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서 1~2분이면 청 안마당까지 촬영”
청와대를 향해 날아드는 드론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드론 전용 탐지장비를 활용하지 않는 등 공중보안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강드론공원 상공에 떠있는 방재용 드론 모습.
9월 29일 오후 1시경 기자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한강드론공원을 찾았다. 검정 빛깔의 다리 4개가 달린 쿼드콥터형 미니 드론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쳤다. 약 3m 상공으로 올라간 드론 한가운데 장착된 카메라는 플래시를 터뜨린 뒤 순식간에 고해상도의 사진들을 연속으로 찍어냈다. 한쪽에선 삼삼오오 모인 직장인들은 하얀 빛깔의 미니드론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다른 쪽에는 다리 8개가 달린 방재형 드론이 대형 거미가 고개를 흔들 듯,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한강 드론공원은 합법적인 비행이 가능한 드론 전용 공간이다. 항공법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부분이 드론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곳은 송파구 풍납동 등 강남의 일부 지역뿐이다. 청와대 등 국가주요시설 상공도 비행금지구역이다. 한강드론공원에서 만난 한 드론 애호가는 “북한 군인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드론에 1㎏ 무게가 나가는 폭발물을 달아 청와대에 떨어뜨리면 속수무책이다. 드론보다 치명적인 무기는 없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청와대 상공에 출현한 드론이 급증했다. 청와대 주변 지역은 비행금지구역(P73)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반경 1.6㎞ 구역은 P73A, 반경 7.2㎞ 구역은 P73B으로 구분된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P73A 공역에 드론이 진입해 제재를 받은 사례는 2014년 12건에서 지난해 37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1∼7월에는 14건이었다. P73B 공역의 드론 무단 진입 사례도 2014년 5건에서 지난해 13건으로 늘었고, 올해 1∼7월 사이엔 3건이었다. 청와대를 향해 날아드는 드론들이 점점 늘어난 셈이다.
이종걸 의원실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에서 드론을 날리면 청와대 안마당까지 1분이면 간다. 독립문 주변 공원에서도 청와대 쪽으로 날리는 경우가 많았다. 드론을 비행금지구역으로 날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가 비행금지구역인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론을 날려 훈방 조치됐다. 하지만 다른 마음을 먹고 누군가 공격용 드론을 청와대로 침투시키면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드론 방어 시스템은 취약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법에 따르면 모든 항공기는 사전 비행허가 없이 P73A, P73B 공역에 진입할 수 없다. 군 당국은 드론이 무단으로 침입한 경우 경고 없이 격파 사격을 한다. 하지만 앞서의 드론의 무단침입 사례를 살펴보면 군 당국은 최근 3년간 P73A, P73B 공역에서 드론 탐지 전용장비인 RF스캐너나 전용 레이더를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육상 관측병들이 주간에는 육안으로 드론을 관측했거나 야간에는 TOD(열영상탐지기)로 드론을 탐지한 것이다.
드론업계 전문가들도 청와대 드론 방어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드론업계 관계자는 “경복궁 북쪽의 경계는 청와대와 길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다. 그쪽에서 청와대 안쪽으로 드론을 침투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분이다. 청와대의 육상 보안은 굉장히 삼엄하지만 공중보안은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전혀 없다. 24시간 동안 언제 드론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관측병들이 육상에서 드론의 소리를 듣거나 우연히 하늘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저조차도 지금 당장 경복궁에서 드론을 날려서 청와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드론 운용 기술은 갈수록 향상하고 있다. 2014년 당시 북한제로 추정된 드론들이 강원도 삼척·경기도 파주·백령도 인근에서 발견돼 군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특히 파주에 추락한 드론은 고성능 DSLR 카메라로 청와대를 촬영했다.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 노스’ 연구원 조지프 버뮤데스는 올해 1월경, 북한이 지난 25년 넘게 드론의 개발과 성능 향상에 주력해왔고 공습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한 300대가량의 드론을 운용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의 청와대 드론 공격 시나리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300대라는 수치를 무작정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 북한이 과거에 생산한 드론 방현 1, 2를 포함한 숫자다. 사실 방현 모델은 현대전에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러시아제 프첼라 기체 도입해서 국산화한 정황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프첼라는 북한에서 정찰용으로 사용중인 러시아제 드론이다. 프첼라가 느닷없이 청와대 안마당에 출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드론으로 생화학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다. 앞서의 드론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북한이 우리를 향해 드론을 어마어마하게 날리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다. 드론은 어떤 모듈을 기체에 다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천차만별이다. 농약을 달면 농약 드론이지만 화생방 약을 달면 생화학 무기로 변한다. 북한이 생화학 무기를 드론에 달아 서울 상공에 가스를 살포하면 문제가 커진다”고 주장했다.
원자력발전소 등 국가의 중요시설도 드론 공격에 노출될 여지가 있다. 또 다른 드론 전문가 역시 “드론에다가 소형 폭발물을 얼마든지 달 수 있다. 원전 외벽에 드론이 부딪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에는 원자로만 있는 게 아니다. 원자로 사이사이에 공격에 취약한 시설들이 많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 때문에 폭파된 것이 아니다. 냉각시설이 멈춰서 폭발했다. 냉각시설에 드론이 운반한 폭발물이 떨어지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원전 주변 반경 1~2㎞ 내에서 드론을 날릴 만한 곳은 널려 있다. 드론이 원전으로 침투하는 시간은 3분이면 충분하다”고 귀띔했다.
최근 세종특별자치시는 금강 주변에 드론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시 관계자는 “드론 공원을 금강 인근에 만들 계획이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4월에 제안했고 마스터플랜을 만들기 위해 9월에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수요 파악과 부지 선정을 포함한 작업들이 올해 말에 끝날 예정이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한강드론공원처럼 세종시에도 드론을 위한 비행 전용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청사가 몰려있는 세종시에 드론공원을 만들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시는 정부청사 등 국가기관이 밀집한 곳이다. 세종시와 가까운 대전 유성의 한국원자력연구원 반경 10㎞ 이내 지역은 비행금지구역이다. 익명을 요구한 드론애호가는 “드론을 날리다보면 비행금지구역 바깥으로 날아가는 경우도 생긴다. 경계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소형폭탄을 드론에 매달고 비행금지구역으로 투하해버리면…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세종시 관계자는 “물론 안전성 문제가 있다. 국토부와 협의를 하면서 정부 청사와 주거단지 밀집지역에서 떨어진 곳으로 드론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안전문제가 없는 지역으로 검토 중이다”고 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