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놈들 역할 바꿔 장외대결 흥미진진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스틸 컷
주도권은 송강호가 쥐었다. 그가 주연한 영화 <밀정>이 추석 시즌을 앞두고 개봉돼 일찌감치 600만 고지를 넘어섰다. 관객수만 따지자면 <놈놈놈>의 668만 관객을 뛰어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이병헌 주연 할리우드 영화 <매그니피센트7>은 개봉 1주일 만에 70만 관객을 동원했다. <밀정>과는 격차가 크지만, 이 영화는 외화인 만큼 이병헌 효과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월 말에는 정우성이 가세한다. 그가 출연한 영화 <아수라>가 이번 대결의 화룡점정이다. 세 작품 중 유일한 ‘19금’ 영화인 만큼 흥행의 벽이 높지만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멀티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영화 <아수라>의 정우성.
8년 전과 비교해 그들의 역할 변화도 눈에 띈다. <놈놈놈>에서 ‘좋은놈’은 정우성, ‘나쁜놈’은 이병헌, ‘이상한놈’은 송강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주요 정의롭거나 선한 역을 맡았던 정우성은 <아수라>에서 ‘나쁜놈’으로 분한다. 극 중 비리 형사 한도경을 연기하는 정우성은 “그동안 출연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캐릭터였다”며 “나중에는 악에 받치더라. (악역이) 스트레스였지만 연기를 하면서 새로운 감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매그니피센트7>의 이병헌은 ‘이상한놈’이다. 그가 맡은 빌리 락스는 서부 개척 시대에서 거대한 악당에 맞서는 7명의 전사 중 한 명. 할리우드 출연작에서 주로 악역을 맡았지만, 빌리 락수는 정의의 편에 서는 총잡이라는 측면에서 궤를 달리한다.
주목할 점은 그가 동양인이라는 것. 서부 시대의 한복판에 놓인 동양인 총잡이는 낯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의 주무기는 총이 아니라 칼이다. 극 중 등장인물들도 총보다 빠른 칼을 던지는 동양인 빌리 락스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밀정>의 송강호가 연기하는 이정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좋은놈’에 가깝다. 당초 독립군을 잡는 데 앞장서는 친일파 경찰이지만 의열단과 만난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의열단을 도운 죄로 일본 법정에도 서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은 결코 이정출을 미워할 수 없다.
영화 <밀정>의 송강호.
송강호는 <밀정> 시사회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이정출의 인간미가 <밀정>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군인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심적으로는 이를 거부하고 싶은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놈놈놈> 주역들의 맞대결을 앞두고 이들의 우정 역시 빛났다. 우선 이병헌은 <밀정>에 특별출연해 송강호와 한 프레임 안에 담겼다. 이병헌의 출연 사실은 영화 시사회를 앞두고 뒤늦게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정출이 의열단장인 정채산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은 <밀정>의 백미로 꼽힌다. 해당 장면은 대단한 긴장감과 위트가 감돌지만, 촬영 현장은 굉장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송강호는 카메라가 꺼지면 “아니, 나쁜놈 박창이(<놈놈놈>에서 이병헌이 맡았던 역할)가 어떻게 의열단장이 되셨소?”라고 너스레를 떨고 이병헌 역시 애드리브로 맞서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 장면을 함께 출연한 배우 공유는 “두 선배님의 연기를 한 자리에서 보고, 그 장면에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팽팽히 기싸움을 벌이면서도 카메라가 꺼지면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밀정>에 이병헌을 섭외한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밀정>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이미 <놈놈놈> 외에도 <달콤한 인생>을 연출하며 이병헌을 주인공으로 세운 바 있다. 때문에 김 감독이 직접 섭외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내가 연락을 직접 한 게 아니라 회사에서 했다”며 “마음속으로 이병헌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나에게 바쁜 척을 했는데 결국 촬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매그니피센트7>의 이병헌.
페르소나 대결 역시 관전 포인트다. 송강호가 <조용한 가족> <반칙왕> <놈놈놈>에 이어 <밀정>으로 김지운 감독과 재회했듯, 정우성은 자신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연출하고 <무사>도 합작했던 김성수 감독과 다시 손잡았다. 두 사람이 <아수라>로 다시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년이다.
정우성은 <아수라>의 제작발표회에서 “김성수 감독은 배우가 100% 캐릭터에 몰입해 어떤 연기든 자진해서 뛰어들 수 있도록 완벽한 판을 깔아주고 이끌어줬다”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