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 따뜻 한국엔 냉정 ‘IOC의 두 얼굴’ 먼저 알라
▲ 2018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해서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해 IOC 위원에 복귀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
IOC 내부에 정통한 국내 스포츠외교전문가(익명 요구)는 최근 ‘이건희 사면’과 관련해 재미있는 멘트를 했다. “IOC가 만약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IOC 위원직 유지를 원치 않았다면 이미 자격정지나 박탈 등의 중징계를 취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IOC는 자신들의 최대 돈줄 중 하나인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인사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먼저 자국 내에서 사법처리를 당한 IOC 위원에 대한 IOC의 원칙 없는 태도, 즉 형평성의 문제를 거론하며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IOC로부터 특별대우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IOC 위원이 자국 내 사법처리로 자격정지나 혹은 자격발탁을 당한 경우는 숱하게 많다. 한국만 하더라도 2004년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에 대해 구속기소가 되자마자 바로 자격정지 결정을 내렸고, 2006년 박용성 전 IOC 위원의 경우 1심 선고가 난 후 자격정지조치가 내려졌다. 이 두 케이스만 해도 자격정지의 시점이 달라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전 회장은 2008년 7월 1심판결이 나온 후에도 IOC는 아무런 조치를 발표하지 않았다. 반 년이 지난 뒤인 2009년 1월에야 IOC 홈페이지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스스로 자격을 정지해달라고 요청하고, IOC가 이를 받아들여 희귀한 ‘자진자격정지’로 귀결됐음이 알려졌을 뿐이다. IOC가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 최대한 예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IOC의 이건희 예우의 두 번째 근거는 세계적인 경제 한파에 따른 IOC의 스폰서십 위축이다. IOC의 스폰서는 ‘TOP(The Olympic Partner)’로 불리는데 지난해 베이징올림픽때까지가 제6세대(2005~2008년)였고, 현재 제7세대(2009~2012)를 지내고 있다. 문제는 경제위기로 인해 6세대 12개 기업 중 4개사가 떨어져나갔고, 새로 들어온 곳은 ‘Acer’ 한 곳에 불과하다. 즉 기업 당 수천 만 달러를 내는 주요 스폰서가 3개나 줄어든 것이다. 이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3000만 달러 정도 결손이 발생하게 됐다(국제스포츠연구원 2009년 11월 23일). 이처럼 동계올림픽 사상 초유의 IOC구제금융이 예견될 정도로 스폰서십이 위축되는 가운데 IOC가 삼성의 간판인 이건희 전 회장을 쫓아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IOC의 무선통신장비 스폰서인 삼성의 계약기간은 오는 2016년까지다. 후원금도 6500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IOC는 한국정부가 이건희 사면을 단행한다면 바로 자진자격정지 조치를 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IOC의 극도로 이기적인 태도다. 삼성이 이처럼 IOC에서 중요한 돈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계올림픽 유치 등 한국에 반대 급부로 ‘선물’을 쉽게 안겨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두 차례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2003, 2007년)에서 이건희 IOC 위원은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했음에도 평창은 모두 실패를 맛봤다. 특히 2007년 과테말라에서는 이건희 당시 삼성회장이 IOC 총회를 20여 일 앞두고 브라질 등 중남미 6개국을 방문하며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펼쳤고, 심지어 총회 프리젠테이션 때는 연설까지 했다. 그럼에도 IOC 위원들은 평창을 택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등 진보진영에서는 “멀쩡한 상태였던 이건희 위원이 활동했음에도 실패한 동계올림픽 유치가 현재의 상태에서 이건희 전 회장이 활동한다고 해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체육계에서는 대체로 ‘이건희 사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다. 평창유치위원회 공동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원장은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이건희 IOC 위원의 정부 특별사면이 이뤄져야 한다. 각계각층의 사면청원은 시기적절하게 대두됐다”고 말했다. 주요 언론도 대체로 이건희 사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에 찬성하는 의견이 47.1%로 반대(36.1%)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최근 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추대된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은 “IOC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도 모른다. 삼성이 IOC의 중요한 스폰서인 것은 많지만 10개쯤 되는 스폰서 중 하나다. 미국 대통령이 와 지 않는 곳이 IOC 위원들인데, 한국 정부나 삼성이 뛴다고 무조건 OK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 평창유치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사면과 IOC 내 활동 재개가 평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건 틀림없겠지만 그것으로 마치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여기는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