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비판과 대우조선 사태 책임론도
현대상선 한진해운 ‘부채 부담 합병 대신’ 우량자산 인수키로
정부, 한진해운 노선에 현대상선 대체선박 투입 결정···한진해운 청산 수순
‘고개숙인 조양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출처=연합뉴스
[일요신문] 한진해운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한진해운은 정부의 조선해양 구조조정으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마지막 조율을 벌였지만 이견차를 좁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 해운업의 산 증인인 한진해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중훈 창업주를 뒤이어 꿈꿨던 ‘수송보국(輸送報國)’에서 바닷길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긴급회의를 열고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 결정을 내린 뒤 하루만이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로 주요 글로벌 선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해운동맹에서 배제되면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잃게 된다. 사실상 파산으로 정부는 국내해운업의 부정적인 파장을 사전에 막기 위해 청산 등의 대책에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해양수산부는 윤학배 2차관 주재로 해운·항만·물류 분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한진해운 회생절차 신청이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 해당 노선에 대체 선박을 투입하고 선박이 억류될 경우에는 선원 송환 조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한진해운의 정상 운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향후 2~3개월간은 수출입 화물 처리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해운·항만·물류 시장 차질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해수부는 선주협회, 부산·광양 항만공사, 해상노조연맹 등이 참여하는 해운·항만·물류 비상대응반을 구성해 수출입 물량 처리 동향, 피해 현황 등을 면밀히 점검하기로 했다.
특히, 법정관리에 따른 운항 중단을 우려해 한진해운의 주요 노선에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위원회는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은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이다.
당초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합병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한진해운의 부채를 부담하기에 현대상선이 역부족일 것으로 판단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만을 인수해 경쟁력을 키워 현대상선의 정상화를 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2위선사인 현대상선 역시 구조조정 중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채무조정이 마무리되고 용선료 인하는 물론 2M가입까지 앞두는 등 빚은 다 털고 곧 정상적인 영업이익이 발생할 일만 남았다”면서 “한진해운의 우량자산까지 인수할 경우 정상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짧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출처=연합뉴스
이를 두고 정부와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양호 회장과 한진그룹의 경영정상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등을 이유로 한진해운청산에 들어간데 대해 대우조선 사태와 조선해운업의 심각한 경영악화 책임을 한진에만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진그룹은 상당한 규모의 유동성을 한진해운에 지원했고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1100%에 달하는데도 내년 말까지의 부족 자금 1조∼1조3000억 원 중 5000억 원을 마련하고 금융권의 지원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2년전 조양호 회장이 직접 한진해운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대한항공에서 1조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정부는 산업은행 등 막대한 국비가 한진해운 정상화에 들 것을 우려하는 정보를 여론에 흘렸다. 기업경영 실패에 국책은행이나 기관의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지만, 해운업의 경우 정부의 정책 실패와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 불황속에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해운 강국들은 서둘러 국적 해운사에 유동성을 공급했고 이를 무기로 해운사들은 대형선박을 확보하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당시 한국 조선소에서 싼값에 대형컨테이너선을 사들여 원가 절감에 성공한 외국 해운사들은 운임을 낮출 수 있었다. 반면 한진해운 등 국적 해운사에는 정부가 나서 부채절감만 강요했다.
결국 정부 지원 없이 자력으로 버티던 한진해운은 외국 해운사들에 운임 경쟁에서 밀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진해운과 조양호 회장이 정부에 섭섭함을 토로했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권은 대우조선 4조2000억 원을 비롯해 조선업계에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으나 방만 경영으로 혈세만 날렸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려 왔다. 조선업엔 너그러웠던 잣대는 해운업에는 더 엄격했다. 당시에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업에 투입했던 자금 중 10분의 1이라도 지원해 해운산업이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한편, 한진해운은 고 조중훈 창업주가 1977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하고 꾸준히 해상운수업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한진해운 경영을 독자적으로 맡아 왔던 고 조수호 회장(조양호 회장의 동생)이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해운업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2014년 4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한진해운을 떠안고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며, 1조원이 넘는 지원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한진해운 경영 2년 만에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와 청산과정을 침통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