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의원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비주류의 반발과 관련해 “어차피 30~40명 정도는 나가야 한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이 의원은 지난 10월 말 당이 대선자금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긴급 소방수’로 투입됐다. 그 뒤 대여 강경책을 주도하면서 위기에 빠진 당을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당내 비주류로부터는 ‘독선적이고 강경 일변도’란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이 전 총장은 당무감사 문건 유출에 따른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사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이 당 내부 전쟁에 돌입했다”고 선언하면서 “비대위원장과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백의종군하겠지만 이 당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총장은 최병렬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와의 파워게임 유탄에 맞아 당의 핵심에서 한발짝 물러났다. 그렇지만 비주류에 맞설 구심점으로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연 그는 ‘후방’에서 어떤 투쟁을 벌여나갈까. 지난 1월3일 이재오 전 총장을 만나 두 달 동안의 비대위 활동과 최근의 당내 분규에 대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누가 자전거 훔쳐 갔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재오 의원이 지구당 사무실에 들어서며 던진 말이다. ‘애장품 1호’인 자전거를 밖에 세워 두었는데 없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사실은 도난을 우려한 한 당직자가 사무실 안으로 자전거를 ‘모셔온’ 것이다. 이 의원은 12년 동안 자전거로 세상을 누비면서 3대의 ‘애마’를 도둑 맞은 경험이 있어 항상 조심한단다.
자전거는 이 의원의 ‘발’이자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끈’이다. 이 의원은 하루 종일 ‘자전거 투어’를 통해 지역 민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현장 정치가 자신이 당내 물갈이의 선봉에 서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페달’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같은 사람은 국회 갔다오면 지역구 가고 이런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데 일부 의원들은 시간 날 때마다 골프 치러 다니거나 외국에 간다. 지역구에 있기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가 공염불이 되는 것이다. 주민들 속에 스며들어가 울고 웃고 하다 보면 현장감이 몸에 배 다른 일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국민들과 호흡하다 보면 두려울 게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가 ‘겁 없이’ 여권을 공격하는 이유도 현장 정치에서 우러나오는 당당함이 바탕이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사무실은 은평구 역촌동의 한 작은 빌딩 2층에 있었다. 맞은편에는 노래방이 있어 소음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 의원은 별로 불편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자전거 투어를 마치고 온 이 의원과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는 두 달 동안 비대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은 소회에 대해 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터져서 당이 완전히 떠내려가는 판에 비대위를 구성해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다시 당 지지율을 회복시켜 놓았고, 특검 정국을 만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 놓았고, 또 개혁적인 공천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소임을 다했다고 본다. 두 달 동안 당 중심을 잡아 놓은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의원은 지난 12월 초순께 당무감사 보고서 1부를 들고 대표에게 그 내용을 보고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대표님, 이것은 대표님이 가지고 있으면 자꾸 보고 싶어지니까 내가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보고서를 자신의 사무실로 가지고 와 바로 분쇄기로 파쇄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직국장에게 문서를 더 이상 생산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다면 당무감사 결과는 조직국장의 디스켓에만 보관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문건이 전격 공개되자 “미치고 환장하고 진짜 황당했다”고 한다.
그는 문건이 공개되고 파문이 일자 조용히 조직국장 집에 찾아갔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이번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들었다.
그러고 난 뒤 자신이 이 문제를 끝까지 혼자 안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판단해 조직국장에게 ‘나도 이 문제를 내 무덤까지 갖고 갈 테니까 당신도 누가 물으면 총장에게 1부 준 것 외에 없다고 하고 그 다음에는 모른다고만 얘기하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지만 파문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해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문건 유출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이 의원의 ‘증언’을 토대로 가능성을 하나씩 줄여보자. 먼저 기자가 몰래 문건을 빼냈을 가능성.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아무리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기자가 책상을 뒤졌겠나. 누가 주었으니까 받았겠지”라고 말했다. 최 대표측이든 서 전 대표측이든 누군가가 기자에게 문건을 건넸다는 뜻이다.
