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봉사·기도에 대한 테러”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제목의 시는 시집으로 나오기 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시를 쓴 김성현 씨가 생을 마감하면서 주위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것. 200여 편의 시는 이제 유고시집으로 나오게 됐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한 성당의 신도로,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내로 살아왔던 김성현 씨(61)는 예상치 못한 중국인 관광객의 습격으로 지난 9월 18일 생을 마감했다.
“사고 당일 기도를 더 하겠다는 아내를 두고 성당을 나왔던 게 마지막으로 본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김 씨의 빈소에서 만난 남편 이 아무개 씨(65)는 사고 당일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빈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습격당한 성당에 마련됐다. 이 씨는 “그날 낮에 있을 한 교우의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고 새벽미사를 드리겠다고 아내는 새벽 5시부터 집을 나섰다. 새벽미사를 같이 드리고 집에 가서 쉬다가 결혼식에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기도를 더 하겠다고 해 혼자 집에 왔는데 그때 혼자 두고 오면 안됐다”며 “10월에 아내가 그동안 써왔던 100여 편의 시가 시집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는데 아내의 죽음으로 유고시집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빈소에서 여러 번 혼절을 해 링거를 맞으면서도 아내의 시집 원고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김 씨의 시집 원고.10월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돌연한 사건으로 주인을 잃어 유고시집으로 출간하게 됐다.
시에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에 대한 애정, 가족을 챙기는 어머니의 사랑,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지성인의 사색이 담겨 있었다. 빈소를 찾는 지인들 역시 시집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빈소를 찾은 성당 교우들은 “부부가 같이 성당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동네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금슬 좋은 부부로 유명했는데 안됐다”며 “이렇게 착하고 올곧은 사람이 없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갔는지 정말 모르겠다. 중국인 관광객의 사증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씨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중학교의 학생들도 빈소를 찾아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이 씨 부부는 제주도 태생으로 연애결혼을 해 올해 37년째 부부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은퇴 이후 지역에서 봉사활동과 기도생활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 씨 부부는 삶에서도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씨의 부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됐을 때도 이 씨는 가해자의 앞길을 위해 죄를 용서했고, 감형을 위한 탄원서를 손수 썼던 것.
이 씨는 “아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도 아내가 살아만 난다면 이유 없이 난도질을 한 중국 관광객을 용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다. 신성한 성전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한 벌을 받아도 용서가 안 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김 씨는 흉기피습 이후 위독한 상황에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이어 이 씨는 “주교님의 집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 것 같은데 하느님이 온다고 해도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가 돌아오지 못하는데 다 소용 없다. 여름에 유럽 여행을 가려다가 테러가 걱정돼 겨울로 미뤘는데 제주도에서 테러를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아들인 이 아무개 씨 역시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여생을 보내고 신실하게 성당생활을 하셨다. 저와 동생을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주시고 사랑을 주신 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셔서 화나고 억울하다”며 “오래 같이 함께할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떠나셔서 혼자 남으신 아버지가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다른 유족들 역시 “평일인데도 성당 사람들이 자원해서 장례식에 와 봉사를 해주고 있는데 도에서는 어떤 배려도 보이지 않아 속상하다. 오히려 첫날 도지사가 들러 유족과 악수하는 것을 사진 찍어가던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우리 가족이 피해를 당했지만 이대로라면 다음에도 또 도민들이 피해 대상일 것이다. 누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이대로라면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하는데 사증정책이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격한 목소리를 냈다.
김성현 씨가 습격당했던 제주도 연동의 성당에서 지난 9월 21일 장례미사가 치러졌다.
다음 날인 21일 오전에는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 집전으로 김 씨의 장례미사가 진행됐다. 장례미사 역시 김 씨가 습격을 당했던 본당 안에서 열렸는데 본당을 가득 메운 교우들을 미사 내내 우는 모습을 보여 눈물의 장례식이 됐다.
강 주교는 “대부분의 친지들과 교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천사 같았다고 말하던 루시아 자매에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이런 완덕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셨던 분이 과연 이 나라에 몇이나 되실지 모르겠다”며 “제주의 무차별 개발, 대규모 관광 등의 정책이 어느새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경제적인 수익만을 좇던 우리 자신들의 무분별한 탐욕에 돌려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김 씨의 아들 이 씨는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성당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하늘에서 보시면 지금의 영정사진 모습처럼 웃고 계실 것 같다”며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받들어 계속해서 종교 생활을 하겠다”고 말해 모두의 눈시울을 붉혔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여성에 대한 반감” “내 머리에 칩” 범행동기 횡설수설 제주도의 한 성당에서 김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중국인 첸궈레이 씨(50)의 범행 동기가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 9월 22일 제주서부경찰서는 천 씨의 진술을 토대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계획한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또 범행이 잔혹하다는 점을 근거로 첸 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 씨는 검거 직후 “부인 두 명이 이혼하거나 도망가 여성에 대한 반감이 심해 기도하는 여성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는가 하면 이후 “누군가 내 머리에 칩을 심어 조종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번복했다. 또 경찰 조사 결과 첸 씨가 범행 이전에도 같은 성당을 찾아갔던 것이 밝혀지면서 계획 범행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경찰은 중국에 사는 첸 씨의 동생에게 전화한 결과 “첸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복용한 사실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첸 씨는 지난 23일 검찰에 송치됐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