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매덕스 메이저리그의 컨트롤피칭 교본인 그레그 매덕스 못지 않은 송곳투구로 급부상중 인 서재응. 그러나 빛나는 지금의 그가 있기까 지는 5년간의 암흑터널이 있었다. 국민일보 | ||
마이너리그 시절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한국 특파원들이 자신의 라커룸에서 진을 치고 있는 모습 또한 서재응을 웃음 짓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7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마이너리그 때는 화제거리조차 안되다가 지금은 여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인터넷 카페에 올려진 사진까지 언론에서 ‘무단 도용’하고 있는 것 또한 서재응의 색다른 세상 체험이다.
시즌 5승을 챙기며 박찬호의 뒤를 잇는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중인 서재응은 지난 18일(한국시간)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가진 기자와 전화인터뷰에서 매스컴과 야구팬들의 집중적인 관심에 대해 상당한 부담스러움을 토로했다.
2, 3개월 만에 갑자기 변한 주변 상황에 대해 ‘기쁨 30%, 서글픔 40%, 담담함 20%, 그리고 다소 귀찮음 10% 정도’라는 감정 표현으로 ‘현실’을 설명할 정도였다.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리거가 됐다고 해서 서재응이 ‘박재응’이 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생활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데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많이 달라져 조금은 ‘섭섭한’ 것도 사실인 듯 했다.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오른쪽 인대 파열의 역경을 딛고 올 시즌 화려한 날갯짓을 통해 메이저리거로 등극한 서재응의 ‘인간시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지금, 정작 당사자인 그는 애써 덤덤한 모습으로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빠른 말투와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솔직함, 전화선을 타고 강하게 전해오는 사내다운 배짱과 기질이 어우러져 서재응식 ‘무공해’ 인터뷰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그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4연승을 달리며 시즌 5승을 이뤘다. 거푸 연승을 거두고 있어 앞으로 나가는 경기가 무척 부담될 것 같다.
▲기자들이 조용히 지켜봐준다면 부담 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야구 외적인 부분까지 언론의 가십거리로 등장하는 상황에선 경기 자체보다 주위의 시선이 크게 부담될 수밖에 없다. 내 주변이 많이 시끄러워졌다. 가족들조차 기자들 전화에 정신이 없다고들 한다. 물론 이런 관심들이 너무 고맙지만 아직은 정상에 오른 게 아니기 때문에 애정을 갖고 조용히 응원해주신다면 더욱 힘이 날 것 같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고 들었다. 그동안 하숙을 했다는 게 사실인가.
▲98년 플로리다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며 알게 된 선배(플로리다에서 자동차정비업소를 하는 윤성헌씨) 집에서 줄곧 하숙했다(서재응은 말린스전이 끝난 뒤 경기장에 응원 온 그 선배 부부의 차를 타고 뉴욕으로 이동 중에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은 얼마 전 뉴욕 홈구장 셰이스타디움 근처에 구했는데 1천2백달러짜리 사글세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언제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지 몰라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웃으며) 이젠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집까지 마련한 걸 보면.
―손목에 찬 염주 때문에 상대팀 감독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줄곧 염주를 차고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는.
▲염주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 당연히 심판들이 착용하지 못하게 제지했을 것이다. 상대팀의 반응은 나의 페이스를 흔들어 놓으려는 작전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염주는 불교 신자인 어머니가 선물해 주신 것이다. 함부로 뺄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상대팀에서 시비를 건다고 해서 염주를 차고 나가지 않으면 그들 작전에 내가 말려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동반출전했던 서재응과 박찬호. | ||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통역을 쓴다. 아트 하우 감독의 말은 한국 기자들이 잘못 해석해서 보도한 것이다. 그 감독은 내 영어 구사력에 대해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한테 직접 얘기한 내용이다. 그래서 다음에 기자를 만났을 때 앞으로 나와 관련된 기사는 좀 더 정확한 내용으로, 확실한 팩트만을 보도해 달라고 주문했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 기자들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솔직히 부담스럽다. 만약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기사를 써줬더라면 이런 마음이 안 들었을 것이다. 요즘 갑자기 떴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오는 걸 보면 정말 묘한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기자들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나보다는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한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될 수 있으면 기자들을 멀리하려고 한다. 비로소 (박)찬호형의 행동과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재응은 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재기가 불투명해졌을 때 2002년 한 스포츠 신문에 난 자신의 ‘한국 U턴설’ 기사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피눈물 날 정도의 고통을 참아가며 재활훈련 중인 선수한테 격려는 못해줄망정 한국 U턴설을 퍼트리며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
―박찬호를 이해하게 됐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찬호형은 우리들한테 우상과 같은 존재다. 만약 그 형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서재응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선수를 매스컴에선 ‘가지고 놀다’가 묵사발을 만들었다. 찬호형이 뭘 그토록 잘못했나.
