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불편한 식사 자리 핑계대기 딱”
9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언론기관 종사자 대상 김영란법(부강연회에서 참석자들이 국민권익위원회 곽형석 부패방지국장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법 시행 첫날 공직사회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한 일반직 공무원의 말이다. “지침 사항이 내려오곤 있지만 아직 김영란법 정착이 안됐고, 내용이 복잡해 헷갈린다. 예를 들면 그동안 관례적으로 해왔던 돌잔치, 칠순잔치 등은 경조사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 궁금하다. 어울리다 보면 선을 넘을 수도 있어 아예 만남을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까지 소원해진 것 같다. ‘공정 사회’ ‘투명 사회’라는 취지는 좋지만 한국 특유의 인간관계를 허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찰 내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경찰 공무원은 “수사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만큼 소통할 일이 많은데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탄력적으로 업무를 못 할 것 같다. 심지어 민원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면 민원인이 고맙다고 자양강장제를 들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마저 꺼려진다”고 귀띔했다. 반면, 또 다른 경찰은 “경찰 공무원의 경우 징계가 원래 심해, 위축된다든가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김영란법 사례가 사건화되고 판례가 생겼을 때부터 피부로 와 닿을 것 같다. 경각심은 갖고 있지만 변화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지자체 공무원들 중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면사무소 공무원은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다만 금액이 정해져 있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공무원들은 다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3만 원 이상 식사는 월급쟁이 입장에서 과도하지 않았나. 김영란법 시행 이후부턴 핑계대기도 좋다. 전엔 식사하자고 하면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젠 회피할 수 있다”며 환영했다.
식당 업계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김영란법으로 직격탄을 맞은 여의도의 한 고급 한정식집은 최근 2만 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를 만들었다. 여의도의 한정식집 관계자는 “법이 시행되자 예약 손님이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저녁보다 점심이 더 심했다. 평소 120명 정도 방문하는데 50명도 오지 않았다. 법 시행 전엔 한 사람이 모든 식사 값을 한꺼번에 계산했는데 법이 시행된 뒤엔 ‘김영란 세트’를 먹고도 더치페이 하더라”고 귀띔했다.
교직원들도 움츠러든 분위기에서 김영란법을 맞았다. 한 사립학교 교직원은 “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교육부에서 ‘받지 말라’는 권고가 계속 내려왔다. 적응이 돼 있어 별로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학생들이 꽃다발이나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법에 저촉되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사제 관계를 경직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을 추진한 권익위 상황은 어떨까. 권익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법 해석과 관련된 질문들이 이어졌다. 한 홈페이지 이용자는 “학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게 됐다. 교사들은 학생들 관리와 인솔을 위해 입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놀이공원 측에선 ‘인솔교사 무료입장이 불가능하다. 자유이용권이 5만 원 이상이기 때문이다. 입장권 또한 혹시 문제가 될까봐 곤란하다. 권익위의 유권 해석이 나오면 인솔 교사 입장을 허락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해야 하냐”며 곤란해 했다.
추첨 행사에 대한 글도 많았다. 또 다른 이용자는 “민간단체 체육 행사의 경품 추첨 행사에 경품을 제공해 왔다. 올해도 개당 20만 원 상당의 경품을 제공하려고 하는데 법에 저촉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밖에 “학부모가 반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것도 위반 사항이냐” “유치원 생일잔치 날, 자녀의 반 친구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 나눠주려고 하는데 법에 저촉이 되는가” 등 교직원과 관련된 질문도 적지 않았다.
권익위가 운영하는 김영란법 상담센터 전화는 시행 첫날 9월 28일 문의전화가 폭주해 불통이었다. 그러나 신고 건수는 예상과는 달리 많지 않았다. 9월 30일까지 총 32건(경찰청 31, 권익위 1)에 불과했다. 첫 번째 신고는 9월 28일 오후 12시경 경찰의 112 전화로 접수됐다.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고자가 신원을 밝히지 않은 데다 제공가액이 100만 원을 넘지 않아 접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112전화로 온 신고 모두 출동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신고이거나 상담전화였다고 한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김영란법 첫 수사 대상자가 됐다. 9월 29일 경찰은 신연희 구청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익명의 신고자가 “신 구청장이 경로당 회장 160명을 초청해 문화 체험 관광을 한 뒤 점심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김영란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청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어르신 역사문화 체험 행사’는 연례행사로, 경로당 어르신들의 요청에 의해 약 1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번 행사도 10월 경로당 이용 노인들을 대상으로 경로당 추천을 받아 진행하게 됐으며 이는 연간 계획에 의한 사업으로써 부정청탁금지법과는 관련 없는 사업”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남구청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전 대한노인회 강남구지회장이 구청에 앙심을 품고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강남구청은 다른 건으로 지회장을 고소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것이다. 행사 당일 아침에 나와 사진 찍어 갔다”고 귀띔했다.
