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우리에게 웃음을 건네주던 코미디언 김미화. 그가 전해주는 시사 뉴스들은 우선 무겁지 않아서 좋다. 막무가내로 격의 없이 던지는 그의 질문에 내심 궁금했던 속내가 시원하게 풀린다.
사실 김미화는 이번 프로그램 진행 이전부터 적극적인 사회참여 활동으로 유명했다. 여중생 압사사건 무죄평결에 반박하는 연예인들의 기자회견을 주도했고,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해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또한 호주제 폐지 운동에서는 자신이 ‘박미화’였다는 아픈 과거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한 김미화를 만나 새로운 각오와 그간 가슴 깊이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춘 시사 프로그램이다. 보통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지만 관심은 큰 시사적인 내용을 내가 이웃집 아줌마처럼 마구 물어보고 풀어보는 거다. 시민들이 퇴근길에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진행을 시작한 지 두 주 정도 됐는데 반응은 어떤지.
▲다행히 반응이 좋은 편이다. 벌써부터 나를 코미디언이 아닌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알아봐 주는 이들도 많고. 조금은 어눌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
―프로그램 이름이 상당히 긴데.
▲‘2003년 가을’이라는 제목 때문에 한시적인 프로그램으로 아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2003 겨울’, ‘2004 봄’으로 계속 바꿀 거다. 재밌지 않겠나? ‘세계는’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선진국이 우리와 비슷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배우자는 의미다. 제목을 그냥 ‘우리는’으로 줄여볼까 했는데 ‘우리당’과 비슷해서 고민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이 아직은 익숙지 않을 텐데.
▲2시간 동안 혼자 진행한다는 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어려운 시사용어도 입에 안 맞고. 방송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해서 준비하는데 마치 수능 준비하는 수험생이 된 것 같다. 방송이 끝나면 진이 다 빠져버릴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소재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자료 준비와 흐름 파악을 위해 주요 신문을 모두 탐독하고 있다. 어려운 게 너무 많아서 적어 두었다가 방송중에 질문하고 있다.
―역시 가장 큰 화제는 게스트들에게 던지는 특별한 질문이다.
▲당장 내가 몰라서 막무가내로 물어보는 거다. 어려운 사안을 최대한 쉽게 접근하자는 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생각이다. 그래서 게스트들이 어려운 용어를 쓰면 “어허, 그런 말은 못 알아듣지”라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아나운서들은 절대 못 던질 질문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요즘 부동산 대책을 얘기하며 ‘몇 퍼센트가 어떻게 된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러면 나는 “3억원짜리 집이면 세금이 얼마가 되냐”며 대놓고 물어본다. 내가 쉽게 이해돼야 청취자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청취자들 가까이에 있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 1.때론 기운이 빠지고 2.화가 너무나 3.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4.이얍!힘내서 5.웃음주는 나는야 코미디언 | ||
▲오히려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나의 황당한 질문과 농담에 미리 대비하며 한술 더 뜨기도 한다. 한 번은 방송이 끝나고 게스트 몇 분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질문이 편해서 좋다”며 “앞으로도 아무렇게나 질문해 달라”고 주문하더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내일 아침 신문 12시간 먼저 읽기’ 코너의 전담 게스트인 <미디어 오늘>의 김성완 기자가 가장 불쌍(?)하다. 실제 가판대에서 휴대폰으로 연결해 방송을 하는데 신문 뒤적이는 소리가 다 들린다. 한번은 ‘길거리에서 그러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동전 던져주지 않냐’고 물었다가 김 기자가 계속 웃어 방송사고가 날 뻔했다.
―이번 프로그램 진행도 그렇고 지속적인 사회 참여 활동을 두고 정치권에 관심이 있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코미디언은 ‘적’이 없는 직업이다. 누구나 웃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자칫 한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고 그래서 이제는 내게도 적이 생길까 걱정이다. 연예인이 사회참여 활동을 시작하면 으레 정치권 진출을 위한 몸짓으로 오인받는다. 외국의 경우 연예인의 사회봉사는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는 좋은 일은 꼭 꼬아서 보는 것 같다. 나는 죽는 날까지 코미디언이고 싶다. 다만 내가 사는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그냥 ‘웃기는 여자’가 아닌 ‘좋은 일하며 웃기는 여자’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갈 생각인지.
▲시사 프로그램인 만큼 뉴스의 정확한 전달에 힘써야 할 것 같다. 다만 모방범죄와 같은 뉴스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그건 겁나니까.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 체험할 수 없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현재 50여 개 NGO에서 활동중이다.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는데.
▲‘갑자기’가 아니고 십수년간 계속해온 일이다. 본래 사회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그쪽 공부(김미화는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중이다)를 시작한 거고. 아마 내가 어린 시절 주위의 도움을 많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관심 있는 NGO를 하나 둘 돕다 보니 이렇게 많아진 것 같다. 사실 NGO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곳인데 이를 알리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홍보가 절실하다. 요즘에는 젊은 연예인 후배들도 많이 나서니까 보기 좋다.
