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형제복지원 사태” 희망 없는 그곳에 관피아 삐죽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시민단체가 지난 19일 대구시립희망원 국정감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시 달서군에 위치한 희망원은 전국 3위 규모의 대형 사회복지 시설이다. 대구시가 매년 90억여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는 대구 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수탁 운영하고 있다. 노숙인 요양시설, 정신요양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노숙인 재활시설 4곳에서 1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희망원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237명의 생활인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희망원 측은 “입소와 동시에 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힘이 없을 때 입소하게 되는 곳이 희망원이다. 노숙인 시설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복지시설과 달리 사망자 수가 높은 편이다. 최근 2년 8개월 동안 2명이 희망원 내에서 사망했는데, 이 건에 대해 관리·감독 소홀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희망원 관계자들은 기도폐쇄로 인한 사망과 은폐 의혹이 있는 사례만 해도 10여 건에 달한다고 했다. 희망원의 한 내부 관계자는 “희망원의 관리 소홀로 사망에 이르거나 관련 병원에서의 의료 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있었다”면서 “최종적인 병명을 보지 말고 환자의 역사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폭행치사가 자연사로 조작됐다는 증언도 줄을 잇고 있다. 생활인 간 폭행으로 인해 사망했음에도 원인 불분명이나 단순 사고 등으로 사고를 조작하고 은폐했다는 것이다. 바로 2011년경 사망한 생활인의 경우다. 그는 같은 호실에 있는 또 다른 생활인이 지팡이로 머리를 내리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원 측은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생활인의 인권 유린 및 폭행도 상습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1월 희망원 자체 조사와 대구시 특별 감사 결과 3명의 직원이 적발됐고, 희망원은 그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직원 김 아무개 씨는 9월 9일 징역 8월형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김 씨는 선고 직전 심리적 압박을 느껴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직원 윤 아무개 씨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나머지 직원의 경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는 2012년 생활인이 식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사실에 데려가 창문을 가린 뒤 폭행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또 이 직원이 평소 생활인들 눈을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지르는, 일명 ‘울트라맨’ 체벌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뺨 때리기, 언어폭력, 찬물로 샤워 시키거나 억지로 식사를 강요하는 등 2012년부터 2년여간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있다. 이 직원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폭행 등의 인권 침해뿐 아니라 금품 갈취 사건도 있었다. 한 직원은 생활인들에게 식사비나 차비 등을 빌려달라며 2년여에 걸쳐 수차례 1만~2만 원씩 갈취했다. 사실이 발각되자 그는 권고사직 처리됐다.
노동착취 의혹도 불거질 전망이다. 생활인들이 취사 도우미, 정문 경비, 3차 병원의 간병 도우미, 심지어 부원장의 가사 도우미 등으로 활용된 것이다. 취사 도우미의 경우 두세 명이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했다. 급여로는 2010년 기준 월 7만 원을 받았을 뿐이었다. 최근 올랐다고는 하지만 고작 20만 원이었다. 정문 경비도 사정은 비슷했다. 3차 병원의 간병 도우미의 1일 급여는 1만 원이었다. 생활인들이 이처럼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한 채 노동을 착취당할 동안 희망원 종사자들은 공무원 수준 처우를 받고 있었다.
노무사들은 희망원에서 노동을 한 생활인들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노무법인 다현의 김형준 노무사는 “대구시립희망원의 경우 실질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근로자로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근로제공 대가로 받은 임금이 법정 최저 임금 이하로 판단되는바, 최저 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무효로서 법 위반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숙식을 빌미로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근로시켰을 경우 근로기준법 제7조 강제 근로의 금지를 위반하여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식자재 납품에 비리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희망원 측은 단가를 조작하거나 수량을 조작했다. 또 돼지고기 전지가 납품됐으나 목살 가격으로 결제하는 등 품목 변경도 있었고 허위 청구도 있었다. 이는 대부분 희망원 부식 구매 내역과 유통업체 검수 노트, 급식과 직원 업무 기록 노트 등을 대조해 확인된 결과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영양사가 조리사에게 건넨 검수 쪽지들엔 납품 비리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었다. 예를 들면 영양사가 조리사에게 건넨 쪽지엔 ‘김치 135kg, 계산은 180kg 청구’ ‘바나나 6손, 계산은 사과 40박스로 청구함’이라는 식이었다. 계산과 청구가 다른 것으로, 그 차액을 희망원이 챙긴 셈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교단에서 자체 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납품 업체의 잘못’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런데 납품 업체가 명백한 사기를 저질렀음에도 희망원에서는 별 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희망원 측은 “내부 검수에 문제가 있었다. 납품 업체를 고소하지 않은 이유는 납품 업체 측에서 죄를 모두 시인했고 4400여만 원도 환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희망원 내부 관계자는 “영양사 개인 횡령이라고 보지 않는다. 회계과 직원들이 알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갔을지 의문이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희망원 사태의 배경엔 ‘관피아’가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단체로 날아온 제보 편지도 “시청 직원의 친인척을 채용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2014년 10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됐고, 대구시청은 공무원 3명에 대해 ‘견책’이라는 경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지역사회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여전히 ‘부랑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탄압받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거기다가 횡령 정황까지 포착됐다.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서 대책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또한 재단 이사장인 주교가 보고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국고를 받는 복지 사업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만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희망원 측은 시설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춘석 희망원 사무국장은 “부랑인 시설이라고 해도 거의 대부분이 장애인이다. 그래서 다른 사회복지시설보다 사망자 수가 높은 것”이라면서 “가사도우미 건은 인정한다. 당시 사회복지사로서 묵인했던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노동 착취가 있었던 것에 대해선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임 사무국장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희망원은 ‘서로 돕자’는 분위기다. 이곳은 ‘인권’만 갖고 사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복지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생활인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도록, 희망원 내에서 선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존중해줘야 한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데에는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앞서의 희망원 내부 관계자는 “직원 150여 명이 1200여 명을 관리해야 하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물론 직원 전체가 인권 유린을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여태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희망원이 전문화된 시설로 거듭 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여권 몸사리는 이유 뭘까’ 희망원 사태 여야 다른 반응 희망원 사건이 정치권에서도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당은 ‘대구시립희망원 인권 유린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1차 조사를 마친 상태다. 야권은 국정감사를 통해 정확한 진상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대구·경북(TK)에 의석을 23석이나 둔 새누리당에선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 진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실 보좌관은 “지역구 의원들이 함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국감 증인과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희망원 사태의 핵심 증인 채택이 대부분 불발됐기 때문이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올해 2월 새로 부임한 원장이 무엇을 알겠느냐. 원래 회계 부서에서 일하던 수녀가 증인 채택될 예정이었고, 이에 대한 보도 자료도 나왔는데 막판에 새로 부임한 원장으로 돌연 바뀌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은 사무처장은 “사회적 약자 문제에 여·야 구분은 없어야 된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국가인권위 조사와 대구시 감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대구가 지역구인 보건복지위 간사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침소봉대 격이다.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늑장 대응 또한 구설수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9월 20일 노숙인 생활시설 인권 보호대책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희망원에서 시설 생활 노숙인들을 강제 노동시키고 격리 수용한 의혹 사건의 언론 보도를 계기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뒷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은 사무처장은 “형식적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