만약 찬호형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승승장구하게 될 경우 그에 대해 비난과 악담을 서슴지 않았던 언론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 걸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에 언론이 띄우는 ‘비행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요즘 여자 친구인 이주현씨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데 지금 이야기한 걸로 짐작해보면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닐 것 같다.
▲여자 친구가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방법으로 내 사생활을 기사화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나도 모르게 공인 아닌 공인이 돼 버렸지만 사생활만큼은 기자들의 터치를 받고 싶지 않다.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표현했는데 지금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기사화되는 바람에 자꾸 마음을 닫을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만 불안하게 쳐다봤을 뿐 난 단 한번도 재기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수술 후의 피칭도 스피드만 떨어졌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수술은 아주 흔한 일이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또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훈련에만 매달리는 일은 정말 밖에서 보는 것처럼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게 미국까지 들어왔는데 패잔병처럼 고개 숙이고 귀국하고 싶지 않았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게 아닌가. 팀에서 방 빼라고 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보고 싶었고 그게 마이너 ‘재활병’의 존재의 이유였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신분 상승을 이뤘을 때의 첫 느낌을 떠올린다면.
▲난 야구에 인생을 걸지 않았다. 단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거가 된 지금 자꾸 야구에 집착을 하게 된다. 인생을 걸고 싶게 한다. 세계의 ‘별’들만이 모인 이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숨막힐 정도의 쾌감을 준다. 메이저리그가 얼마나 대단한 무대인지 곱씹고 있는 중이다.
―너무 흔한 질문이지만 워낙 ‘끼’가 많다고 소문이 나서 물어 보겠다. 만약 야구 선수가 안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스포츠 마니아다. 아버지가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종목의 운동 선수로 활약하지 않았을까? (서재응의 아버지 서병관씨는 “재응이가 낭만적인 야구를 한다”고 표현했다. 승부근성도, 오기도, 투지도 강하지만 야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때 음주가무에 상당한 ‘끼’와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걸로 알려졌던데.
▲예전에 술은 좀 했지만 미국에 와서는 맥주 한두 잔 이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가무는 음악 나오면 춤추고 노래 부르는 정도의 수준이지 잘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너무 겸손한 표현이라는 기자의 말에) 즐기는 편이다. 음주가무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하지만 야구는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고 음주가무는 삶의 에너지를 보충시키는 윤활유 역할 정도일 것이다.
―마이너리그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생각을 안한다. 마이너리그 5년 동안 너무나 힘들고 숨막히는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별로 기억하고 싶은 일도, 그리운 일도 없다. 한 가지 있다면 어떻게 하면 마이너에서 빨리 탈출해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막상 이렇게 나와 생활을 해보니 너무 기분 좋고 행복하다.
그 반면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기자는 나의 덤덤함을 건방진 모습으로 오해하는데 지금의 이러한 분위기에 흔들리면 자칫 공 뿌리는 감각마저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매스컴의 생리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서재응은 거칠 게 없어 보였다. 설령 이처럼 상승세를 타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전 그 시절로 추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는 결코 기죽지 않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야구 방정식’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것이다.
메이저리거 중 유일하게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 신세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당당함,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주머니를 다 털어서라도 술과 용돈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보스 기질, 메이저리그 톱타자들도 똑같은 선수일 뿐이라고 여기는 자신감까지, 서재응의 장점은 무궁무진했다.
그의 강도 높은 어휘 구사력에 흠뻑 빠져 있는 기자한테 서재응이 대뜸 이런 질문을 해왔다. “최근 생긴 별명 중에 ‘서덕스’까진 이해하겠는데 ‘서대근’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글쎄, ‘서대근’을 ‘힘’ 좋은 남자의 상징으로 꼽히는 영화배우 이대근을 빗대서 만든 별명이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다가 어설픈 웃음소리로 인터뷰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