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알고보니 영어 잘하데요”
▲ 추신수는 중장거리 타자이면서도 한때 100미터를 11초에 끊었던 달리기 실력으로 도루 개수를 늘리고 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전반기가 끝나면서 각 미디어들마다 저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더라고요. 너무 과분한 칭찬을 많이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솔직히 제가 그리 뛰어난 성적을 올린 건 아니잖아요. 특별하게 잘 하지도, 못 하지도 않았던 중간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후반기 첫 경기가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벌어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시애틀은 제 친정팀입니다. 구단계자들부터 선수들까지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 경기 전 가볍게 안부인사를 주고받느라 바빴어요.
그중에서 한국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치로 선수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치로에게 “WBC에서 우승한 거,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운을 떼자, 이치로는 “한국은 정말 이기기 힘든 나라였다”면서 당시의 상황들에 대해 설명을 하더라고요. 저 또한 WBC대회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일본팀의 강점에 대해 얘기를 하며 모처럼 이치로와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치로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가끔 한국 언론에서 저와 이치로를 비교하는 기사가 눈에 띌 때가 있는데 지금은 전 이치로의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 서로 다른 유형의 스타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치로는 공을 맞히는 스타일이고 전 제 나름대로의 스윙을 하는 편이죠. 이치로도 파워는 있지만 그 파워를 포기하고 공을 맞히는 방법으로 안타 개수를 늘려간다면, 전 배트 스피드가 좀 떨어지기 때문에 중장거리 타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요.
한국 팬들은 WBC대회를 통해 이치로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한데, 메이저리그에서 만나는 이치로는 실력적인 면에서 볼 때 분명 배울 점이 많은 선수이고 같은 동양인 선수라 그런지 경기장에서 만나면 미국이나 남미 출신보다 더 반가운 것도 사실입니다.
참, 그리고 이치로는 영어를 잘해요. 이치로가 영어를 안 배우려 하고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여기서 생활하다보면 자신이 답답해서라도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어요.
2000년 미국 진출 이후 5~6년이 지났을 때까지 전 의사소통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따로 영어를 배운 것도 아니고 오로지 선수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현장에서 습득한 탓에 시간도 오래 걸렸고 편안히 대화를 나누기까지엔 남다른 노력도 필요했었죠. 제 아들 무빈이의 영어 실력을 보면, 영어 습득은 시간이 아니라 나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 구사하거든요. 하지만 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곤 집에선 무조건 한국 말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우리나라 말을 잊어 버릴까봐 걱정이 돼 집에선 한국 말로 대화를 강요하는데 어린아이다 보니 종종 엄마, 아빠는 한국 말로, 무빈이는 영어로 대답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핏줄은 속일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 한 가지! 제가 중장거리 타자이면서 도루 개수가 높잖아요. 모든 건 달리기 실력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100미터를 11초에 끊었던 것 같아요. 미국 와서 체중이 늘고 달리기를 해보지 않아 그 실력이 줄어들었는데 지금도 아마 12~13초 정도는 뛰지 않을까 싶어요. 학교 다닐 때 계주대회에서 마지막 주자는 항상 제가 맡았습니다. 주로 역전승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마지막 레이스를 부탁했던 거니까.
달리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는 건 순전히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육상 선수 출신이시거든요. 중3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랑 달리기 시합을 해보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무빈이의 뛰어난 달리기 실력입니다. 또래 아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달리기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 마치고 귀국하면 3대가 달리기 시합을 해보려고 해요. 상상만 해도 흐뭇한 모습일 것 같네요.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