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해진 반상’ 실수 한번이면 나락
김수장 9단이 한국기원 룰 위원회의 위원장인데, 적격이다. 프로기사 중에서는 4개국 룰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6일 한국기원 프로기사 대의원회와 ‘룰 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조항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 상대방 돌을 따내야 하는 상황에서 그걸 들어내지 않은 경우, 지금까지는 처음엔 벌점 2집이고, 또 한번 그러면 반칙패로 했는데, 새 규칙에서는 ‘반상에서 들어낼 돌을 남겨둔 경우 즉시 반칙패’가 된다.
▲ 바둑을 다 두고 공배를 메우는 과정에서 계시기를 끄는 것은 반칙이다. 공배를 메우는 과정도 ‘대국 중’이기 때문이다. 계시원이 있는 대국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 계시원이 알아서 잘할 것이므로. 대국자가 착수한 후 본인이 직접 계시기를 눌러야 하는 예선전에서는 이것도 주의해야 한다.
▲ 휴대전화 문제. 대국장에서 통화하면 반칙패. 벨 혹은 진동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는 반칙패.
▲ 두 대국자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한 대국자가 화장실에 가는 경우. ‘계시원이 있을 때는, 계시원이 화장실 간 대국자의 계시기를 누르고, 상대방 초읽기를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던 대국자가 돌아와 앉으면 대국이 재개되어 상대방은 비로소 착수할 수 있다’가 ‘화장실에 갔던 대국자가 돌아와 착석하면 그때부터 대국이 재개되며, 상대방이 없을 때 착점한 경우에는 착점한 곳을 알려 주어야 한다’로 바뀌었다.
이건 지난해 12월 이창호 9단과 원성진 9단의 명인전 결승에서 이 9단이 시간패냐, 아니냐, 논란이 되었던 것 때문에 다시 손을 본 것 같은데, 바뀐 것이 좀 이상하다. ‘대국자가 돌아와 착석하면 대국이 재개된다’고 해 놓고 ‘상대방이 없을 때 착점한 경우에는 착점한 곳을 알려 주어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대국이 재개되어야 착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그렇고, 프로 대국에서 착점한 곳을 알려 준다는 것도 좀 그렇다. 초읽기에 몰리지 않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대국 중에 일어나 옆의 다른 사람 바둑도 구경하고 그러는데, 구경하고 돌아온 상대방에게 “내가 여기 두었다”고 가르쳐 주는 일은 없지 않은가.
초읽기 상황에서의 화장실 왕래, 대국 재개와 착점 여부 등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아예 대국 진행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대국 후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10분이나 15분 휴식 시간을 주는 것. 그동안에 화장실도 가고,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도 하고, 커피도 타 마시라는 것이다. 2시간에 한 번씩이면 무난할 것 같다. 그래야 기보를 적는 사람이나 계시원도 좀 쉴 것 아닌가.
▲ 프로기사들이 대국장에 부채를 가져와 흔들며 ‘딱딱’ 소리를 내곤 했다. | ||
쥘부채는 프로기사가 애용하는 소도구 1순위. 40대 이상의 프로기사들은 열에 아홉은 대국 중에도 평상시에도 부채를 들고 다녔다. 지금도 그렇다. 특히 일본기원에서 만든 쥘부채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모두 인기가 좋았다. 손에 쥐고 한쪽 끝을 접었다 폈다 하면 딱딱~ 소리가 절도 있게 울려 재미가 있다.
거기엔 또 일본 유명 프로기사들의 휘호가 있었다. 일본이 우리나 중국보다 바둑이 셌던 시절, 프로 아마 가릴 것 없이 우칭위엔 사카다 후지사와 린하이펑 오다케 이시다 가토 다케미야 그리고 조치훈 등의 휘호가 있는 부채 한두 개쯤은 갖고 있었다. 선물용으로도 좋았다.
대국 중에도 기사들은 부채를 갖고 소리를 냈고, 그걸로 가끔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가령 이런 것. 조훈현 9단이 딱딱 소리를 내자 서봉수 9단이 어필했던가, 그 반대였던가. 아무튼 그랬던 장면들도 기억난다.
1990년대부터 우리와 중국에서도 기사들의 휘호가 있는 부채가 등장했다. 우리는 합죽선, 중국은 일본 것의 모방이었는데, 품위와 운치는 합죽선이 윗길이었으나 손장난의 재미는 못했다.
요즘은 대국장에서는 물론 금연이다. 전에는 흡연석 금연석이 따로 있었고, 두 대국자 중 한 사람이 흡연이고 다른 한 사람이 비흡연이면 비흡연에 우선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유보 조항도 없이 일절 금연이다. 그런 지가 벌써 꽤 되었다. 하긴 요즘은 담배를 끊는 것이 대세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대국 도중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밖에 나가서 피우고 와야 하니까.
승부를 하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며 부채를 갖고 딱딱 소리도 낼 수 없다. 대국장의 모습도 갈수록 웰빙을 향해 정갈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그림과 풍경에 생명력은 반대로 희미해져간다는 느낌이다. 승부는 엄숙한 것이지만 동시에 처절한 것. 엄숙한 것과 단정한 것은 다르다. 소도구 사용 정도는 팬 서비스를 위해서, 승부의 현장감을 위해서 조금 융통성을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