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서울 평창동 포포인츠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청 와대 비서실 워크샵에 참석한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비 서관 내정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된 이광재 실장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한마디다.
인수위 시절, 청와대 비서진 인선 등에 이광재 실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입소문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인수위에 한동안 떠돌던 이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정부 산하단체장 인사를 앞두고 민주당 주변에서도 유행어가 됐다.
이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386출신 참모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이같은 유행어는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그가 얼마만큼 인사에 관여하고 있는지는 소상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인사와 관련, 대상자들을 리스트업하고 스크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 주식회사’ 출범을 앞두고 ‘헤드헌터’로 나서 다양한 인재풀을 접촉하는 동시에, 1차 면접관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 바람 같은 사람
이광재 실장이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은 그가 지금껏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해 온 스타일에서도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잘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 만나고… 사람 소개도 많이 시켜준다.”
이 실장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평가는 이광재 실장의 역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수위에서 이 실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한마디로 ‘바람과 같은 사람’”이라며 “며칠씩 종적을 감췄다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왔다”며 “당선자의 미션을 처리하고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광재 실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는 남달랐다”며 “인수위 시절 종종 당선자가 오찬을 하러 가면서 함께 차를 타고 나가기도 했고, 수시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청와대 업무공간 재배치를 통해 이광재 실장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방에 위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 영업본부장 이광재, 공장장 안희정
이광재 실장의 역할은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함께 대비시켜야 보다 정확해진다고 주변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 386출신 참모로 평가받는 안희정, 이광재 두 사람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역할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광재 실장이 ‘영업본부장’에 비유된다면, 안희정 부소장은 ‘공장장’에 비유된다.
즉 이 실장이 외부로 활동 폭을 넓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일거리를 따오는 데 적격이라면, 안희정 부소장은 내부에서 이 실장이 따온 일거리를 가다듬어 훌륭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이광재 실장이 100% 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안희정 부소장과 역할분담을 할 때라야 가능하다는 얘기도 적잖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에 이광재 실장이, 민주당에 안희정 부소장이 자리잡고 있는 현 구도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불가분의 관계 속에 향후 정국이 운영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즉 국정상황실장으로서 이 실장이 국정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국정 운영계획을 수립하면, 안 부소장은 이 실장이 기획한 국정운영 계획을 민주당이라는 ‘공장’을 풀가동시켜, 내년 총선과 노 대통령 임기 동안 ‘작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 자타가 공인하는 기획통
이광재 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기획통’이다.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맡아왔던 주요 직책도 주로 ‘기획분야’였다.
93년 노무현 대통령이 설립했던 자치경영연구원에서 기획실장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95년 조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에서도 기획실장으로 참여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당시 신한국당 예비후보였던 김덕룡 의원 캠프에 합류, 기획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도 줄곧 노무현 캠프에서 기획팀장으로 활동했다.
민주당 선대위가 꾸려진 이후에는 선대위와 별도로 사무실을 내고 잠시 광고·홍보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단순 광고가 아닌 기획이 가미된 홍보전략 수립이 그가 담당한 주요 업무였다. 대선 기간 동안 대표적 히트작으로 기록된 ‘노무현 후보의 눈물 CF’가 그가 아이디어를 낸 작품이었다.
▲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오른쪽)은 ‘좌희정 우광재’라고 불릴 정도로 노무 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386 참모들이다. | ||
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기획통’으로 인정받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풍부한 아이디어’를 꼽는 인사가 많다.
이 실장의 ‘풍부한 아이디어’는 ‘영업사원’으로 발로 뛰며 각계각층 인사들을 두루 접촉해 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수위에서 이 실장과 함께 활동한 한 인사의 평이다.
“(이 실장은) 업무를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접촉해서인지, 여러 분야에서 아는 것이 많다. 무엇이 핵심인지도 잘 안다. 무엇보다 일이 떨어졌을 때 ‘옥석’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갖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일이 잘 진행될지 같은 것 말이다. 나름대로 업무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배정하는 능력과 적재적소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 운동권 시절 유연한 이론가
이광재 실장이 기획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 데에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경험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대학시절 로타렉스라는 로터리클럽에 참여한 이 실장은 주로 이론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O씨는 “로타렉스는 농촌활동과 야학활동을 주로 하던 클럽이었는데, 회원 가운데 간호대 출신이 많아 의료봉사활동을 많이 했다”며 “언더(비공개 조직)로 활동하면서 (이 실장은) 학생운동의 구도를 짜는 등 큰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회고했다.
당시 학생운동가들이 대부분 경직된 학습방법을 고집했던 데 반해 이 실장은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O씨는 “철야교육이다 뭐다 해서 당시 학생운동가들이 다소 경직된 운동방식을 고집한 데 반해 (이 실장은) 리버럴하고 유연했다”며 “사회과학서적 등 커리큘럼에 갇혀 있기 쉬운 때였는데 열린 사고로 폭넓은 사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또 “(이 실장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학습이 많이 돼 있었다”며 “역사나 철학 등 사회과학분야에 공부도 많이 했고 책도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았다”고 기억했다.
당시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ㄱ씨도 “공대를 다니면서도 사회과학서적이 새로 나오는 것이 있으면, 먼저 읽고 소개도 많이 했다”며 이 실장의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꼽았다.
그는 “(이 실장은) 그때도 영원한 기획팀장이었다”며 “큰 그림도 그리고, 상황에 맞는 아이디어도 많았다”고 전했다.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이광재 실장은 87년 6월 항쟁을 전후해 경찰의 수배를 피해 부산에 내려가 위장취업, 현장활동에 나섰다. 이때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집행위원장으로 부산에서 6월 항쟁을 이끌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부산에서의 첫 인연을 계기로 이 실장은 88년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에 진출하자,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 취재원과 기자 관계가 부부로
이광재 실장은 국회 의원회관에 근무하는 동안 <부산매일> 서울 주재기자였던 이정숙씨를 만나, 1년여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부인 이씨는 “지방지의 특성상 같은 지역출신 노무현 의원을 취재할 일이 많았는데, 광재씨가 대학 후배이기도 하고 해서 취재 때 많이 의존했다”며 “기자와 취재원으로 자주 만나다 부부가 됐다”고 말했다.
부인 이씨는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82학번으로 같은 대학 83학번인 이 실장보다 한 학번 선배. 나이도 이씨가 두 살 위다.
이씨는 “한마디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며 남편에 대해 촌평했다.
■ ‘꿈은 이제 시작됐을 뿐’
이광재 실장은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 꾸어온 오래된 꿈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과정일 뿐, 꿈 자체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근무하던 이 실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인사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을 모시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집권에 성공해서 진정으로 민주화세력이 함께 정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이광재 실장의 정치적 비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부인 이정숙씨도 “당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한다”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자신이 꼭 주인공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당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국내외 주요 상황 및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국정상황실장은 한마디로 국정 전반에 걸친 위기를 관리함으로써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예상되는 위기를 예방하고, 돌발 상황이 터졌을 때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그러나 이광재 실장이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됨으로써 ‘위기관리’라는 국정상황실의 고유 기능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위기관리’가 수동적 국정상황실의 기능이라면, ‘기획통’ 이광재 실장이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됨으로써 ‘창조적 상황실’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 정부’라는 깃발을 높이 세우고 5년 일정의 항해에 돌입한 ‘노무현호’ 앞에는 예기치 못한 비바람과 폭풍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길을 잘못 들어 암초를 만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정상황실장을 맡은 이광재 실장이 얼마나 멀리, 넓은 시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느냐에 노무현호의 순항과 난항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적지 않은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