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뜻에 따랐다’…신격호 총괄회장에 모든 혐의 넘길 듯
구속영장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을 때,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인정된다. 그런데 이번 영장실질심사에서는 법리상의 다툼 여지가 언급됐다. 법원의 잣대로 봤을 때 신 회장의 혐의가 분명치 않다고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9월 20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9월 28일 열린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제시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신 회장이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여동생 신유미 씨 그리고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 씨를 국내 롯데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도 약 500억 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횡령 혐의다. 또 롯데시네마 등 계열사를 통해 친·인척 기업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와 현금인출기(ATM) 서비스 업체인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롯데닷컴 등 계열사를 동원해 손해를 입혔다는 배임 혐의다.
신 회장은 가족 등의 등기이사 선임과 일감몰아주기에 대해서는 신 총괄회장의 지시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참여는 순수한 경영상의 판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롯데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가족 등의 등기임원 등재와 일감몰아주기는 신 총괄회장이 직접 경영을 챙기던 때부터 이뤄졌다. 또 2008년 롯데피에스넷의 인수합병 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호텔롯데 정책본부장이었던 신 회장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지만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방식이어서 최대주주였던 롯데가 피하기 어려웠다는 점과 총수 일가의 사익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임이라 단정짓기 쉽지 않다”고 풀이했다.
신 총괄회장도 검찰의 기소 대상이다. 하지만 고령(94세)에 성년후견인을 지정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설령 실형을 받더라도 집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신동주 전 부회장과 서미경 씨 등은 부당급여 및 일감몰아주기 수혜가 입증되면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된 것도 사익 추구 부분에 대한 증거가 강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신 회장이 안전해진 것은 아니다. 같은 횡령과 배임 혐의였던 김승연 한화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도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됐지만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검찰은 구속영장청구 당시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신 회장에게 비자금 조성 혐의 등도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심사에 앞서 “신 회장이 구속되면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의 비자금에 관해 좀 더 심도 깊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롯데케미칼은 270억 원대 소송 사기와 200억 원대 통행세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건설 역시 300억 원대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된 상황이다. 검찰은 여기에 신 회장이 가담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에 기재된 혐의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비자금 조성 혐의가 검찰로서는 마지막 승부수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비자금 혐의 입증이 아직 완벽하지 못하고, 신 회장 측이 변호에 사력을 다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 회장 입장에서도 법정구속될 경우 자칫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잃을 수 있으니만큼 천문학적인 돈을 써서라도 총력변호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사상 최대 수임료를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 신 회장 변호는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과 차동민 전 서울고검장이 맡고 있다. 차 변호사는 특수통으로 2002년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를 지휘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 씨를 구속기소했다.
차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절 내부 신망이 두터워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이어 검찰총장 후보까지 올랐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13기 동기였던 한상대 전 총장에게 밀려났다. 차 변호사는 앞서 CJ그룹 비자금 사건 당시에도 변호를 맡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법무장관,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10여 명이 대기업의 불법 사외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발각됐을 때 이름을 올려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이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서미경 씨를 재판에 넘긴 검찰은 이르면 10월 첫주 신 회장을 비롯해 신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을 일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총수 일가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최열희 언론인
최은영 “해운업 살려달라” 무릎 꿇은 이유? 발 뺀 줄 알았더니 ‘한배’ 탄 운명 공동체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며 해운업 회생을 눈물로 호소한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이미 한진해운이라는 배에서 몸을 빼냈음에도 굳이 해운업에 애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한진해운과 최 회장은 여전히 밀접한 관계다. 최 회장의 재산 상당 부분이 한진해운의 운명에 달려 있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지난 9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별관회의 청문회(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 회장이 한진해운에 내놓은 사재 100억 원은 지난 8월 12일 유수홀딩스 주식 189만 주를 우리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빌린 돈이다. 당시 유수홀딩스 주가는 6730원으로 총 가치는 약 130억 원이다. 주식담보 대출은 많아야 담보물 가치의 70~80%가량 인정해준다. 유수홀딩스 주가는 한진해운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1만 원이 넘었다. 한진해운이 더 망가지면 유수홀딩스 주가도 하락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추가 담보를 내든지 빌린 돈 일부를 갚아야 한다. 유수그룹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IT서비스업체 싸이버로지텍도 한진해운과 밀접한 관계다. 2013년 당시 싸이버로지텍의 국내 매출액 545억 원 가운데 국내 계열사 매출이 472억 원에 달했다. 해외 매출액 140억 원 중 10억 원이 계열사 부분이다. 총 매출액 685억 원의 70%인 482억 원이 내부거래였던 셈이다. 2013년 경상이익은 43억 원으로 경상이익률은 6%다. 2014년부터는 해외솔루션 수출이 본격적인 성과를 내면서 매출과 이익이 급신장했다. 2014년 매출액과 경상이익은 각각 816억 원, 196억 원으로 늘어났고 2015년에는 각각 1173억 원, 577억 원으로 급증했다. 한진해운 계열사로부터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거두면서 노하우를 습득한 덕분에 사업 확장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싸이버로지텍 매출의 절반가량은 한진해운 또는 한진그룹 관련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싸이버로지텍으로서는 거래 비중이 가장 큰 한진해운이 잘 돼야 한다”며 “다만 지난해 600억 원 가까운 이익을 낸 싸이버로지텍이 유수홀딩스가 아니라 한진해운 자회사였다면 재무구조에 큰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상장주식으로 따지면 최 회장 보유 지분 가치는 330억여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싸이버로지텍 지분 15.6%는 순자산가치로만 136억 원에 달한다. 유수홀딩스가 싸이버로지텍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으니만큼 상장하면서 최 회장 지분을 판다면 수백억 원의 현금을 만들 수 있다. 최 회장에게 싸이버로지텍은 그만큼 중요한 곳이다. 한편 유수홀딩스는 지난해 한진해운에 여의도 사옥을 임대해 37억 원의 임대료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이 청산될 경우 다른 임차인을 찾아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은 지은 지 오래돼 인기 있는 건물은 아니다”라며 “한진해운 같은 큰 임차인이 나간다면 채우기 어려울 수 있고, 임대료도 더 받기 쉽지 않을 듯하다”고 전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