―지난해 12월 여중생 압사사건
무죄평결에 항의하는 연예인들의 기자회견 당시 눈물 흘리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학교에 붙어 있는 대자보를 보며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녹색연합에서 ‘내복 입기 운동’을 펼치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녹색연합에서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 일보다 여중생 압사사건이 먼저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내가 동료 연예인들에게 연락하고 녹색연합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게 된 거다. 당시 내가 상당히 격분해 있었고 동료들이 삭발하는 모습을 보자 절로 눈물이 나왔다. 지금도 효순이와 미선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에티오피아에 가봤다. 당시 외국 전쟁의 참혹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많이 울었다. 그 모습을 내 눈으로 봤는데 그런 곳에 우리의 아들들을 보낸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그래서 너무 격분해 1인 시위를 벌였다. 한 사람의 엄마로서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모습에서 ‘여전사’의 이미지도 느껴진다.
▲나는 전사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나 여성학자도 아니다. 다만 (늦깎이) 대학 3학년 학생일 뿐이지. 그런데 세상에는 너무나 답답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답답함을 덜어내고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세상에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 지난해 12월6일 여중생 압사사건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김미화(위)<개그콘서트> 초창기에 출연했던 김미화(아래) | ||
▲호주제 폐지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몇십 년간 쉬지 않고 제기돼 온 일이다.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호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들 얘기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호주제는 일제의 잔재일 뿐이다.
올해를 놓치면 다시 10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는 절박한데 법사위 국회의원들은 미적거리고 있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지역구 주민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대통령 공약이란다. 그래서 청와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박미화’였다는 아픈 사연을 밝혔다.
▲나는 호적이 두 개다. 친아버지의 성인 ‘박’, 어머니의 성인 ‘김’까지. 여기에 어머니의 재혼으로 생긴 새아버지의 성까지 더해져 나는 혼란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이런 고민은 결혼 전까지 계속됐다. 늘 “나는 좋은 집안에는 시집 못 갈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하긴 이 약점만 아니었으면 더 좋은 남편을 만났을 텐데(웃음).
―결혼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상당히 어린 나이(23세)에 결혼했다. 그 이유 역시 내 호적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남편이 내게 프러포즈해온 날, 나는 내 출생의 비밀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게 무슨 문제냐”며 나를 감싸주더라. 나는 당연히 감동했고 결혼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결혼 당시에는 이 사실을 시부모님께 비밀로 했다. 혼인신고도 남편이 몰래 가서 혼자 했으니까. 나중에 이 사실을 시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다 이해해주셨다.
―남편이 좋은 분인 것 같다.
▲신랑의 ‘내조’가 내 연예계 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무조건 부인이 남편의 내조를 해줘야 한다는 통념은 싫다. 나는 내 남편의 뒷바라지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마음만큼 주질 못해 안타깝다. 이제 추워지는데 시간이 없어 남편과 애들 겨울옷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도 그만큼 적을 텐데.
▲두 딸에게 늘 미안하다. 연예계 활동도 바쁜데 이 나이에 대학생까지 돼서 가족들에게 너무 소홀한 게. 그 만큼 두 딸에게는 늘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참견하지 않고 가만히 두니까 아이들이 나쁜 것은 스스로 걸러내더라구. 내가 약은 거지 뭐.
―대학생활은 어떤지.
▲젊은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방송국에서도 젊은 PD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먼저 다가가 편하게 지내야지 무게 잡으면 안된다. 나랑 일하면서 편해야지 또 불러줄 것 아닌가. 다 먹고사는 방법이지.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내려 노력한다. 격의없는 모습으로 다가가 술자리에서 ‘오늘은 내가 쏜다’고 한번씩 외쳐주면 인기 최고다. 그래봐야 2만∼3만원이지만. 수업은 단 한 번도 안 빠지려고 노력하는데 학점은 계속 떨어진다. 3.98까지 올라갔던 성적이 3.62까지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 학기도 걱정이네.
―방송가의 ‘히트작’ <개그콘서트>를 직접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후배들이 잘돼야 코미디가 산다’는 생각과 ‘이 녀석들 잘 키워서 10년은 더 먹고살아야지’하는 생각으로 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가 이제 대부분의 방송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다. 당시 무명의 후배들과 함께 <개그콘서트>를 만들 때 우려의 소리가 높았지만 결과는 좋았다. 하지만 나는 <개그콘서트> 형식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또 다른 형식의 코미디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것은 후배들의 몫이겠지.
―‘죽을 때까지 코미디언이고 싶다’고 말한 대목에서 상당한 애착이 느껴진다.
▲나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에 120% 만족한다. 코미디는 10분 이내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해야 한다. 그만큼 진지한 연기는 없을 거다. 아마 사람을 울리는 연기도 코미디언이 훨씬 뛰어날 것이다. 코미디 안에는 그 시대의 사회성, 시류, 그리고 심리학 등이 복합돼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가볍고 경쾌한 인터뷰를 준비했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진지함의 연속이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에 가까운 모습이랄까. 그렇다고 목에 힘이 들어가 괜한 폼을 잡은 것은 아니다. 인터뷰 내내 소탈한 모습으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그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이었다. 답답한 세상이 속시원해지는 그날,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도, 사회문제에 앞장서는 ‘여전사’의 모습도 아닌, 친숙한 코미디언 김미화로 다시 만날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