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의 인기는 비행기 안에서는 물론 숙소인 하얏트호텔 도착 후에도 상한가를 나타냈다. 호텔 직원들은 물론 선수들까지도 먼저 아는 체하며 인사를 건넸다. 비단 교민들뿐만 아니라 생면부지의 외국인들로부터 뜨거운 축하를 받은 이형택한테는 하루 만에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아디다스 인터내셔널대회에서 세계 4위 페레로(스페인)를 풀세트 접전 끝에 2-1로 물리친 이형택은 프로 입문 후 줄곧 이날을 꿈꿔왔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연습에 지장을 받을 만큼 한국으로부터 폭주하는 전화 인터뷰 세례를 받으며 조금씩 현실을 깨닫고 있다는 이형택은 전날 우승에 대한 흥분보다는 호주오픈대회를 준비하느라 더 바쁘고 경황이 없었다.
“내일(13일) 시합만 아니었다면 우승의 감격을 제대로 느꼈을 거예요. 솔직히 지금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요. 메이저대회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번에 우승했다고 해서 성적이 좋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래도 꿈같은 우승으로 기분은 정말 좋아요.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그러나 앞으로 사람들의 높아지는 기대치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 이형택의 고교시절 플레이 모습. 가정형편이 어 려운 그는 홀로 객지생활을 해야했다.[대한매일] | ||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었어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도,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무명선수의 설움을 느끼면서도, 그리고 예선전에서 탈락하는 쓰라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거죠. 이번 우승으로 부와 명예를 챙길 수 있다는 계산보다는 그동안의 고생과 한스러움을 어느 정도는 보답받은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에요.” 누구한테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감독, 코치, 회사, 가족들한테도 감사하지만 이형택, 자신한테 고맙다는 의미있는 대답을 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테니스가 비인기 종목으로 취급받는다. 국제대회에서 이렇다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도 있고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등 3대 인기 종목의 파워에 밀려 ‘명함’조차 내밀 형편이 못된 실정이다.
다행히 이형택은 주원홍 감독의 선수를 보는 탁월한 안목 덕분에 95년 삼성증권에 입단하게 돼 경제적인 부담을 덜긴 했지만 삼성 스포츠단 내에서도 테니스는 ‘찬밥’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이형택이 가장 가슴 아파했던 부분은 연봉. 스타플레이어라면 억대 연봉자가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기죽게 만들었다. 외국에선 투어 선수에 대한 대접이 남다른데 비해 유독 국내에선 테니스가 관심과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이 ‘몸값’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 삼성과 인연을 맺으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테니스, 그것도 남자 테니스 선수를 영입하는 부분에 대해 회사측에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거죠. 주원홍 감독님이 날 스카우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 난 별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 선수였어요. 결국 정식 입단이 아닌 촉탁 선수가 돼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됐는데 만약 그때 주 감독님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별 볼일 없는 선수가 됐을지도 몰라요.”
이형택은 이번 아디다스인터내셔널대회 결승에서 만난 페레로보다 더 잊지 못할 선수가 있다고 한다. 바로 16강에서 맞붙은 미국의 신예 스타이자 세계 랭킹 10위인 앤디 로딕(20)이다. 이상하게도 앤디 로딕과 이형택은 악연을 이뤘다. 유난히 투어대회에서 맞대결이 많은데다 지금까지 다섯 번 싸워 전패를 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도 불안한 기운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2시간15분의 접전 끝에 2-0(7-6 7-5)으로 꺾고 8강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승에서 페레로를 상대하기 전까지 톱10에 든 선수를 꺾은 적이 없었어요. 특히 앤디 로딕이었기 때문에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죠. 붙으면 진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앤디 로딕이 그렇게 대단한 선수가 아니라는 최면을 걸면서 편하게 경기에 임했습니다다.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던 앤디 로딕한테도 허점이 있더라구요. 그게 보이면서 경기가 쉽게 풀려갔던 거죠.”
5전6기만에 이룬 쾌거라 이형택이 갖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주원홍 감독도 8강 이후 조심스럽게 우승을 점칠 만큼 이형택의 컨디션은 최고였고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던 마라트 사핀이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면서 부전승의 행운까지 덤으로 안는 이변이 일어났다.