신 구청장은 9월 30일 “신고자는 2014년과 지난해 구 보조금 집행 회계검사를 거부하고 보조금 진행 잔액을 반납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올해부터 보조금 지원이 중단됐다. 무고자를 꼭 엄벌해 앞으로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길 바란다” 공식입장을 내놨다.
김영란법 근본 취지는 ‘부패 사회 척결’이다. 법 시행 초기 여러 부작용과 반발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보다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으로 봐야 한다는 게 국민 다수의 여론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늘어나는 부패방지 교육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맞춤형 청렴교육을 확대하고 다른 부처 교육훈련기관의 교육과정에 부패방지 교육이 포함되도록 할 예정이다.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이나 고질적인 부패관행의 고리를 끊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영란이’ 자가 체크리스트 인기 김영란법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해 화제다. 9월 27일 ㈜루트앤트리에서 출시한 ‘영란이’라는 앱이다. 이 앱은 출시 하루만에 1만 건을 넘겼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다운로드 수는 3만 건이다. 기자가 직접 앱을 설치하자 “회원 가입도 없고, 작성된 일지도 서버가 아닌 사용자의 휴대폰에만 저장되는 안전한 앱”이라는 팝업 창이 눈길을 끌었다. ‘영란이’의 핵심 기능은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에 관한 내용을 앱 이용자 본인이 일지 형태로 작성하고 관리하는 부분이다. 금품을 사람 혹은 기관별로 정렬해 총액을 합산해 볼 수 있다. 또 김영란법에 대한 자가 체크 리스트를 제공한다. 이용자가 ‘예’ ‘아니오’ 문답으로 선택하면, 자신의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대상 기관 검색 등의 기능까지 갖췄다. 앱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권익위 자료를 기반으로 했다. 박찬현 ㈜루트앤트리 대표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문의가 많이 온다. ‘기업체에서 단체로 쓰고 싶다’ ‘아이폰 버전은 언제 나오냐’ 등의 질문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이 되기 위해 출시했다. 앞으로 비밀번호 기능과 백업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영란이’ 개발 취지는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민] |
권익위·법조계 입장 해석 제각각 ‘어느 장단에 맞추나’ 김영란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법 적용 대상이 넓은데다 사안별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위반의 핵심 기준인 ‘직무 관련’이라는 표현도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지적이 많다. 권익위 내부에서조차 대처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김영란법에 대한 과거 판례나 명확한 가이드가 없어 법 위반 여부를 판가름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법조계는 권익위의 판단과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혼선이 예상되고 있다. 9월 27일 대법원은 ‘청탁방지법 Q&A’를 공개했다. 대법원은 ‘직무 관련성’에 대해 권익위 기존 입장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법관의 경우 상대방이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김영란법이 적용되지 않고, 사적 관계 등을 참작해 직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친분 관계나 금품을 주고받은 경위와 시기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권익위 판단과는 다르다. 법조계는 김영란법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직무 관련성’ 등 법리적 쟁점 등은 향후 구체적인 재판에서 개별적으로 판단되고 판례 형성·축적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법무법인에 자문을 받아 ‘기업이 알아야 할 김영란법 상담 사례집’을 발간했다. 먼저 사외이사인 교수에 대한 대가 지급에 대해서 권익위 입장과 다르게 해석했다. 법조계에서는 기업이 제공하는 수당과 편의가 교수가 아닌 사외이사로 활동한 대가인 만큼 김영란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반면, 권익위에선 사외이사이기 전에 교수인 만큼 이사회에 참여할 때 지금처럼 관례적으로 수당과 편의를 제공받으면 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 또는 부조 목적으로 제공되는 3만 원 이하 음식, 5만 원 이하 선물, 10만 원 이하 경조사비’도 논란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원활한 직무 수행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당초 배포한 설명자료 등을 통해 10만 원 넘는 경조사비를 받았다면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가, 최근엔 10만 원이 넘는 ‘초과분’만 돌려주도록 입장을 바꾼 바 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