다음은 당 일각에서 제기된 것처럼 서청원 전 대표측에서 현 지도부를 흔들기 위해 일부러 흘렸을 가능성이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그것은 서 전 대표측이 ‘현 지도부가 고의로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최 대표가 대응 차원에서 주장한 것이다. 서 전 대표측이 흘렸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현 지도부나 대표의 최측근이 흘렸을 가능성이다. 이 의원은 일단 자신은 절대 흘리지 않았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또한 “최 대표가 유출했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며 선을 그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최 대표 주변 인물이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대해 “문건 유출 경위는 내가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을 못할 뿐이다. 그리고 문건 파문 뒤 대표에게 ‘대표님은 모르는 게 좋습니다. 저만 알고 갑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말할 날이 오겠지”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사실 한나라당은 97년 창당 이래 최악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차떼기’ 수법 등이 알려지면서 이미 깊은 ‘외상’을 입은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천을 둘러싼 당무감사 결과 유출 파동으로 치유될 수 없는 ‘내상’을 입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청원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의 반격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자칫 분란을 넘어서 분당으로까지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비주류의 반격은 명분이 없으며 결국 한나라당의 공천 개혁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다음은 현재 당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주류-비주류 갈등에 대한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이 지금 위험해 보인다. 서 전 대표측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조직적 대응은 아니다. 당장 1월3일부터 공천 접수를 받는데 공천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구당 위원장들이 흔들릴 것이다. 시한 내에 신청 안하면 공천을 못 받는 것 아닌가.
▲ 이재오 의원은 최병렬 대표체제에 대해 “전당대회에서 이겼으니까 지지하는 게 정치적 도리다. 잘 될 것이다”고 말했다. | ||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선거 앞두고 분당이란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당을 만들 시간이 그렇게 많나. 서 전 대표가 계속 현 지도부를 압박한다 해도 함께 따라 나갈 현역 의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비주류가 정치의 금도를 넘어선다면 의원들이 오히려 위기감을 느껴 탈당을 주저할 것이다. 혹시 나가더라도 낙동강 오리알이 될 거다. 국민들이 명분 없는 그들의 행동을 좋게 보겠나. 서 전 대표가 그 정도 선에서….
─하지만 민국당처럼 몇 명 정도가 아니고 30~40명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탈당하면 위험하지 않겠나.
▲나는 그 정도가 나가도 할 수 없다고 본다. 어차피 그렇게 가야 한다. 그렇다고 공천 혁명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공천을 하더라도 경선을 해도 안 될 사람에게 억지로 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공천 부적격자로 판단이 되면 다른 곳에 가더라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을 것이다.
─서 전 대표가 상징적인 물갈이 대상 1호라는 말도 있는데.
▲(웃음) 아니, 전직 대표인데 정당의 체면상 공천이야 줘야지. 살아오는지 못 오는지는 자기 사정이고 공천은 줘야 하지 않겠나.
─서 전 대표측 반격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현재 서 전 대표나 당무감사 결과에 불만 있는 몇몇 사람들이 나서서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정작 침묵하는 다수는 가만히 있는 것 같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말 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도가 넘으면 좌시할 수 없다. 앉아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가 당 지도부의 마지막 위기이자 기회일 것으로 보는데.
▲문건 파문 뒤 당 지지도가 회복되고 있어 다행이다. 내가 문건을 유출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된 것 아닌가.
─최 대표와 서 전 대표 간에 물밑 교섭은 진행되고 있나.
▲전혀 없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다. 최 대표가 만약 적당히 타협한다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의원은 문건 파문과 관련해 기밀자료가 유출된 것은 총장이 책임을 질 일이지만 당무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뢰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최 대표가 당무감사 자료를 공천 심사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는 배치되는 얘기다.
그는 이에 대해 “대표의 말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다. 공천심사위원장이 아니니까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번에 합의한 공천심의규정에 분명히 여론조사 항목과 함께 당무감사 결과도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당무감사를 공천 심사에 참고 안하겠다고 하면 당규 위반이다. 운영위에서 결정한 사안을 대표가 함부로 바꿀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이 의원은 최 대표 체제에 대해 “최병렬 개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고 전당대회에서 우리가 뽑은 대표고 또 나는 경선에서 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긴 사람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치적 도리다.
최 대표 체제가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표가 요즘 욕심이 많아졌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정치라는 것은 욕심 갖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욕심이 생길 때 버릴 줄 아는 게 정치다”라는 말로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나오고 있는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민들 재신임을 받으려면 정치를 잘해서 받아야지 이름 바꾼다고 해서 지지도가 다시 올라가나. 나는 바꿀 필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최병렬 대표측과 서청원 전 대표측이 치열한 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두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한나라 자전거’도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올해 4월15일 열릴 총선이라는 ‘경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자전거가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과연 그 방향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