줬다. 식당 주인이자 학부형인 박 씨가 여교사를 관사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일종의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박 씨는 배려 이면에 검은 속셈을 감추고 있었다. 사건 당일 다른 교사들은 모두 육지로 나간 상태라 관사엔 A 씨만 머무르고 있었다. 박 씨는 숙소 안까지 들어가 A 씨를 성폭행했다. 다만 박 씨는 현재 성폭행 혐의는 부인하며 성추행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뒤이어 이 씨가 차를 몰고 관사에 도착했다. 박 씨의 차가 관사를 떠난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숙소로 들어가 A 씨를 성폭행했다.
이어 술자리에 없었던 김 아무개 씨(39)도 박 씨의 연락을 받고 숙소에 나타났다. 자녀가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재학 중인 김 씨는 술자리가 있었던 박 씨의 횟집 바로 옆 횟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 씨는 숙소에 있던 이 씨를 내보낸 뒤 성폭행했다. 잠시 뒤 이 씨가 숙소로 돌아와 다시 성폭행을 했다.
자칫 당일 사건은 그대로 묻힐 뻔했다. 고립된 ‘섬’에서 일어난 일이고 피해자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교사는 용기 있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정신이 든 A 씨는 22일 새벽 2시 2분 112에 신고를 했다. 이에 관할 파출소에서 출동한 경찰이 A 씨를 파출소로 데려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또한 관사로 가 응급키트로 이불과 정액 등 1차적인 증거 수집을 하는 등 초동 수사에도 만전을 기했다. 이어 파출소는 관할 보건소에 연락을 취했지만 보건소에는 성폭행 증거를 채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정확한 검사를 위해 A 씨가 첫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파출소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 A 씨의 부름을 받고 인근 중학교 관사에서 머물고 있었던 동료 남교사가 파출소에 도착했다. 2시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A 씨는 “중학교 관사로 가서 쉬고 오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김경식 파출소장은 “조심스레 A 씨에게 증거 채집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A 씨도 몸을 씻지 않고 첫 배를 기다렸다. 매뉴얼대로 초동 수사를 진행한 경찰의 노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첫 배인 9시 배에 승선하기 위해 8시 20분경 A 씨는 남교사와 함께 파출소에 다시 왔다. 이때 A 씨는 사건 당시를 간단하게 메모해왔다고 한다. 이렇게 A 씨는 남교사, 경찰관 한 명과 함께 첫 배로 섬을 나가게 된다.
목포에 도착하자 A 교사의 얘기를 들은 동료 여교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고 한다. 경찰관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A 씨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남성도 합류하게 됐다. 이렇게 A 씨는 동료 여교사, 남자친구, 경찰관 등과 함께 해바라기센터로 가서 검사를 받게 됐다.
한편 A 씨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3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도와주세요. 여자친구가 윤간을 당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파출소의 초동 수사가 끝나고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센터에서 검사를 마친 뒤 12시 즈음부터 A 씨는 목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목포경찰서 측이 마지막 배에 승선해 섬으로 들어오게 된다. 섬에 들어와 1박 2일 동안 관사에서 체모 등의 증거를 정밀 수집했고 관사 주변 담배꽁초 등도 수집했다. 또한 CCTV 분석 작업도 시작됐다. 경찰서에서 관사까지 가는 길에 설치된 CCTV는 4대로 올해 부임한 김 파출소장의 강력한 추진으로 지난 5월 2일에 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김 소장은 “관내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해 깊이 통감하고 있다”며 피해자 A 씨의 신변과 2차 피해를 매우 우려했다.
목포경찰서는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를 9명으로 추려낸 뒤 피의자를 3명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 A 씨의 진술 가운데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기 때문. 사건을 담당한 목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팀 신규근 팀장은 “A 씨의 진술 가운데 피의자 이름이 있었다. 비슷한 이름이 있어 피의자 3명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애초 경찰 조사에서 박 씨와 이 씨, 김 씨 모두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 박 씨는 성추행 혐의는 시인했지만 “식당 문을 닫아야 해서 관사에 데려다 주고 신체를 만지기만 했을 뿐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식당에서 교사에게 담요를 덮어줬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관사 이불 안에서 박 씨의 체모가 발견됐다. 여전히 박 씨는 성폭행 혐의만은 부인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박 씨의 체모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성폭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인들의 횟집에서 피해 여교사 관사까지 가는 길목에 설치된 CCTV.
그러나 국과수 DNA 검사 결과 이들의 주장은 거짓임을 밝혀졌다. A 씨의 몸에서 이 씨와 김 씨의 DNA가 검출돼 범행이 확인된 것.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이 씨와 김 씨는 DNA 검출 이후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김 씨는 지난 2007년 1월 21일 대전시 서구에서 발생했던 20대 여성 성폭행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해당 사건은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아 범인의 DNA만 보관돼 있었는데 그것이 김 씨의 DNA와 일치한 것.
