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섭 기자의 연예편지 스물네번째
아직 박유천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는 가운데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그날의 정황은 대부분 고소인인 여성의 주장을 통해서입니다. 고소 여성의 주장에 따르면 박유천은 일행들과 함께 강남 소재의 한 유흥주점에 놀러 갔고 룸 내부에 있는 화장실에서 접대여성인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문제의 성관계를 두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입었던 속옷 등을 증거로 제출했던 고소 여성은 며칠 뒤 입장을 바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에 화가 나서 성폭행으로 고소했다며 소를 취하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박유천의 팬들은 그날의 일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한류스타인 박유천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중인 가운데 그런 업소에 갔다는 사실 자체에서 시작해 화장실에서의 성관계를 두고 더욱 실망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엄연히 사생활에 포한된 영역의 일이지만 경찰 고소를 통해 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박유천은 엄청난 이미지 하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사진 제공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논란이 불거지면서 박유천의 공익근무요원 근태 문제까지 불거졌습니다. <일요신문>의 확인 결과 근태 논란은 박유천 입장에서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색안경을 끼고 박유천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연예계에서 남자 연예인에게 가장 조심해야 하는 사안으로 크게 두 가지가 손꼽힙니다. 첫 째는 성관련 문제이며 두 번째는 군대 관련 문제입니다. 둘 다 연예계 복귀가 매우 힘든 구설수입니다. 박유천은 이번 피소로 인해 이 두 가지 물의에 동시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박유천이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 스타임을 감안할 때 그 손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딱 떨어지게 손실을 계산하긴 힘들지만 연예관계자들은 박유천이 수백억 원대 손실을 봤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씨제스)의 입장입니다.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고소 취하에 이르는 과정에서 씨제스 측은 모두 세 번의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때마다 씨제스는 거듭 언론하고만 싸우려 들고 있습니다.
첫 공식 입장에서 씨제스는 “유명인 흠집내기를 담보로 한 악의적인 공갈 협박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피소 보도 자체만으로 박유천의 심각한 명예 훼손인 만큼 조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성급한 추측이나 사실 여부가 확인 되지 않은 보도에 대해 자제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 공식 입장에서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아예 “박유천 피소 기사 관련 미확인 보도와 추측성 기사가 계속 되고 있어 보도 방향에 대한 쟁점을 바로잡고자 합니다”라고 시작할 만큼 언론에 대한 입장이 더욱 강경해졌습니다. “JTBC에서 최초 보도된 피소 내용은 경찰 측의 공식 수사 내용에 기반 하지 않은 출처 불명의 과잉 보도 이며 이로 인한 박유천의 심각한 명예훼손이 우려됩니다”라며 “일부 언론 에서 마치 박유천의 혐의가 인정 된 것처럼 보도 된 기사는 사실 여부와 멀어진 추측성 보도이며 명백한 명예 훼손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온라인상에서 확인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확대 및 재생산 되는 행위 또한 심각한 명예 훼손으로 강력히 법적 대응할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고소 취하 사실이 알려진 뒤 세 번째 공식입장이 나왔습니다. 언론에 대한 대응 강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 절차조차 없이 한류스타란 이유로 한 매체를 통해 고소 접수 사실만을 토대로 실명 보도 했고 그 날부터 범죄자 낙인이 찍혔습니다”라고 밝힌 씨제스는 “그 후 경찰 수사 발표가 아닌 무분별한 ‘묻지마 사실, 아니면 말고’ 형태의 언론 재판이 시작 됐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이 건에 대한 상대측은 고소인이 아닌 사실 확인 없는 근거 없는 보도라고 생각합니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MBC 뉴스 방송 화면 캡쳐
박유천 측이 생각하는 이번 사안의 상대가 고소인이 아닌 언론이라는 입장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이 기사화된 데 대한 아쉬움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13일 저녁에 최초 기사가 보도됐고 결국 14일 늦은 밤 피해 여성 측의 고소 취하가 이뤄집니다. 만약 언론이 14일 밤까지 피소 사실을 몰랐고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안은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13일 저녁 박유천의 피소 사실을 보도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요?
이는 단순히 이번 사안에 대한 문제가 아닌 언론의 관련 사안 보도 행태 전반과 관련된 일입니다.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인의 경우 성범죄와 연루돼 고소가 이뤄지면 그 사실이 실명 보도돼 왔습니다. 이는 박유천이 한류스타란 이유만으로 실명 보도된 것이 아닌 모든 유명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또 씨제스 측은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 절차조차 없이’ 보도가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번 보도의 진위여부는 박유천이 성폭행 혐의로 피소를 당했는지 여부입니다. 이번 기사의 팩트는 박유천이 성폭행을 했는지 여부가 아닌 박유천이 피소를 당했는지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사를 통해 무혐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경찰 수사 결과를 통해 다시 보도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언론계에선 유명인의 경우 성폭행 혐의로 피소가 됐다는 것 자체를 실명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위여부 확인 아닌 피소 사실 자체를 보도하는 것입니다. JTBC의 최초 보도 이후 타 매체에서도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손길승 SKT 명예회장의 강제추행 피소 사건이 이와 매우 비슷한 사례입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유명인인 손 명예회장 역시 피소됐다는 내용만으로 실명 보도가 이뤄졌습니다.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모든 유명인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례입니다. 최근 유상무 역시 같은 사례입니다.