“세계 1백위 안에 든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의 차이 밖에 나지 않을 만큼 엇비슷해요. 승부는 실력과 운에 따라 갈라지거든요. 애거시, 샘프라스 등 톱랭커들과의 경기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 때문이죠. 종이 한 장밖에 되지 않는 실력 차이로 인해 순위가 갈라지기 때문에 난 사실 명성과 순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형택의 이름이 세계 테니스 무대에서 빛을 발한 시기는 아무래도 2000US오픈에서 16강에 진입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때 비로소 투어급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랭킹을 확보했고 라켓 하나만 들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파란과 돌풍, 주목을 받으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투어대회 진출 첫 해인 2001년은 부진했다. 1회전 탈락과 5연패의 늪에 빠지는 등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잇단 부상과 불운도 악몽으로 작용했고 결국 60위까지 끌어올렸던 랭킹도 1백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다행히 2002년 1월 아디다스인터내셔널 1회전에서 당시 세계 17위(현재 1위)였던 카를로스 모야를 꺾고 8강까지 진출하면서 슬럼프 탈출의 계기를 다잡았다.
뭐니뭐니해도 이형택한테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난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벌어진 대표팀 은퇴 파동일 것이다. 테니스 협회에서 선임한 감독 밑에서는 기대할 만한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성명서를 내고 훈련을 거부하는 바람에 안팎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었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였어요. 언론에서는 ‘항명’ 운운했지만 난 정당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나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정말 괴롭더라구요. 처음으로 내가 테니스 선수라는 게 부끄러웠을 정도였죠.”
당시 이형택은 몸무게가 4kg이나 빠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협회의 내분에 선수가 휘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훈련 거부로 나타났지만 결국 이형택은 훈련에 합류하는 것으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투어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향수병이라고 말한다. “시골 살던 사람이 서울에서 살게 되면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치 않잖아요. 나도 국내보다는 외국의 투어 생활이 익숙하고 편한데도 불구하고 가족,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래서 꿈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어요. 물고 물리는 정글과 같은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죠.”
아디다스인터내셔널대회에서 우승이 확정된 후 트로피를 수상하며 영어로 소감을 얘기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자 “준비된 대본이었다”며 웃는다. “준우승할 경우, 우승할 경우에 대비해 두 가지의 영어 멘트를 준비했어요. 영어를 잘했으면 페레로처럼 긴 소감을 말했겠지만 외우다보니 짧은 소감을 전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고백한다. 영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바쁜 투어 생활로 인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영어가 서툴다보니 외국 선수들보다는 태국, 일본 등 아시아권 선수들과 친하다.
결혼을 생각해야할 나이인 것 같아 사적인 질문을 빠트릴 수가 없었다.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내자 여자 만날 시간이 없다며 목소리 톤을 낮춘다. 숨겨둔 여자라도 있으면 기쁘고 힘들 때 전화통화하며 위로받고 위로해주는 ‘감정’이란 게 작용할텐데 여자를 해바라기처럼 홀로 외롭게 할 수밖에 없다는 부담 때문에 만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은퇴할 때까지는 결혼을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지금 그럴 만한 상대도 없지만 막상 여자가 있어도 투어 생활로 정신 없는 날 이해하고 받아주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이상형이요?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운동만 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빵점이거든요. 이런 날 커버해 줄 수 있는 여자라면 좋겠어요.”
이형택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가장 큰 목표는 세계 랭킹 50위 안에 진입하는 것.
“내가 랭킹 1백위가 됐을 때 감독님이 승용차를 선물해 주셨어요. 오래 전부터 1백위 안에만 들면 차 사주시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만약 50위안에 들면 이번에는 내가 감독님께 승용차를 선물해야 돼요. 그때 차를 사주시면서 ‘옵션’으로 내건 사항입니다. 하루빨리 감독님께 차를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감 일정 때문에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이형택은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는 사정에 대해 더 미안해했다. 박세리를 통해 골프가 사랑을 받기 시작했듯 아무래도 올해는 이형택으로 인해 테니스가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