게다가 경찰은 차량 이동경로가 찍힌 CCTV 분석과 피의자 간 통화내역, 피해자 진술 등을 토대로 이들이 사전에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A 씨는 병가를 내고 안정을 찾고 있다.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6월 4일 이들을 구속한 뒤 추가로 조사한 결과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점과 주거 침입이 성립하는 점, 범행 공모 정황 등을 토대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8조 강간 등 상해·치상 혐의를 적용해 지난 10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신안·목포=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경찰 “구체적 증거 더 있다”…피의자들 범행 공모 여부 주목 국민들의 관심은 피의자들의 ‘공모 여부’에 쏠리고 있다. 현재 경찰 또한 피의자들이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고 있다. 목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팀 신규근 팀장은 “묵인도 공모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어떤 근거로 이들이 공모를 했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첫째, 경찰의 CCTV 분석 결과 박 씨의 차가 횟집을 출발하고 30초 뒤에 이 씨 차가 출발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 씨의 차가 출발하고 20분 뒤에 김 씨 또한 관사로 향했다. 둘째, 범행 직후인 22일 새벽 1시경 피의자 3명이 관사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만난 것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 셋째, 같은 날 오전 7시경 셋이 다시 박 씨의 식당에서 만난 정황도 포착됐다. 마지막으로 박 씨와 김 씨가 범행 전후 두 시간 동안 6차례 통화를 시도한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 박 씨에게 5차례나 연이어 전화한 김 씨의 행동이 석연치 않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목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사무실 전경. 이 외에도 경찰은 공모를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를 확보했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경찰이 피의자들의 공모 여부와 관련해 구체적인 증거를 추가로 여럿 확보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A 씨의 2차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관련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반면 피의자 3명은 여전히 공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경찰이 이들의 공모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는 것일까. 공모가 입증되면 특수강간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 형법 제 297조에 따라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는데 특수강간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우선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상 강간 등 상해·치상 등의 혐의로 피의자들을 입건해서 검찰에 송치했다. 강간 치상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특수강간보다 형량이 높다. 기본적으로 강간 치상 혐의가 입증되고 공모 혐의까지 입증되면 가장 형량이 높은 특수 강간치상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강간 치상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경찰은 피해 여교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피의자들의 주거 침입이 성립하는 점을 고려해 형량이 높은 강간 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그렇지만 법조계에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만으로 재판부가 강간 치상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경찰은 강간 치상 혐의 입증에 주력하면서도 공모 혐의를 입증해 강간 치상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특수강간 혐의는 인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 |
범인들 횟집 간판 사라져…섬마을엔 무거운 공기만 과연 세 명의 피의자는 뭘 하던 어떤 사람들일까. 알려진 것처럼 박 씨는 선착장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옆 횟집에서 김 씨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상 김 씨가 운영하는 횟집이었다. 섬 주민들에 따르면 해당 식당은 김 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으로 현재는 사실상 김 씨가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양식업을 하고 있었다. 현재 박 씨와 김 씨가 운영하는 횟집은 간판이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 세 피의자 모두 그 섬 토박이는 아니다. 셋 가운데 한 명만 그 섬 토박이이며 한 명은 신안군의 또 다른 면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그 섬에 처가가 있어 들어와 살고 있다. 가장 짧게 이 섬에서 지낸 이는 3년 전에 들어온 김 씨다. 김 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2007년 대전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도 지목됐는데 당시는 그가 이 섬에 들어오기 전이다. 간판을 뗀 김 씨의 횟집(왼쪽)과 박 씨의 횟집. 이번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박 씨와 이 씨, 김 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하라”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 이에 대해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는 처벌해야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섬 주민들 역시 “죄는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섬에 남아있는 피의자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조심스레 얘기했다 이번 사건의 충격은 섬을 뒤흔들고 있었다. 기자가 섬을 찾은 지난 9일, 생업도 포기한 채 학부모들이 초등학교를 사수하고 있었다.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 학부모는 “밤낮으로 교대하며 학교를 지키고 있다”면서 “남아있는 선생님들의 충격이 상상 이상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한편 섬에서 해당 초등학교의 다른 여교사를 자녀로 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섬에 들어오게 됐다”며 “피해 여교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됐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덧붙여 “일부 네티즌들이 피해 여교사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는데 그게 같은 학교에 근무 중인 우리 아이의 신상정보였다”며 “피해 여교사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엉뚱하게 우리 애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민] |
실종·성폭행 사건 잇달아…신안경찰서 이번에는 신설될까 요즘 신안군의 섬에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달 19일에 신안군에 있는 다른 섬에서 초등학교 남교사가 실종됐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남교사의 실종이 강력 범죄와 연관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아직 남교사가 발견되지 않아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신안군 소재의 섬에서 근무 중인 초등학교 교사와 관련된 두 건의 사건이 연이어 터졌지만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지난 달 초등교사 실종 사건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며칠 사이 신안군에 있는 섬에서 교사들이 실종되고 성폭행을 당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남교사 실종 사건이 재조명됐다. 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선 지난 2012년 ‘염전 노예 사건’까지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안군은 전라남도 지역 22개 시·군 가운데 유일하게 경찰서가 없는 지역이다. 진도, 함평, 강진, 장흥, 구례, 곡성 등보다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지만 경찰서가 없는 것. 대신 목포경찰서가 15개 파출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파출소 경찰관은 90여 명이다. ‘신안경찰서’ 신설 요구는 10년 전인 2007년부터 시작됐다. 신안군은 지난 2007년 ‘신안경찰서 유치위원회’를 결성해 신안경찰서 신설을 계속 요구해왔다. 신안경찰서 신설 문제는 지난해 행자부 심의를 통과했지만 경찰서 신설이 추진된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신안군의 치안 수요보다 높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특히 2012년 염전 노예 사건으로 경찰서 신설 요구가 있었으나 예산 반영이 안 되면서 계획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신안군청 관계자는 “2007년부터 꾸준히 신설을 요구했으나 예산 상황 때문에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