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대상’을 손에 쥔 이수영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이 격해진 상황, 그 순간 이수영의 머리에 떠올랐던 사람은 아마도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이수영은 무대 뒤에서 한 시간여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곁을 지켰던 절친한 친구 이효리조차 그녀의 눈물을 달랠 수 없었다. 그때 이수영의 뇌리에 스쳐지나간 지난날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수영의 팬들은 유난히 조용하다. 여느 여가수들의 팬들과 달리 나서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지원해주는 이들이 많다. 음반 판매량을 봐도, 차트 순위를 봐도 꾸준히 톱클래스를 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에 보이는’ 팬들이 없다는 게 기획사측의 설명이다.
매니저 이한우 실장은 “팬들을 초대해도 그다지 많이 오시지도 않는데, 거참 팬들이 다들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보였다.
‘보이지 않는 팬들’, 바로 여기에 ‘이수영의 힘’이 담겨 있다. 올해 스물다섯의 이수영은 데뷔 초부터 꾸준하게 조용한 발라드곡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특유의 비음이 섞인 보컬과 창법이 모든 연령대의 팬들을 아우르게 한 원천이다.
이효리의 팬도, 신화의 팬도, 신승훈의 팬도, 심지어 이문세나 양희은의 아줌마 아저씨 팬들도 이수영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다. 한 팬은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듯한 이수영만의 목소리가 매력”이라고 평했다.
이수영의 데뷔는 지난 9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중학교 3학년 때인 95년 MBC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 뽐내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끼를 드러낸 이수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추천으로 정식 오디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앨범 [I Believe]를 발표하기까지 3년의 준비기간 동안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타이틀곡 ‘I Believe’는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인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수영은 이 곡으로 크게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다. 2집
‘만년 2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준 곡은 4집 타이틀곡이었던 ‘라라라’. 데뷔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1위 자리에 오른 이수영은 당시에도 울먹이느라 제대로 수상 소감을 말하지 못했다. 1위 후보에 오른 것만 열다섯 번째, 번번이 1위를 놓쳐 아쉬운 가슴을 쓸어야 했던 것.
이수영은 지난 연말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요제마다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대상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매니저 이한우 실장에 따르면 “그 전날까지는 혹시나 한 번은 받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매번 어긋나 정작 대상을 받던 날엔 아예 ‘마음을 비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 지난 연말 ‘MBC 가요대상’을 수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수영(왼쪽). 그런 그를 끝까지 옆에서 다독인 것은 절친한 친구 이효리(오른쪽)였다. | ||
“대상을 받으며 정말 많은 걸 느꼈어요. 계속 후보에만 올라 솔직히 좌절감도 느꼈던 게 사실이에요. 주변에서 ‘혹시 네가 탈지도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어 기대했다가 미끄러지니 원망스럽기도 했구요. 그런데 상을 받고 보니 ‘내가 뭔가 부족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당시 이수영을 곁에서 돌봐줬던 이는 바로 이효리였다. 감정이 격해진 자신을 내내 부축해 주는 우정을 베풀었던 이효리에 대해 이수영은 “아마 효리가 없었다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사실 전날 다른 방송국 시상식에서도 이수영은 한 차례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생방송을 앞두고 갑자기 목과 등에 경련이 일어났던 것. 급히 물리치료사를 불러 밴 안에서 지압을 받은 뒤에야 겨우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이한우 실장은 “지난 연말에 콘서트와 녹음까지 겹쳐서 너무 무리를 했다. 치료사가 ‘혈’이 막혀서 큰일 날 뻔했다고 얘기하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단 있는 언행과는 달리 이수영은 체력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초엔 녹음실에서 연습하던 중 고열과 구토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갔는가 하면, 9월과 10월에는 한쪽 청력과 시력이 거의 상실된 상태라는 기사까지 보도됐었다. 과연 현재 상태는 어떨까.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나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며 “치료를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때 언론에서 이수영이 ‘시력상실설’을 홍보용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던 것에 대해 내심 서운해하는 눈치다.
