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즐거운 수담에 흠뻑 “베리 굿”
제11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선수들과 관계자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일요신문]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는 한국 바둑의 세계적 위상을 상징하는 대회다. 아마추어 세계대회는 지난 1979년에 일본이 JAL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대회가 유일한 것이었는데, 2005년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가 발족하면서 바둑 애호가였던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세계대회를 창설했다.
그 대회가 벌써 10회를 넘겼으니 만들고 떠난 사람은 잊었을지 몰라도 매년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감회는 새로울 수밖에 없다. 11회 대회는 전북 부안군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에서 열렸다. 줄포는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이 태어난 곳. 올해는 제15회 조남철 국수배 전국학생바둑대회가 함께 열려 더 뜻깊었다.
올해는 54개국에서 선수들이 출전했다. 아시아 12개국, 유럽 30개국, 아메리카 9개국, 아프리카 2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이다. 국제대회 규모로는 무척 큰 편. 다른 종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숫자다. 아마 올림픽 다음이지 않을까. 원래는 57개국에서 출전키로 했다는데 영국 선수와 오스트리아 선수, 그리고 베네수엘라 선수가 비자 문제로 오지 못했다고 한다.
54개국이지만 그리 혼란스럽지 않다. 개인전으로 치러지다 보니 대회 개최에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다는 점. 바둑대회의 장점이다. 초창기에는 선수 및 임원이 동행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선수 혼자 한국을 찾는다.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5라운드 김희수(오른쪽)와 양룬동의 대결. 두 사람의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여기서 승리한 양룬동이 결국 정상에 올랐다.
총 6라운드 스위스리그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는 중국의 양룬동 선수(17)가 6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과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우승 다툼을 벌였던 한국대표 김희수 선수는 5라운드에서 양룬동과 만나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석패, 3위에 머물렀다.
“김희수-양룬동 전을 지켜본 김성래 심판위원장은 초반 포석단계에서 김희수가 많이 밀렸다. 부담감 때문인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 요즘은 프로바둑이든 아마든 초반이 참 중요하다. 중반과 종반은 많이 연구돼서 실력에 큰 차이가 없는데 초반에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 힘들다. 이 바둑도 그랬다. 중국바둑이 한국에 비해 확실히 초반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김희수를 꺾은 양룬동은 최종 6라운드에서 일본의 안도 쇼타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에도 준우승에 머문 바 있는 김희수 선수는 2년 연속 세계정상 도전했지만 올해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2위는 대만의 라이유청 선수가 올랐으며 4위는 캐나다의 용페이 제 선수에게 돌아갔다.
우승을 차지한 중국 양룬동은 우리의 신진서 6단과 같은 2000년생, 밀레니엄둥이. 과거 이 대회 우승 후 비씨카드 준우승까지 차지한 당이페이 4단처럼 곧 프로 무대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양룬동은 “우승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했지만 이렇게 큰 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지막 일본 선수와의 6라운드보다 5라운드에서 만난 한국 김희수 선수와의 대결이 더 힘들었다. 바둑을 배운 이래 이렇게 큰 대회는 처음인데 우승까지 차지해 무척 기쁘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줄은 몰랐고 식견을 많이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우승소감을 말했다.
조남철 국수의 고향인 부안 줄포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54개국 선수들이 참가해 열전을 벌였다.
4승 이상을 거두며 상위권에 포진한 18개국 선수들의 등위 다툼이 치열했지만, 사실 볼 만한 것은 그 아래 1승도 거두지 못했거나 겨우 1승을 챙긴 사람들이었다.
그중 과테말라에서 온 에드가르도 카세레스 선수(58)는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방문. 기자와도 구면인 그는 기력이 8급인데 “올해는 한 번 이겼느냐?”고 묻자 심각한 얼굴로 1~4라운드에서는 아직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두 번이나 더 남았으니 최소한 한번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이 의사면서 47세에 처음 바둑을 배웠다는 그는 침술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는데 대회 기간 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 선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아일랜드에서 온 캐롤 도일(33)은 대회 팸플릿에는 10급이라고 되어 있지만 잘못됐다며 자신은 8급이라고 주장한다. 노르웨이 대표 선수가 보이프렌드여서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그녀는 한국 방문 며칠 만에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며 ‘한국 마니아’를 자처한다. 특히 음식이 마음에 들고 대회 장소인 부안에 대해서는 ‘베리 굿’을 연발했다. 폐막식을 마친 8일에 내소사, 직소폭포 등 부안 관광을 무척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2016 유럽바둑 콩그레스를 참관하고 돌아온 조혜연 9단은 “유럽이 동아시아에 비해 바둑 수준은 낮지만 바둑대회 연조는 오히려 앞선다. 유럽바둑 콩그레스는 1957년 독일(구 서독) 쿡스하펜에서 1회 대회를 시작한 이래 올해 60회를 맞이하기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열렸다. 당연히 대회 진행에도 노하우가 쌓여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배도 10년의 역사를 쌓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은 부분도 있다. 올해는 김승준 9단과 디아나 코세기 초단이 주요대국 생중계도 하고 저녁에는 번외 경기도 많이 열렸는데 외국 선수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현재 전 세계 75개국에 바둑협회가 있는데 이번 대회엔 54개국이 참가했다. 좋은 대회가 아니라면 그들이 굳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오겠는가. 초창기에는 너무 성적에 치중한 면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위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유럽콩그레스처럼 다 즐기는 분위기다. 외국 선수들도 이 대회에 참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