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거래 ‘횡행’ 위탁 채용은 ‘낮잠’
-채용 투명성 위한 ‘임용시험 위탁권장 조례’ 시의회서 보류
광주시교육청 전경
[일요신문] 광주지역 사학계 주변에서 풍문으로만 떠돌던 사학 법인의 교사·직원 채용 비리가 검찰 수사로 속속 사실로 입증되면서 교육계 안팎에 충격을 주고 있다. 비리 사학은 사정당국의 전방위 수사와 브로커들의 활개로 쑥대밭이 됐고 수사망 밖의 일부 사학도 수사기관의 ‘칼’이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좌불안석이다. 광주시교육청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만으로 사학비리가 근절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광주 교육계에서 사립학교 교직원 채용을 둘러싼 잡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제대로 수립·실행된 적은 없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최근 3개월 사이, 광주에서만 4개 사학 법인이 채용비리에 직, 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수사 대상에 올랐고, 일부 사학은 이사장과 법인 실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 16일 교직원 채용 과정에 금품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로 광주 N 사립학교 법인 이사장 A 씨(76)와 이사 B 씨(65), 법인실장 C 씨(64)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법인 산하 학교 교사와 직원 채용 과정에서 9명으로부터 6억 3000만 원의 청탁성 돈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친족 관계인 이들이 사학 운영권을 장악, 자체적으로 교직원 채용절차를 진행하면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채용과정을 어지럽힌 전형적인 사학 인사 비리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광주지검 수사과는 ‘고교 교사로 채용시켜 주겠다’고 속여 교사 지망생 등 3명으로부터 2억 5500만 원을 받아 챙긴 D 씨(57)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앞서 지난 3월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또 다른 사학 교사 채용을 미끼로 2009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모두 7명으로부터 6억 20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광주시의회 의장과 의장의 고교 동창인 브로커 이 아무개 씨, 현직 교감인 또 다른 이 씨 등을 상습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 사학 관계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사법처리 소식이 들려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사립 교사 채용을 둘러싼 잇단 비리에 교원단체와 시민단체는 “곪은 곳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교직 거래가 당사자 간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 검찰과 경찰에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지역 사학비리의 가장 큰 이유는 사립 교원의 인사권이 재단에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교육청은 2010년부터 사립학교 교사를 뽑을 때 1차 필기시험을 공립교사 전형에 맡겨 인사에 대한 신뢰를 높일 것을 권고했으나 사학 대부분이 자율성 침해를 이유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
광주지역 사립학교 채용현황을 보면 2008~2015년 8년 동안 사학 법인 36곳에서 교사 635명을 채용하면서 이 중 11.1%인 71명을 공립 공채에 위탁했다. 지난해의 경우 107명 중 15명만이 공립 공채 때 함께 지필고사를 치러 선발됐다. 그나마 공립에 공채를 위탁한 사학 대다수는 학사·인사 문제로 임시이사가 파견된 학교들이다. 결국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 오히려 채용 비리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던 셈이다.
교육당국의 책임도 크다. 광주시교육청이 지난해 33개 사학법인에 지원한 인건비와 운영비 등은 2725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매년 3000억 원에 가까운 혈세를 지원하면서도 규정 등을 이유로 사학에 끌려 다니고 있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사학계 전반에는 각종 비리에 관한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해 있고 정작 이를 처벌해야 할 시교육청은 솜방망이 제재로 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교육당국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부도덕한 사학 비리에 단호하게 맞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이 21일 시교육청 별관 2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학 비리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광주시교육청 제공
일선 교육계에선 교육당국의 의지 결여보다 오히려 다른 곳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채용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사립학교 재단들이 공공연하게 채용 과정을 요식행위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립학교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위탁 채용’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립중등교원 임용시험 위탁 조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옥 전교조 광주시지부 대변인은 “고교의 62%를 차지하는 사학이 똘똘 뭉쳐 맞서는 형국이다. 위탁채용을 거부한 사학에는 보조금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광주시의회 차원의 관련 조례 제정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례 제정 또한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순탄치 않다. 광주시의회 김영남 의원은 올해 초 ‘광주광역시교육청 사립중등교원 임용시험 위탁권장과 채용정보 공시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 조례안은 교육감이 사립중등교원 임용시험 위탁을 권장하고, 교원의 임명권자에게 권고할 수 있는 채용정보 공시의 대상 및 시기와 방법, 기타 공시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은 사실상 ‘권고’일 뿐 강제 사항은 없지만, 투명한 교원 채용을 위한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조례안은 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면서 결국 보류됐다. 찬성하는 의원들은 사립학교 교사 채용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일부 의원들은 ‘사립학교 옥죄기’라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대전시의회와 전북도의회는 지난해 10월 이와 유사한 ‘사립중등교원 임용시험 위탁 권장과 채용정보 공시에 관한 조례’를 이미 제정해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가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북지역 사학 법인들은 지난 2014년부터 임용시험을 공동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지역 사학법인 70곳은 교사 채용 때 과목별로 같은 시험문제를 동시에 동일한 고사장에서 치른다. 채점 역시 통합출제본부에서 진행하며, 비용도 도교육청과 사학법인협의회에서 나눠 낸다.
지금까지 뽑은 인원은 2014년 법인 6곳 15명, 2015년 법인 15곳 47명, 2016년 법인 15곳 39명 등이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 2012년부터 사립 교사들의 인건비를 국고로 지원하는 만큼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설득해 동의를 얻어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사학 공동전형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북만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학 인사비리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상위법인 사립학교법의 독소조항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교조 김재옥 대변인은 “장 교육감의 사학비리 엄벌 선언을 지지한다”면서도 “사립학교법이라고 하는 사학비리의 온상이 문제의 본질이다. 조례로서는 한계가 있는 데다 교육감의 의지만으로 이를 관철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상위법인 사립학교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교조를 비롯한 광주지역 교육시민단체 등은 30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광주시민대책위(가칭)를 출범하고 사학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