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들 고객은 글로벌 투자자…우리 외환보유고 털릴 위험 커졌다
보통 정부 신용등급은 해당 국가의 거시경제 여건이 개선되는 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성장은 둔화되고 수출은 줄고 있으며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나아져서 S&P가 급작스럽게 신용등급을 올렸다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증시 관계자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고객은 글로벌 투자자들이다. 즉 신평사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는 망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나라 정부보다 신용등급이 높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리먼브러더스 신용연계채권(CLN)에 투자한 이들이 낭패를 봤다”고 기억했다.
최근 선진국들은 마이너스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기 어렵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리가 더 떨어질 것(채권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해 보유채권을 꾹 쥐고 있는 게 유리하다. 저금리 저성장으로 갈 곳 잃은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다. 결국 이들이 향하는 곳은 아직 플러스 금리인 데다 비교적 경제가 탄탄한 곳이다.
지난 7월 외국인은 한국에서 주식 4조 원, 채권 6000억 원어치를 순투자했다. 8월 들어서도 주식·채권 모두 강한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다. S&P의 신용등급 발표 이후인 9일과 10일에는 유가증권 시장에서만 50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이기도 했다.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원화 가치는 가파르게 올라가 10일에는 원/달러 환율 1100원이 깨지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 5월 말 1191.7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70여 일 만에 원화 값이 100원 비싸진 셈이다. 최근 통화 강세가 진행된 곳은 우리나라와 브라질이다. 3500억 달러 이상 외환보유고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화강세는 외국인들에게 유리하다. 1달러에 1100원일 때 A라는 한국 자산을 샀다고 가정하자. 1달러에 1000원이 되면 1.1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 10%의 수익률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채권금리 하락과 주가 상승 기회 외에 환차익 기회가 있는 셈이다.
외환보유고가 많으면 수익을 챙겨가기 쉽다. 지난 7월 4조 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입한 외국인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헤지펀드들이 많이 활동하는 영국, 룩셈부르크, 케이만아일랜드, 아일랜드 등이 상위에 올라 있다.
현재는 한국 금융자산이 선진국보다 상대적 가치(relative value)가 높기 때문에 매수포지션 이지만 선진국 상황이 나아지고, 이에 따라 원화약세 추세로 바뀔 경우가 문제다. 원화약세를 피하기 위한 탈출이 시작되고, 이는 다시 원화약세를 유발해 단기간에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이탈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 경우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면서 위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선진국 상황이 좋지 않자 신흥국에서 수익 기회를 찾으려는 ‘대탈출(The great escape)’ 현상으로 보인다”며 “한국이 신흥시장 내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면서 자금 유입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박 연구원은 그러나 “신흥 금융시장은 규모면에서 선진시장을 대체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자금이탈)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고 경계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