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화 쉽고 용처 파악 어려워 ‘깡’시장 확대 우려…일부 골프장 백화점 상품권 제휴 움직임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백화점 등의 상품권 매출이 급증해 주목된다.사진은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상품권 판매처. 연합뉴스
[일요신문] “상품권만 한 게 있나요.”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과 전통시장, 모바일 등 상품권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전통시장과 지역 소매유통업계의 추석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라 흥미롭다. 이를 두고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명절 최고의 선물로 꼽혔던 한우세트보다 더 큰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상품권 매출 실태를 들어다봤다.
요즘 백화점 상품권은 현금과 더불어 ‘받고 싶은 추석 선물’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구매나 배송의 번거로움이 덜하고 현금성이 강하기 때문으로 주고받는 추석 선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이달 말 시행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영향으로 그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실제로 대형 백화점의 상품권 매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은 7월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 8월엔 20% 급증했다. 추석 D-10일(8월 12일부터 9월 5일)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백화점 상품권은 8월 1일부터 9월 4일까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5% 늘었고, D-10일 기준으로는 10%가량 신장했다. 상품권 중에서도 10만 원짜리 상품권이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백화점 상품권은 70%가 개인 판매, 30%가량은 법인 판매인 것으로 조사됐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8월 2일부터 9월 5일까지 상품권 매출이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금액대 별로는 10만 원권이 25%, 5만 원권이 20% 늘었고, 50만 원 고액 상품권 또한 20% 이상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실적 공개를 하지는 않지만 업계에선 7월 이후 상당한 판매 실적을 올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들 모두 50만 원 고액권의 매출이 증가하는 등 추석시즌뿐 아니라 올 하반기 들어 상품권 판매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지역화폐와 연계한 전통시장 상품권과 모바일 상품권 등의 매출도 급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11번가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추석 일주일 앞둔 시점 기준·9월 13∼19일)보다 모바일상품권 매출이 최대 6배 이상(56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 추석 장보기에 보탬이 되는 마트 상품권 매출이 6배 이상(564%) 급증했고, 베이커리·도넛·편의점 상품권 매출은 4배 이상(326%) 올랐다. 같은 기간 뷔페·레스토랑 등 음식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외식 상품권 매출은 3배 이상(271%) 증가했고, 백화점 상품권(25%)과 문화상품권·주유상품권(19%) 매출도 두 자릿수 이상 신장했다.
이런 추세는 G마켓과 옥션 등 모바일 상품권을 취급하는 온라인쇼핑사이트에서 이어졌다. 대표적인 전통시장 상품권 매출도 지역연계와 할인폭 상승 등으로 지난 명절에 비해 20%~4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전했다.
이에 일부에선 김영란법의 여파가 크게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실상 기업 등이 현금이나 카드를 접대에 사용하지 못하는 만큼 액면가의 95% 이상을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으며, 용처 또한 파악하기 쉽지 않은 상품권 매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른바 상품권 깡 시장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백화점 상품권을 발행하는 대형 유통그룹의 경우 호텔, 고급 레스토랑, 골프장 등 다양한 계열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굳이 현금화 없이도 접대비용 지불이 가능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일부 골프장 사이에서 이를 반영하듯 백화점 상품권 제휴 움직임마저 관측되고 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상품권 매출 급증과 관련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 지적되는 김영란법 여파에 따른 것이란 주장과 함께 추석 선물 선호도 측면에서 상품권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기업 관계자는 “이미 대기업 CEO들은 접대 시 법인카드보다는 현금을 선호하고 있다”며 “상품권보다는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 늘어날 것이다. 상품권 사재기는 아닐 것이다”고 밝혔다. 다만, 상품권깡을 통한 현금화 경로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상품권 매출과 다르게 지역 전통시장의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미미한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여 서민들의 시름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침체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고, 김영란법 시행으로 추석 선물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추석 성수품에 대한 가격 동향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작황이 나빠진 채소 등 대부분이 전년 대비 급등해 추석 경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란법 시행을 두고 한우 선물세트 논란으로 주목받았던 축협 관계자는 “올해 추석은 김영란법 전 마지막 명절이다보니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진짜 문제는 법 시행이 적용되는 내년 설이다. 종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인 A 씨는 “선물세트다 상품권이다 어차피 서민경제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냐”면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떠들썩하지만 법망을 피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 부정청탁 등이 더 음지화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밝혔다.
민족 최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날개 돋친 상품권이 김영란법 시행을 두고 사재기나 상품권깡 등에 쓰여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매 및 수신처 관리 등 대책 마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추석 선물세트 변천사] 계란·라면부터 프랑스산 디저트에 특급호텔 패키지까지...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선물 세트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추석 선물세트의 과거부터 현재를 되짚어 봤다. # 1950~60년대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대에는 먹을 것이 귀했던 만큼 추석 최고의 선물은 바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쌀·달걀·돼지고기 같은 직접 키운 농축산물로 정을 나눴다. 전후 복구가 이루어진 1960년대에 들어서야 ‘명절 선물’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설탕, 비누, 조미료, 통조림, 라면 등 생필품과 가공식품이 각광을 받았다. 특히 제일제당 ‘백설표 미풍(조미료)’, 무궁화 ‘넘버원’, 삼양라면은 대세였다. 또 백화점과 업체들은 이때부터 선물세트 카탈로그(상품 안내서)를 만들고 신문에 추석광고가 등장했다.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선물세트 역시 변화가 시작됐다. 비누·치약·식용유 같은 다양한 생필품들이 각광을 받았으며, 여성들은 스타킹·속옷·화장품 등을 선호했다. 또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선물의 범위도 생필품에서 술이나 커피 등 기호품으로 확대됐다. 어린이를 위한 과자종합선물세트와 부모님께 텔레비전·전기밥솥·믹서 등 가전제품도 특별한 선물로 꼽혔다. #1980년대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선물세트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고급화되기 시작했다. 넥타이, 지갑, 벨트, 와이셔츠, 스카프 등 패션잡화 용품이 인기를 끌었고 백화점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배달서비스와 한우갈비세트 등 고급 선물세트의 ‘과대포장’ 지적이 대두되기도 했다. #1990년대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고 지역 특산품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인삼·송이버섯·꿀·전복 등 건강 특산품들이 인기를 모았다. 1975년 사재기와 과소비로 인해 폐지됐던 상품권이 1994년에 부활되면서 백화점 상품권·구두 상품권 등 다양한 상품권이 등장했다. 이후 상품권은 현금과 함께 명절이면 ‘받고 싶은 선물 1위’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건강 바람은 힐링 바람으로 이어지며 유기농 식품을 비롯해 와인·올리브유·홍삼·상황버섯 등 각종 건강식품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영향으로 망고·키위·석류 등 수입 농산물, 대게·킹크랩·연어 등 수입 해산물 선물세트의 등장을 가져왔다. 특이한 점은 이때부터 마트와 백화점이 실속형과 고급형의 선물세트 매출이 양분화되었다. #2010년대 웰빙과 힐링 트렌드의 지속적인 강세 속에 디저트 선물세트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주 PNB풍년제과, 이성당, 성심당 등 국내 브랜드 제품부터 파블로, 라꾸르구르몽드, 씨즈캔디 등 해외브랜드 제품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추석명절 기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온천, 골프 등 해외여행 상품권과 수백만 원이 넘는 특급호텔패키지 선물까지 등장했다. 또한 상품권의 강세 속에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상품권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방지하기 위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5만 원 이하의 선물세트와 상품권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