씨제스 측이 얘기하는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수사권을 가진 경찰을 통해 이뤄질 일이며 그 과정을 통해 확인된 수사 결과를 기사화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일입니다. 씨제스 측의 주장처럼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 절차조차 없이 한류스타란 이유로 한 매체를 통해 고소 접수 사실만을 토대로 실명 보도 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유명인의 성범죄 피소 사실은 전혀 보도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알고도 묵묵히 기다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보도해야 됩니다. 아니 그것이 진실은 아닙니다. 검찰 기소 여부를 기다리고 법원의 결정을, 그것도 항소가 거듭되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뒤에야 언론은 기사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성폭행 범죄가 일어난 뒤 2~3년은 지난 뒤에야 보도가 가능하다는 뜻이 됩니다. 오히려 정치인 등 유명인이 이런 범죄로 피소됐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2~3년 동안 기사를 쓰지 않으면 언론이 거센 비난을 받지 않을까요?
물론 무혐의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억울한 유명인들도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범죄에선 힘 있는 유명인보다 피해 여성의 보호에 더 가치를 두는 것에 사회 전반의 여론이 형성돼 있고 언론 역시 이에 맞춰 기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항간에선 왜 성매매 여자 연예인은 실명 보도를 하지 않으면서 성폭행 피소 연예인만 실명 보도를 하는 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각각의 법이 가진 가치 때문입니다. 성폭력 관련 법률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적극 보호가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반면 성매매 관련 법률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보다 보호에 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업주와 성매수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주된 법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성매매 여성에 대해서는 처벌만큼이나 보호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성매매 혐의 연루 여자 연예인은 사법부의 처벌을 받는 피의자 신분이지만 보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이 실명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씨제스의 강력한 언론 대응을 보며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 ‘이 건에 대한 상대측을 고소인이 아닌 사실 확인 없는 근거 없는 보도, 다시 말해 언론’이라고 판단했는지 여부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박유천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것은 피해 여성의 고소와 고소 취하 때문이지 이를 보도한 언론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자체에 대한 대응 없이 언론의 탓만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함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해무> 스틸컷
물론 피해 여성은 여전히 법적으로 보호의 대상입니다. 그렇지만 고소를 취하하며 그 이유를 “성관계 후 박유천 일행이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해 기분이 좋지 않아 고소하게 됐다고 한다”고 밝히고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스스로 무고죄를 인정한 셈입니다. ‘강제성이 없는 성관계’는 곧 강간이 아님을 의미하고 강간이 아님을 인지한 상황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겨 강간죄로 고소를 했다는 얘기는 곧 무고의 죄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무고죄 역시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박유천 측의 고소고발이 없을 지라도 수사가 가능합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무고죄의 경우 검사의 실적에 크게 기여하는 터라 검사들이 적극적으로 인지 수사를 하는 영역”이라며 “박유천 사건의 경우 역시 검찰에서 무고죄로 수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피해 여성이 강간이 아님을 알고도 강간으로 고소를 하는 무고의 죄를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박유천이 이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이번 사건의 상대는 언론이 아닌 고소인입니다. 그럼에도 왜 씨제스는 고소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언론 탓만 하고 있는 지 안타깝습니다.
박유천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가장 절실한 대목은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고소 취하로 강간 피소에 대해 무혐의가 나온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서 더욱 무서운 후폭풍이 바로 ‘거액 합의설’이기 때문입니다. 행여라도 박유천 측에서 고소인 측에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합의를 해서 고소 취하가 이뤄졌다는 소문이 남는다면 박유천의 이미지 회복은 결코 쉽지가 않아 집니다.
박유천 측과 고소인 사이에 거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는 방법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이제라도 이번 사안의 상대가 언론이 아닌 고소인임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무고죄의 경우 검찰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박유천 측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합니다. 또한 이번 피소로 엄청난 손실을 본 만큼 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명예훼손죄에 대한 소송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고소인 측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보여줄 경우 ‘거액 합의설’과 같은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고소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이나 입장 표명 없이 거듭 ‘이 건에 대한 상대측을 고소인이 아닌 사실 확인 없는 근거 없는 보도, 다시 말해 언론’이라는 입장만 견지하게 된다면 스스로 ‘거액 합의설’을 키우는 게 되고 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첫 공식입장의 “유명인 흠집내기를 담보로 한 악의적인 공갈 협박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이 고소 여성 측에 대한 입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악의적인 공갈 협박에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대처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