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1] 66세 영조가 51년 연하 신부 맞던 날이 궁금하다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모습을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서 엿볼 수 있다. 말을 타고 행렬에 참가한 기행나인의 모습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극 드라마의 인기와는 별개로, 마치 빛 뒤의 그림자처럼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역사 고증이다. 최근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인물과 사상사)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는데, 여기서도 ‘무지와 오해로 얼룩진 사극 속 전통 무예’(이 책의 부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 예로 드라마 속 조선의 포졸이나 문지기들이 흔히 들고 있는 당파(삼지창처럼 생긴 무기)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소수의 용맹한 병사들이 전투에서 창을 제압하는 데 쓰던 특수무기라고 한다.
물론 시대물의 복장과 장비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극의 역사적 인물들이 중국식 견박형 갑옷을 입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 이르면 우려가 고개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한 시대의 의복은 물론 갖가지 물품과 풍속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보물 창고’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누구라도 한번쯤 열어보고 싶지 않을까. 그 보물창고가 바로 <조선왕조의궤>다.
‘의궤’(儀軌)란 국가 행사에 대한 종합기록서를 의미한다. 조선왕조의 의궤이니, 조선시대에 행해진 국가 행사의 모든 기록이 담겨 있는 셈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의궤>에는 혼인, 장례, 세자 책봉, 궁궐 건축, 연회 외국 사절 환대 등의 행사를 앞두고 왕이 내린 교지, 행정기관끼리 나눈 서신, 논의 및 준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행사를 테마로 당시 왕실의 역사와 의전은 물론 생활풍속과 경제상, 음악과 미술이 반영돼 있는 종합기록물이다. 그런데 글로만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니라 마치 현장 사진을 찍듯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반차도’(班次圖)와 ‘도설’(圖說)과 같은 그림 자료는 그 시대의 복식과 의례를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차도는 나라의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와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이고, 도설이란 그림에 글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반차도와 도설 제작에는 도화서의 화원들과 당대의 화가들이 투입됐고, 경우에 따라 목판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정조가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현륭원)를 방문하는 모습을 담은 반차도를 한번 보자. ‘정조대왕 화성능행 반차도’라 불리는 이 목판 그림은 여러 장면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길이가 총 15.4m에 이른다. 그림 안에 능행에 참가한 왕족과 문무백관, 나인, 호위 군사 등 1779명과 말 779필의 모습이 지위와 임무에 따라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이 반차도는 서울 청계천 장통교 아래에 길이 192m에 이르는 도자벽화로 재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의궤>는 후손들에게 국가 행사와 취지를 바르게 가르칠 목적으로 조선 초기부터 편찬됐다. 그러나 초기의 의궤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0년대~1900년대 초까지 편찬된 의궤, 총 3895권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의궤>는 시대 및 주제별로 분류·구성돼 있어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난 왕실 문화 및 시대의 변화상을 한눈에 알 수 있으며, 동시대 다른 문화와 자세하게 비교해볼 수도 있다. 특히 글과 그림을 함께 담은 역사기록물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그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흔히 <조선왕조의궤>는 ‘기록유산의 꽃’이라 불리는데, 그중에서도 왕실의 혼례식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는 ‘의궤의 꽃’으로 통한다. 기록과 그림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혼례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세기의 결혼식이라 할 만한 의궤 속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을 잠시 보자.
정성왕후 서씨와 53년간 해로하다 상처한 영조는 3년상을 마친 후 다시 왕비를 맞는데, 그가 바로 정순왕후다. 당시 영조의 나이 66세, 계비(임금의 새 아내)는 15세였다. 의궤에는 당초 혼례에 미온적이던 영조가 마음을 바꾸는 과정, 혼례식에서 사치를 막기 위해 헌 가마를 수리해 쓰고 가마의 금장식을 달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왕실 혼례의 의식에 따라 왕비의 간택을 비롯해 납채(청혼서 보내기), 납징(예물 보내기), 책비(왕비 책봉), 친영(임금이 별궁으로 가서 왕비를 맞이하는 것)에 이르는 과정은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릴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 혼례 과정을 담은 <가례도감의궤>에는 왕과 왕비뿐만 아니라 문무백관부터 궁중 나인에 이르기까지 절차에 따라 갖춰야 하는 다양한 궁중복식과 물품들이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담겨 있다. 심지어 행사 때 수라간에서 쓸 도마와 걸레의 재질과 수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다.
<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는 영조과 정순왕후의 행차 모습이 담겨 있는데, ‘기행 나인’(말을 타고 행렬에 참가하는 나인)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왕비나 왕세자빈의 가마 앞에 위치해 가례를 도왔으며, 행렬 때 용모가 드러나지 않도록 장막이나 장옷을 걸치거나 청상립을 썼다고 한다.
콘텐츠 전문가들은 <조선왕조의궤>를 새로운 콘텐츠의 보고라고 평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가 미처 모르던 역사의 단초들이 의궤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단초들과 역사적 상상력을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는다면 더 한국적이면서도 더욱 풍성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지 않을까.
자료 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