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굿와이프? 그냥 믿어주며 살아요”
전도연이 tvN ‘굿와이프’ 제작발표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제가 편해야 보는 이들도 편하죠. 제작진이 ‘기미가 올라왔나 봐요’라고 말했지만 ‘그냥 두라’고 했어요. 물론 관리하면 없어지겠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이런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김혜경, 전도연의 또 다른 이름
<굿 와이프>에서 전도연이 맡은 역의 이름은 김혜경이었다. 이 이름 낯설지 않다. 그가 지난해 출연해 칸국제영화제의 부름까지 받았던 영화 <무뢰한>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지명 수배된 연인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 단골이었던 기업체 임원을 찾아간 김혜경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나 김혜경이야!”라고 외치던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제작진은 이 이름을 <굿 와이프>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이정효 PD는 “<굿 와이프>를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제작진이 모였을 때 누가 하면 좋을까 이야기하면서 다들 똑같이 ‘전도연’이라고 말했다. 일단 질러보자는 마음에 대본을 드렸다”며 “작가님이 전도연 선배님이 출연하는 작품을 다 보고 <무뢰한>의 이름을 가져오자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오래 산 것 같아요. 포용하는 여자의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어요. 촬영 분량은 많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무서웠어요. 계속 제 자신을 채찍질했죠. 엄마이자 아내, 여자였던 김혜경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으로 표현했죠. 많이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상실감이라고 해야 하나, 공허함과 허전함이 커요.”
# 유지태, 윤계상, 그리고 나나
11년 만에 드라마 나들이에 나선 전도연이 손에 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소중한 동료들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편 역을 맡은 유지태, 동료였던 윤계상, 나나 모두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촬영을 마치고 가진 종방연에서 이들은 동이 틀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아쉬움을 달랠 정도로 정이 붙었다. 오죽했으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뜸한 전도연이 먼저 나서서 tvN <택시> 동반 출연을 추진했을까.
“유지태도 윤계상도 <택시> 출연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촬영 잘 됐고, 뒤풀이를 겸해서 다들 힘들게 또 어렵게 섭외가 됐어요. 유지태는 ‘진지맨’이고 윤계상은 ‘허당기’ 있고 나나는 ‘4차원’적인 면이 있죠. <굿 와이프>의 팀워크도 보여주고 각자의 진짜 모습이 보여진 것 같아 즐겁게 잘 진행됐어요.”
<굿 와이프>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믿고 보는 배우’인 전도연 외에 나나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견했다. 그가 ‘연기 9단’ 전도연과 연기 호흡을 맞춘다고 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의심은 곧 호응으로 바뀌었다. 명장 밑에 졸장이 없듯, 전도연과 연기 합을 주고받으며 나나는 크게 성장했다.
“나나와 드라마에서 만날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나는 에너지가 참 좋아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눈빛도 좋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데 능한 친구예요. 너무 훌륭하게 끝내서 저를 비롯해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도 놀랐죠. 아마 나나 스스로 주변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엄청 노력했을 거예요. 박수쳐주고 싶어요.”
# 칸의 여왕, 꼬리표와 훈장 사이
전도연은 ‘칸의 여왕’이다. 영화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붙은 수식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전도연’과 ‘칸의 여왕’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동시에 검색하면 관련 기사만 5000건이 넘게 나온다.
처음에는 부담도 컸다. 그가 스스로 뛰어넘어야 할 벽이자 꼬리표가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전도연은 다르다. 당당한 훈장이자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라 생각한다.
“좀 부담스러웠어요. 그게 그렇게 큰 상인 줄도 몰랐죠. ‘무식이 용감’이라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그 상을 받았는데, 돌아오니 여파가 대단했죠. 그간 떨치려 노력도 했지만 떨치려 해서 떨쳐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서 이제는 그냥 받아들여요.”
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도연이 느끼는 드라마 촬영 현장은 어땠을까? 11년 전 <프라하의 연인>에 출연할 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하지만 전도연은 쉽게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항상 고민하고 의심한다. 게다가 촬영 현장의 여건도 그리 개선되지 않았다.
“11년 전에도 집에서 씻고만 나와서 쪽대본 받으며 촬영했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왜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100% 사전 제작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스태프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신기할 정도죠. 게다가 <굿 와이프> 같은 법정 드라마는 ‘노가다’예요. 법정 장면을 한번 찍고 나면 체중이 1kg씩 줄었죠.”
