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404호 법정에서 열린 ‘안풍(安風) 사건’ 항소심 6차 공판. 피고인으로 불려나온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피고석 오른쪽에 앉아 있던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을 향해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배신했다’며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강 의원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강 의원은 “내 한 몸 살고자 20년 동안 자식처럼 사랑해준 웃어른을 배신하는 비겁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탓일까. 이날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은 피고석 세 자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두 시간 동안 재판장만 응시한 채 단 한 차례도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안기부 예산으로 추정되는 9백40억원을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옛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강삼재 의원이 선거 자금으로 전용한 이른바 ‘안풍 사건’. 강삼재 의원과 김기섭 전 운영차장은 이 사건의 ‘공범’으로 3년이 넘게 법정에 서고 있다. 한때 YS를 ‘주군’으로 섬기며 동고동락했던 두 사람은 이제 인식공격까지 쏟아내며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법정공방 한가운데엔 바로 ‘속끓는’ YS가 있다.
지난 2001년 1월 안풍사건으로 기소된 두 사람은 3년여 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앵무새’처럼 줄곧 똑같은 주장만 반복했었다. “안기부 돈을 받지 않았다”는 강 의원과 “안기부 돈을 강 의원에 직접 건네줬다”는 김 전 차장의 상반된 법정 진술이 ‘고장난 녹음기’처럼 리플레이됐던 것.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는 가운데서도 묵시적인 ‘성역’은 존재했다. 바로 YS였다. 하지만 지난 2월 “청와대 집무실에서 YS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강 의원의 ‘폭탄 발언’이 터지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두 사람 모두의 ‘주군’이었던 YS가 ‘안풍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차장은 변함 없이 “내가 강 의원에게 돈을 직접 줬다”는 상반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분명 두 사람 중 한 명은 ‘신성한’ 법정에서 거짓을 진술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김 전 차장이 강 의원을 향해 핏대를 세워가며 비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상도동 어른(YS)에게로 불똥이 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선 ‘인간적인 배신감’을 먼저 거론하고 있다.
김 전 차장은 ‘안풍 사건’ 재판이 시작됐던 2001년 1월부터 3년 동안 줄곧 “강 의원과 공모한 사실이 없다”며 “96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내가 독자적으로 계획해서 이행했다”고 주장해왔다. 다시 말해 ‘김기섭 유죄, 강삼재 무죄’를 강변하며, ‘독박’을 쓰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던 것.
하지만 그러던 김 전 차장의 심사가 완전히 뒤틀어졌다. 지난 2월6일 공판에서 강 의원이 “지난 95년 말부터 4월 총선 직전까지 YS로부터 9백40억원을 모두 10여 차례에 걸쳐 청와대 집무실에서 직접 받았다”고 진술한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김 전 차장의 심경에 변화가 온 것 같다는 게 한 측근의 전언이다. 김 전 차장 자신도 지난 2월27일 법정에서 “강 의원이라도 무죄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덤까지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지난 공판(2월6일) 때 강 의원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2월23일 재판부에 제출한 자술서에서도 김 전 차장은 ‘95년 가을 서울 롯데·하얏트·가든 호텔 등 세 곳의 안기부 전용 호텔 방에서 여러 차례 강 의원을 만나 내가 직접 강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은 강 의원과 나, 단 둘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강 의원이 지난번 공판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양심적으로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 강삼재(왼쪽), 김기섭 | ||
하지만 강 의원은 지난달 27일 법정에서 김 전 차장의 진술에 대해 “언급할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다. 만일 김씨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모든 것을 자수하고서 죄를 달게 받았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YS가 돈을 줬다는 사실을 그동안 밝힐 수 없어 최근까지 고심해왔다”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전 차장이 자신을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폈다. 강 의원은 “김씨는 지난 1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경희의료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씨는) ‘강 의원이 무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조금만 더 참아보자. 오는 4월에 사면이 있을 거라고 하지 않는가’라며 진실 공개를 만류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의 이런 주장에 대해 김 전 차장은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반박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김 전 차장의 변호인도 “(김 전 차장이) 강 의원에게 안부전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 의원이 무죄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김 전 차장은 오히려 자신이 회유 당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구속된 뒤 (우리) 가족들에게 (한나라당 등에서) ‘안기부 자금이 아니라 YS의 대선잔금이라고 진술하라’고 회유했다. 대선잔금이라고 말하면 무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빠져나가려고 상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김 전 차장의 주장에 대해 강 의원의 한 측근은 “김씨는 YS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기뻐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왜 재판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나서야 ‘역사적 진실’을 밝힌 것일까. ‘안풍 사건’ 재판이 처음 열렸던 2001년 1월까지만 해도 ‘YS의 자금지원설’을 전면 부인했던 그였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의 주변 인사들은 지난해 9월24일 1심 법원의 유죄 판결이 심경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1심에서 법정 구속 없이 징역 4년에 추징금 7백31억원을 선고받았고, 김 전 차장은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추징금 1백2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강 의원의 한 측근은 “강 의원은 지난해 1심 판결이 나기 이전부터 재판에 많이 지친 기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나 ‘상도동’에서 보호막이 돼 준 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 9월 1심 판결이 강 의원의 심경에 큰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징역을 사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1심 선고 다음날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마산회원지구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 그는 전국 각지를 혼자서 여행하며 ‘중대 결단’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그는 ‘거사일’을 지난 2월6일로 정했다. 항소심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 지난 2001년 2월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의 서도전을 방문한 강삼재 의원. | ||
강·김, 두 사람은 알려진 대로 YS의 ‘심복 중 심복’이었다. 강 의원이 YS의 후광에 힘입어 정치권에서 꽃피운 인물이라면 김 전 차장은 밖으로 티 나지 않게 YS 곁을 지킨 ‘그림자’ 였다.