사실 소속사측은 이와 비슷한 고민이 한 가지 더 있다. 이수영이 소녀가장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자, 일부에서 ‘청승 홍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보내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수영의 가정사가 알려진 것은 소속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수영의 동창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인해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던 것.
알려진 대로 이수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뒤, 가수 데뷔를 준비중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잃어 이후 홀로 동생들을 보살펴 왔다. 분당에서 이수영과 함께 살고 있는 두 동생들은 이수영이 스타라는 것을 어디 가서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어른스런 성격이라고 한다. 이번에 대상을 탄 뒤에도 그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건넸을 뿐이라고.
이수영은 “나보다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들이 많다.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어머님이 계시지 않았느냐”며 “정말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이 같은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이수영은 분당 중앙고등학교 때엔 연극반 반장을 맡기도 했다. 이수영은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당시 연극반 담당 선생님이 첫사랑이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 시절 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운동장에서 엉엉 울었다고.
시트콤 <논스톱4>에 출연해 연기에의 ‘끼’도 선보였던 이수영은 남다른 연기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한때 자신의 콘서트에서 과감한 춤과 의상을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던 그녀는 “뭐든지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3일 걸리는 것도 3시간이면 흉내 정도는 낼 줄 안다. 춤도 특별히 배우진 않았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박경림, 이영애, 신승훈 | ||
평소 이수영을 아끼는 신승훈이 당시 “넌 발라드 가수만 해라. 노래하는 데 전념하고 보여주는 것으로 어필하려고 하지 말아라”는 애정 어린 질책을 했던 것. 물론 이에 대해선 이수영도 같은 생각이다. 평소 이은미를 존경해 온 이수영은 “오로지 가수로 한 우물을 파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수영은 생각 외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친분을 쌓고 있기도 하다. 장진 영화감독과는 ‘이웃사촌’으로 인연을 맺어 장 감독이 연출한 <묻지마 패밀리>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컴필레이션 앨범 <애수> 작업 때 만난 이영애와도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이수영이 2집 활동을 하며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영애가 병문안을 와준 고마웠던 기억 때문에 요즘 <대장금>은 꼭 챙겨보고 있다고 한다.
또한 79년생 동갑내기들인 이효리 강타 신혜성 이지훈 박경림 성시경 안재모 이기찬 김동완 등이 모여 만든 ‘79클럽’ 활동도 끊임없이 갖고 있다. 각자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정기적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틈나는 대로 연락해 술도 마시고 서로 모니터도 해준다고. 특히 같은 종교(기독교)를 갖고 있는 이지훈과는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사이다.
미국 유학중인 박경림이 지난 여름 극비리(?) 귀국했을 때는 얼마 전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클래식>에 수록할 곡들을 함께 논의하기도 했단다. 노래 ‘늪’은 당시 박경림의 ‘강력추천’으로 앨범에 실리게 되었다고. 팬들에 대한 선물로 발매한 앨범 <클래식>에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조덕배의 ‘꿈에’,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 콘서트 당시 동영상도 담겨 있다.
이제 ‘가수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이수영이 앞으로 이루고 싶은 또다른 꿈을 무엇일까. 지난 한 해를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그녀는 이제 해외 로 활동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오는 2월7일과 8일 아듀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일본에서 활동할 예정. 지난해 소니뮤직과 맺은 계약대로 2년 동안 일본에서 싱글앨범 2장과 정규앨범 1장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수영은 요즘 일본을 오가며 재킷 촬영을 하는 등 앨범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녀는 “더 넓은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신인의 자세로 뛸 생각이다.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성공을 위해서 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도전하기 위해 떠난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수영. 마지막으로 그녀는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보아에 대해서도 한마디 ‘평’을 덧붙였다.
“정말 대견스럽죠. 그 친구 나름대로의 색깔로 성공을 거뒀잖아요. 그러나 그 인기가 부러운 건 아니에요. 저는 저대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