# 배우이자 아내이자 엄마
전도연은 촬영 현장에서 완벽주의자다. 함께 연기한 유지태는 “연기하면서도 끊임없이 ‘내 감정이 진짜일까’를 고민하더라”며 “역시 남다른 배우라고 느꼈고 ‘천생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연 현실 속 전도연은 어떨까. 2007년 결혼한 9년차 주부인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인 전도연 역시 그가 출연한 <굿 와이프>의 제목처럼, 좋은 아내이자 엄마일까?
“저는 평범해요. 어릴 때는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결혼은 사랑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중요한 건 ‘그냥 믿는 것’이죠. 이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믿어주면 그게 결혼 생활이지 않나 싶어요.”
과거에 알고 있던 것이 현재에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환경이 달라지고,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연은 말 한마디를 꺼낼 때도 먼저 되뇌어본다.
“말이란 게 무서운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얘기하더라도, 10년 후에는 그것이 제 생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 SNS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한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이 저의 전체인 것처럼 생각되는 게 무서워요.”
# 언제 다시 TV로 돌아올까?
전도연이 안방극장으로 돌아오기까지 11년이 걸렸다. 주로 영화에 출연하던 그의 탄탄한 연기력은 ‘그 밥에 그 나물’ 같던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찌감치 <굿 와이프> 시즌2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요. 과로로 쓰러지는 거 아니냐고 했죠. 원래 약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데 <굿 와이프>를 촬영하면서는 남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찾아먹었어요. 나중에는 똑같이 힘든데 덜 힘들게 느껴졌다. 약기운 때문인지, 체력적으로 적응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뭐든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과연 전도연은 또 다시 드라마 출연 제안에 응할까? “출연하겠다”고 단정짓지는 않았지만 그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감독님이 ‘드라마는 중독성이 있다’고 하셨어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힘들다고 다신 안 한다고 하기에는 좋은 게, 얻은 게 많아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절대 드라마는 안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접속’으로 충무로 퀸, ‘밀양’으로 칸의 여왕 ‘등극’ 영화 <밀양>에 출연한 이후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도연. 하지만 그는 <밀양> 외에도 숱한 화제작과 문제작을 만들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전도연이었기에 가능한, 전도연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 <종합병원>(1994년) 스물한 살, 풋풋한 신인 전도연을 처음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극 중 간호사 역을 맡은 그는 유방암 자가진단 장면을 촬영하며 상반신을 노출하는 과감 연기로 단박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될성부른 떡잎’인 전도연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영화 <접속> 스틸 컷 전도연이 출연한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다. 하희라, 이종원 등이 함께 출연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무려 62.7%. 대한민국에서 방송된 역대 드라마 중 4위에 해당되는 성적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 전도연의 상대역은 다름 아닌 ‘욘사마’ 배용준이었다. # <접속>(1997년) 한석규와 함께 출연했던 <접속>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대로 넘어오는 당시 현대인을 투영한 상징적 작품이다. PC통신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빠져드는 한 여성의 심리를 절묘하게 연기한 전도연은 이후 충무로 섭외 1순위 여배우로 급부상했다. 사라본이 부른 ‘A Lover‘s Concerto’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즐겨듣는 OST다. # <해피엔드>(1999년) 불륜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다뤘던 작품이다. 최민식, 주진모 등 쟁쟁한 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전도연의 존재감이 빛났다. 특히 ‘당대 최고’라 할 만한 파격적 노출과 정사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이전까지 순수하고 풋풋한 역할을 주로 맡았던 전도연이 이미지를 전복하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 <별을 쏘다>(2002년) 전도연의 목소리를 성대 모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 드라마를 봤다. 그가 남자 주인공 성태 역을 맡은 조인성을 “성태야~ 구성태”라고 외치는 장면과 함께 전도연 특유의 콧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아울러 자신보다 여덟 살 어린 조인성과 호흡을 맞추며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를 전면에 다룬 선구자적 드라마라 할 수 있다. # <밀양>(2007년)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이창동 감독이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감정의 끝을 끌어낸 영화다. 남편을 잃고 밀양으로 온 여성이 아이까지 잃은 후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모습을 온몸으로 웅변했다. 이후 전도연은 영화 <하녀>와 <무뢰한> 등으로 재차 칸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칸의 여왕’으로서 입지를 단단히 했다. 영화 <밀양> 스틸 컷 # <굿 와이프>(2016년) 전도연이 11년 만에 선보인 드라마다. 검사 남편이 비리에 연루되면서 다시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변호사 역을 맡았다. 일과 가족 사이에 놓인 ‘경력단절녀’의 인간적 고민부터 남편과 또 다른 남자에 놓은 ‘여성’으로서 고뇌를 폭넓은 감정 연기로 소화해냈다. ‘왜 전도연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재차 답을 해준 작품이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