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2018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 장담 못해”
이번 미국 방문 기간 중 만난 김운용 전 위원은 이전과는 한층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지인들로부터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질문을 하자 김 전 위원은 “원래 부드러운 남자”라며 “무도(태권도)의 권위를 지키고, 서양인 위주의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카리스마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소 강한 이미지를 줬을 뿐”이라고 답했다.
7일 저녁 리오호텔 스위트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운용 전 위원은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먼저 두 차례 실패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서는 “가장 최근인 지난 10월 IOC 총회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브라질 일본 스페인의 최고 권력자가 모두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해 유치활동을 벌였다. 다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인 오바마를 의식해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의 승자가 시카고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시카고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바로 100명이 조금 넘는 IOC 위원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IOC는 미국대통령이 와도 꿈쩍도 않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즉 김 전 위원은 한국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권을 쥔 IOC 위원의 세계를 잘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답답할 때가 많다. 2001년 IOC총회에서 나도 당했지만 한국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IOC 부위원장 선거와 평창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언론은 IOC의 2인자인 토마스 바하(독일)가 4년 후 차기 위원장으로 나설 것이기 때문에 평창보다 뮌헨이 불리할 것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객관적으로 가장 유리한 도시는 평창이 아니라 뮌헨이다.”
김 전 위원은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와 KOC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예전처럼 한국 사람끼리 몰려다니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득표에 도움이 되는 실속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는 것이 한국의 스포츠 위상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모두 국민의 혈세를 들이는 일인데, 다 퍼주는 식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지난 11월 8일 ‘2009 살아있는 전설상’을 수상했다. | ||
지난 10월 IOC 부위원장에 당선된 사람은 IOC 내에서 ‘친(親) 김운용계’로 유명한 세르미앙 능(싱가포르)이다. 최근 IOC 소식통에 따르면 김 전 위원은 ‘강요에 의해 사표를 제출했기에 IOC 위원직 상실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즉 어차피 김 전 위원의 IOC 위원 임기는 2011년 3월(만 80세)까지이기 때문에 2010년 위원 복귀 후 명예위원 전환 혹은 바로 명예위원 위촉 등 두 가지를 놓고 IOC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라는 것이다.
태권도는 김운용 전 위원에게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으면서 국기원 설립,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 태권도의 세계화를 손수 이끌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WTF 총재 선거에 대해 물었다. 특히 태국의 IOC 위원인 낫 인드라파나를 밀었다는 소문에 대해 진상을 밝혀달라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한 태권도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인드라파나 위원이 돼도 걱정이고, 조정원 총재가 재임을 해도 걱정이라고 말이다. 내가 인드라파나를 지지했으면 이렇게 얘기했겠는가? 그리고 내가 선거전에 뛰었다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됐을 것이다. 태권도는 현재 올림픽 정식종목 중 가장 기반이 취약하다. 2013년 IOC 총회에서 2020년 올림픽종목을 다루는데 이때 제외될 수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판정번복 및 심판폭행 등 끔찍한 사건이 터졌고, WTF 행정도 IOC로부터 주의조치를 받는 등 부족한 게 많았다. WTF를 중심으로 전세계 태권도인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 전 위원은 파행이 거듭되고 있는 국기원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국기원은 태권도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맨 처음 국기원이 왜 세계태권도의 중앙도장으로 설립됐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국기원을 파행으로 몰고 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정부의 지나친 간섭도 문제다. 특히 국기원이 법정법인화되었을 때 세계의 태권도인들이 과연 한국 정부의 하부 조직처럼 운영되는 국기원을 인정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태권도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할 때다.”
끝으로 ‘건강’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운용 전 위원은 직접 스트레칭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리를 편 채 허리를 앞으로 굽혔는데 두 손이 땅에 닿고도 남았다. “현대 태권도의 창설자인데 건강이 나쁘면 되겠어? 이 나이에 이 정도 할 수 있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
라스베이거스=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