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담 없는’ 자신의 외모에 감사한다는 김제동.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그는 생각보다 풋풋하고, 기대보다는 우습지 않고, 예상만큼 인간성이 좋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데뷔한 지는 고작 1년 반 정도. 데뷔와 동시에 서울 생활을 시작한 김제동은 “아직도 연예인을 보면 신기하다”고 말하지만, 그가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재치는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방송을 저렇게 잘 알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김제동은 자신의 인기 요인에 대해 “정말 운이 좋아서 이렇게 뜰 수 있었다”고 대답하며 몸을 낮춘다.
생각보다 풋풋했고, 기대보다는 우습지 않았고, 예상만큼 인간성 좋았던 김제동. ‘잘’생긴 얼굴은 분명 아니었지만, 외모를 가지고 누군가를 설명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김제동과의 ‘첫 미팅’ 같았던 데이트 현장을 소개한다.
데뷔 1년여 만에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김제동을 만나기 위해선 한번의 ‘펑크’를 감수해야 했다.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던 지난 22일 오후 6시, ‘쟁반 노래방’ 녹화가 예정된 시간에서 무려 한 시간을 오버해 버렸던 것. 이날 초대 손님 중 한 명이던 장나라가 드라마 촬영 때문에 지각을 했다고 한다. 이날 김제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까지 잡혀 있었다. 남아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더구나 그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 하고 방송국을 나서는데 그는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는 말을 대여섯 번도 넘게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말을 듣는 기자가 다 ‘죄송’할 정도로.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 갠 여의도 공원 야외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1시간여 동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김제동은 의외로 낯가림이 심했다. “나랑 인터뷰 하는 기자들 모두 재미없어 한다”며 수줍은 웃음을 보일 정도였다. 인터뷰 하며 기자가 상대방에게 ‘나 좀 봐달라’고 애원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를 만난 지 10분이 지나도록 ‘이 사람이 과연 김제동인가’ 싶을 만큼 무대를 벗어난 김제동은 더 이상 ‘개그맨’이 아니었다.
─편하게 얘기하라. 마치 군인과 인터뷰 하는 느낌이다. 말끝마다 ‘다, 까’로 끝내고 있다, 지금.(웃음)
▲이게 편하다. 원래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얘기를 잘 못한다.(수줍은 웃음)
─데뷔 시기가 언제였나.
▲나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재작년 10월쯤 되는 것 같은데 그때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시작했다. 라디오는 <2시의 데이트>를 통해 처음 목소리를 알리게 됐고, 그러다가 <폭소클럽>에 출연하면서 어찌 어찌 지금까지 흘러왔다.
▲ 되살아난 입담으로 기자를 웃긴 김제동. | ||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다. 서울생활 시작하면서 온 ‘약간의’ 외로움이 있지만, 워낙 좋은 형들 만나서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뭐, 거의 외로움에 적응이 다 된 것 같다. 거의 죽기 직전의 단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웃음)
─혼자 있을 땐 주로 뭘 하고 지내나.
▲낚시도 하고, 아는 동생이랑 야구도 하고. 팀 짜서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게는 못하고, 그냥 둘이서 공받기 하는 정도다. 텔레비전 보고 책도 읽고 잠 오면 자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내가 출연하는 건 잘 못 본다.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도 보고 특히 (유)재석이형, (신)동엽이형 나오는 프로그램 많이 본다. 형들 나오는 프로를 보면 신기하다. 내가 아는 형들이니까.(웃음)
김제동이 말하는 ‘좋은 형들’이란 윤도현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이다. 그가 데뷔 전 윤도현의 공연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또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통해 데뷔한 인연으로 김제동은 윤도현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대해서는 남다른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와는 출연료 협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소속사에 말했다고 들었다.
▲맞다. 근데 무척 후회하고 있다.(웃음) 그게 기사화될 줄은 몰랐는데. 아, 이거 개편 앞둔 민감한 시기에 기사로 나와서.(웃음)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료가 20만원 정도다. 뭐, 그 프로그램은 내가 데뷔한 곳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청객들과 만날 수 있는 고정적인 장소라서 참 좋아한다. 의리나 이런 걸 떠나서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고 싶지 않은 그런 프로그램이다. 사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하는 날이 <해피투게더> 녹화랑 겹치는 바람에 재석이형한테는 좀 미안하다. 재석이형은 근데 내 마음을 알고서는 ‘자식, 편하게 해’ 이러면서 다 이해해준다. 아, 재석이형 참 좋다. 이건 꼭 써 달라.(웃음)
─이제 어딜 가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안경 벗으면 잘 못 알아보신다, 아직.(웃음)
─안경을 잘 안 벗고 다니지 않나.(웃음)
▲한번씩은 안경 벗고 다닐 때도 있다. 안경 벗어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세상을 뚜렷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약간 흐릿하게 보고 싶을 때, 그럴 때 벗고 다닌다.