두 사람 가운데 YS와 처음 인연을 맺은 사람은 강 의원이었다. 강 의원은 YS가 항상 곁에 두고 싶어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지난 95년에는 YS가 당시 43세에 불과했던 강 의원을 민자당(옛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전격 발탁할 정도였다. 그만큼 강 의원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는 것을 방증한다. 심지어 YS가 강 의원을 ‘정치적 아들’로 삼았다는 얘기가 정가에 나돌 정도였다.
강 의원은 원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였다. 엄밀히 따지면 민주당 김상현 의원의 계보에 속했다. 그런 그는 지난 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YS가 주도한 통일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상도동계’에 승선했다. 그리고 불과 8년 만에 여당의 사무총장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강 의원이 얼마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받았는가는 YS의 회고록에도 잘 드러나 있다.
“(15대 총선) 공천의 실무 작업은 강삼재 사무총장과 청와대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맡겼다. 강 총장과 이 수석은 나와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 왔으며, 정치적 판단과 감각이 뛰어나고 사심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강삼재 총장과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직접 만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공천과정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정치인’ 강삼재와는 달리 김 전 차장은 90년 3당 합당 이후 합류한 ‘YS 보좌역 그룹’ 출신이다. 당시 김 전 차장은 YS의 의전담당특보를 맡았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그룹 계열인 호텔신라 상무이사까지 지낸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는데, YS가 민자당 대표였던 90년도부터 92년 대선 때까지 주요 대외행사에서 의전을 담당했다. 지근거리에서 YS를 보필했던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92년 대선 당시 김 전 차장은 특보 명함을 들고 다녔으며, 주로 YS의 비선 라인에서 활동했다. 그런 공로가 인정됐는지 YS가 대통령에 취임된 직후인 93년 3월에 안기부 요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전 차장의 안기부 운영차장 발탁은 정가에서 의외의 인사로 받아들여졌으나 당시 상도동계 일각에선 그의 성향과 딱 어울리는 일을 맡은 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무거운 입과 빠른 머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림자처럼 처신할 줄 아는 그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 부훈을 연상시킨다는 의미였다. 15대 총선 당시 여권 핵심부 일각에서 김 전 차장의 국회의원 출사를 권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고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은 이처럼 YS에게 중용돼 ‘상도동호’라는 한 배에서 노를 저었지만 YS의 시대가 저물면서 두 사람이 상륙한 지점은 사뭇 달랐다. ‘정치인’ 강삼재에게 여의도가 여전히 꿈과 도전의 무대로 남아 있었던 반면 ‘그림자 측근’ 김기섭은 다시 세상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져갔다. 마치 빛이 없으면 자신 또한 사라져야 하는 그림자의 숙명처럼.
공교롭게도 그런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다시 모은 것은 안풍사건이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옛 주군 YS를 한가운데 두고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한때 ‘YS의 정치적 아들’로 불렸던 강 의원은 ‘배신자’라는 비아냥거림에 괴로워하고 있고 ‘YS의 그림자’였던 김 전 차장은 세간에서 ‘의리파’로까지 불리고 있다.
YS에 대한 의리와 역사적 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꿈인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강삼재 의원. 반면 강 의원이 혼자 살기 위해 진실과 의리를 저버렸다고 성토하는 김기섭 전 차장. 과연 두 옛 측근의 공방 한가운데에 서게 된 YS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