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인 지난 2월15일, 김기덕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 마지막 성지로 남아 있던 베를린 영화제(54회)에서 감독상(은곰상)을 받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이전 두 감독의 수상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충격적, 파격적이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상당수였을 정도로.
그의 수상이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김기덕 감독은 영화계 주류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엽기적이라 불릴 만큼 개성있는 표현 양식으로 사회의 이면에 카메라를 드리운 그의 영화는 늘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수상이었다. 기대와 미련을 버린 김기덕 감독은 이미 베를린을 떠나 시상식 전날에는 파리에서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프랑스 개봉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베를린행 비행기표를 전달받은 김 감독은 그의 표현대로 ‘얼떨결에’ 베를린 영화제 시상식 무대에 올라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내 영화는 미숙함이 많다. 지금까지는 이를 저예산 영화의 장점이라 얘기해왔지만 수상은 정말 의외다. 그동안 김기덕이라는 사람이 자기 노선을 분명히 이어왔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준 상이라 생각한다.”
저예산 영화의 ‘장점’인 미숙함. 이는 <사마리아>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필름을 아끼고 제작 기간을 줄이기 위해 장면마다 초긴축 촬영을 하는 김 감독은 때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곤 한다.
<사마리아>의 경우 촬영을 구경하는 사람 네 명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재촬영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김 감독은 그럴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이를 영화 안에 담아뒀다.
▲ 김기덕 감독이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 모두 파격적 소재와 표현으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
김 감독의 수상은 그동안 유럽 언론이 쏟아낸 호의적인 기사에서 어느 정도 점쳐졌다. ‘회화적인 정서와 엽기적인 표현의 어울림’ ‘선악의 개념이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 ‘미워할 수 없는 사회악 캐릭터’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경이적인 영화’ 등 그의 영화에 대해 유럽 언론은 늘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이라는 유형물로 다가온 것이다.
사회 통념상으로 볼 때 그는 ‘무식’하다. 2년여의 프랑스 유학이 특이한 부분이지만 그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것도 일반 중학교가 아닌 농업전수학교였고 열일곱 살부터는 공장에서 일하며 지내왔다. 때문에 그의 프로필에는 최종 학력이 ‘중졸’로 기록되기도 하고 ‘초등졸’로 나와 있기도 한 것이다.
그가 남들과 다른 성장 과정을 겪은 이유는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와 연관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김 감독이 “맞기는 참 많이 맞았다”고만 얘기했을 정도.
‘피학’이 ‘가학’으로 나타났던 걸까. 산골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의 팔을 부러뜨리는 등 빗나간 행동을 일삼던 그는 아홉 살 때 서울로 이사온 뒤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계속되는 아버지의 구타에 반발하는 의미로 중학교 진학까지 포기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은 스무 살이 되던 해 해병대 자원입대로 이어져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5년간의 해병대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김 감독에게는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 대학 졸업 학력자들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그는 분명 무식한 이단아일 수밖에 없다.
그가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목사가 되는 것. 총회신학교 신학원을 다니는 한편 2년간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일하며 목사가 될 준비를 했다. 이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김 감독은 어느새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 목사의 꿈을 접은 채 비행기표 한 장만을 들고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그는 그림을 그려 팔아가며 미술 공부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2년간의 프랑스 유학 시절. 김 감독은 자신의 그림을 하나의 영상으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이런 결과물은 귀국 이후 시나리오 작업으로 결정체를 만들어낸다.
귀국 6개월 만에 두 편의 시나리오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그는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 당선된 시나리오가 작법은커녕 맞춤법도 갖춰지지 않은 것이었듯이 3년 뒤 내놓은 감독 데뷔작 <악어> 역시 그간의 한국 영화가 형성해 놓은 일종의 ‘법칙’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도권의 정식 교육은커녕 연출부 생활 경험도 없는 그가 내놓은 영화는 상당한 ‘미숙함’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지녔고, 사회 이면에 숨겨진 소재를 충격적인 표현 양식으로 선보였다. 데뷔작 <악어>는 서울의 발전을 대변하는 ‘한강’ 이면에 도사린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데뷔작으로 마니아를 확보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지난 96년 <악어>를 선보인 이래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김 감독은 10편의 작품을 쏟아내며 그 어떤 감독보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낸 <실제상황>이나 11일 만에 촬영을 끝낸 <사마리아> 등 매 작품의 촬영기간이 채 한 달여를 넘기지 않았다. 이런 손 빠른 촬영으로 제작비 5억원을 넘기지 않는 ‘전형적인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관객이 볼 만한 영화에 돈이 쏠리는 지금 영화계는 파워(영향력)와 숫자 놀이가 되어 버리고 있다. 내가 빨리 찍는 것은 특이한 게 아니라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의 촬영 방식이다. 이번 영화부터는 김기덕 필름이라는 독립 프로덕션을 통해 순수한 1인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편수를 거듭하면서 시스템을 강화해 1억 미만의 돈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도록 해내겠다. 이를 통해 영화는 돈으로 찍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
김기덕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저예산 독립 영화라는 형식적인 독특함보다 내용이나 소재의 ‘파격’과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주는 ‘충격’, 그리고 이를 그리는 표현 방식의 ‘엽기성’에 있다.
김기덕 영화가 갖는 공통적인 특징은 그가 그리는 인물들이 ‘주변인’이라는 점이다.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를 숨겼다가 유가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악어’(<악어>), 여인숙에서 몸을 파는 여성과 우정을 나누는 여대생 ‘혜미’(<파란대문>), 낚시꾼들에게 낮에는 음식을 팔고, 밤에는 몸을 파는 ‘희진’(<섬>), 양공주 출신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혼혈아 ‘창국’(<수취인불명>), 납치되어 창녀가 되어 버린 여대생 ‘선화’(<나쁜남자>), 그리고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들(<사마리아>). 모두가 우리 사회의 눈높이로는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변두리 인생’들이다.
▲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 <사마리아> 촬영중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이얼(왼쪽)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 | ||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부분 ‘창녀’ 내지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고, 남성들 역시 정상적인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는 이들과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일부 페미니즘 평론가와 여성단체들로부터 ‘사이코’ 혹은 ‘백해무익한 감독’이라는 공격적인 얘기까지 들을 정도.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나는 그들에게 내가 묘사하는 삶들을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간절한 메시지를 들여다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특정 기준에 의해 쉽게 분노해버려 다른 측면을 놓쳐 버리고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돈 따위의 속물적 욕기와는 담을 쌓은 것 같은 그에게도 한 가지 욕심은 있다. 바로 관객 욕심. “이번 수상의 의미는 별다른 홍보가 안된 <사마리아>의 홍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김 감독은 “최대한 많은 한국의 딸과 아버지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고 얘기한다.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를 ‘18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내린 데 대해 두고두고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언젠가 한국의 저예산 독립 영화가 관객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는 김기덕 감독. 그의 말대로 한국 영화의 진정한 발전은 (영화 배급의) ‘파워’와 (관중 동원의) ‘숫자’ 놀이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