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데 평생을 바친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정신을 이어 받아 사진을 통해 조우한 한국의 미를 담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우영은 지난 20년 동안 광활한 자연이나 캘리포니아의 옛 건물 등 특정 타입을 중심으로 한 유형학적 사진 작업을 해왔다.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자신의 시선과 대상을 동화시키는 ‘시간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단순한 관찰자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거주자이자 인사이더로서의 시선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 동안의 작업을 살펴보면, 사진이라는 매체이지만 회화적인 터치를 연상시키는 마티에르가 느껴지는데, 최근 박여숙화랑에서의 개인전도 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회화적인 선과 면, 공간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모노크롬 회화의 흐름과 조우한 사진예술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이번 최순우 옛집에서 열리는 김우영의 사진전은 그가 그 동안 찍어온 작업 대상이나 전시해온 공간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 작가가 수년 동안 외국에 체류하면서, 외부에서 바라본 한국성, 한국미학에 대한 화답으로 ‘우리 것’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그의 고찰이 전달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는 지난 1년 동안 청평사, 송광사, 화엄사 등 한국의 사찰과 소쇄원, 도산서원 등의 서원을 찾아 다니면서 한국 특유의 풍광을 유형학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겨울, 그가 본 것은 흰 대지 위에 슬며시 보이는 한국 건축의 여백이었다. 보일 듯 말 듯 흰 눈 사이로 보이는 자연의 흔적과 인간 문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축의 선들은 서로 만났다가 떨어져 있다. 그의 이전 작품에서도 익숙하게 보았던 선과 면이 우리나라의 풍경에서도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사진 작품들은 흑백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본연의 컬러 그대로를 살려낸 풍경의 모습이다. 눈 덮인 겨울의 풍경은 마치 백지처럼 하얀 여백을 떠오르게 하며, 이는 있는 것들을 비워나가는 수행의 자세이자 공(空), 그 자체를 보여주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그에게 겨울에 본 풍광은 눈이 올 때 더욱 도드라지며 이는 곧 백지의 느낌, 여백의 정취에 빠져들게 한다.
원래 ‘공(空)’은 흔히 생각하는 ‘없는 것’이 아니라 열린 관계성 속에서 무한한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공’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함께 호흡하는 얽히고 설킨 상호관계성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그가 바라보는 ‘우리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그릇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작가가 사진을 통해 조우한 한국의 미(美)이면서도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아웃사이더로서 바라본 타자화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렌즈를 통해 보이는 마당과 실내공간을 이어주는 마루, 돌담장,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기와의 흐름은 드로잉, 또는 수묵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단아한 조형미를 발견하게 한다. 사진을 인화하는 종이 또한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시도였는데, 핸드메이드로 만든 한지에 인화 했을 때 오는 흡수되는 느낌은 수묵화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설경의 모노크롬을 제거하는 효과를 내어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거쳐 그는 사진을 통해 최순우 옛집에 한국의 자연을 들여오는 장소특정적인 설치작업을 완성하였다. 이는 전시공간과 주변 환경을 반영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는 인 시튜 (In-Situ) 작업의 일면을 보는 듯 하다.
본래 그 장소에 있던 맥락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고고학적 용어에서 유래하여 현대미술에서 장소특정적인 설치가 강조된 작품 방식인데, 바깥채와 안채, 뜰로 구성된 최순우 옛집이라는 전통공간에 동시대 매체인 사진을 설치하면서 그는 사진의 맥락만 강조하던 갤러리와 미술관의 전시 방식과는 차별화 하여 전통 한옥의 장소성을 고려해 사진에 담긴 이미지와 전시 공간의 장소성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평면 매체로만 인식하지 않고 공간 속에 놓인 설치적 관점으로 전환시킨다. 그리하여 김우영의 예술사진은 눈 덮인 겨울 풍경 속에 우연히 발견한 ‘비어있는’ 아름다움이고,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무한히 담아내는 생성의 공간이자 포용의 공간인 것이다.
김우영 (b. 1960)은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4년 뉴욕의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 (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하여 다시 사진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1998년에는 뉴욕 광고 페스티벌에서 브론즈상을 받았고,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포토 디렉터를 맡았던 Neighbor를 비롯, 다섯 개의 매체를 론칭시키는 것은 물론 패션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영화감독, 연극인, 사회 단체를 파트너로 우리의 눈과 감각, 마음과 감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작업을 계속해왔다.
광고계에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지금은 톱스타 반열에 오른 송승헌, 소지섭의 의류 브랜드 ‘스톰’, ‘닉스’ 광고사진을 비롯, 화장품 광고 판세를 바꾸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영애를 모델로 한 ‘헤라’의 화장품 광고 또한 그의 작품이다. 당시 한국 상업사진 작업의 현대화에 토대를 놓으며 순수 사진과 상업 작품 양쪽에서 인정을 받았다.
2003년부터 그는 사회봉사 활동으로서 전문성 도네이션에도 나섰는데, ‘아름다운 재단’의 1%나눔에 참여한 인사들의 모습을 담아 전시를 열고 촬영비 전액을 기부했으며, 2005년 장애인들의 히말라야 등반 도전을 담아 전시회와 책을 발간 했고,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 희생자 시신 수습 원정대에 참여,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2006년엔 도시개발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 ‘김우영의 포이동 사진 이야기’전, 2007년 전국을 돌며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모습을 촬영한 국내 최초의 환자 사진전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열기도 했다.
‘순수 예술’로써의 작업을 위해 스스로 화려함을 벗고 오랜 시간 동안 도정의 과정을 이어온 그는, 2014년 박여숙화랑, 박여숙화랑 제주에서의 개인전 ‘Boulevard Boulevard’’를 개최하였고, Art Hamptons, LA Art Show, SCOPE Miami 등의 해외 아트페어와 KIAF, 아트 부산, 화랑미술제 등 국내 아트페어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며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 사진 작품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2016년 박여숙화랑과 박여숙화랑 제주에서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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