─의미심장한 발언 같은데.
▲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눈을 좀 지그시 감고 다니고 싶을 때. 하긴 눈을 떠도 감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하지만.(웃음)
─이승엽 선수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알려졌다. 이승엽 선수가 예전부터 ‘언젠가는 꼭 뜰 사람’이라고 말했다던데. 언제 자신이 뜰 거라고 예상했나.
▲주위 분들이 워낙 많이 도와주신 덕이다. (윤)도현이형도 그렇고 (강)호동이형 동엽이형 재석이형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대학교 축제 때 윤도현 밴드 만나서 데뷔하게 된 것도 그렇고, 운이 정말 좋았다. <폭소클럽>을 하기 전만 해도 그 당시 스탠딩 개그란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런 프로그램이 생겨서 덕을 많이 봤다. 그런 프로그램이 나 같이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하기엔 딱 좋은 프로그램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장점은… 글쎄,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내 입으로 대답하지 못한 건데.(웃음) 잘은 모르겠고 ‘1남5녀’로 태어난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누나들이 참 많은 소재를 제공해주고, 우리 어머님이 재미있으시다는 거, 그게 장점이다.(웃음)
▲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윤도현과 함께. | ||
─그 얘기들이 다 실화인가.
▲그렇다. 아버님이 안 계시고, 어머님과 누나 다섯 명들 사이에서 자란 게 어떻게 보면 특수한 가정인데 그게 나한텐 도움이 많이 된다. 또 나는 방송에서 실생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농촌에서 자란 것도 많은 소재를 주는 것 같다.
─누나들도 다들 재미있는 성격인가.
▲누나들의 성격이 제각각일 만큼 개성이 다르다. 큰 누나는 블랙코미디 쪽이고 둘째 누나는 너무 진지해서 사람들이 웃는 스타일, 셋째 누나는 막무가내식 개그, 넷째 누나는 조금 수준이 있고, 다섯째 누나는 나랑 닮아서 웃긴다.
지난 5월 김제동이 괌 공항에서 ‘억류 소동’을 겪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때 이유가 ‘특이하게 생긴 외모’ 때문이었다는 것.
─괌 공항에서 억류됐다는 게 사실인가.
▲그냥 일반적인 인터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 15분간은 그냥 보통 인터뷰를 했고 그 이후에는 서로 웃으며 잡담 식으로 얘기를 했다. 뭐, 직업을 묻기에 코미디언이라고 하고, 내 매니저가 덩치가 좋은데 ‘슈렉 닮지 않았느냐’며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 분이 재미있었는지 붙잡고 자꾸 얘기를 시키더라. 그러다 보니 한 40분 넘게 얘기했다. 내가 그랬다. 날 봐서도 알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없다고. 그런데 그 분 입장에서는 자기 할 일 한 것 아닌가. 지나치게 했으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사인도 해주고 왔다. 다음에 한국 올 일 있으면 당신도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니 (입국심사)인터뷰에서 40분은 할 각오하고 오라고 그랬다.(웃음)
김제동은 자신의 외모로 인해 생긴 ‘사건’을 얘기하면서도 웃음을 만들 줄 알았다. 콤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는 외모상의 단점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할 줄 아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는 것. 이 같은 기자의 칭찬에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웃기지 않아요?”라고 되묻는다.
─말 못한다.(웃음)
▲거봐라. 말 못한다면서 웃지 않나. 난 솔직히 얘기한다. 꽃미남이 싫다고.(웃음) 난 나보다 잘생기면 싫어한다. 그래서 난 대부분을 싫어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 안 된다. 방송국엔 한 명도 없고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두어 명 있다. 그 친구들도 그다지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들도 다 날 좋아한다.(웃음)
“혹시나 성형을 생각해 본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김제동은 “없다, 전혀. 칼은 도마 위에 있어야죠”라며 또 하나의 ‘어록’을 남긴다. 덧붙여, 그는 “그렇다고 성형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 사람들의 가치관이고, 각자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것 아닌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외모에 대한 불만은 없나.
▲내가 영화배우라면 모를까…. 여자친구를 만날 때 조금 자신감이 없었던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오히려 나의 외모에 대해 고마워한다. 만약 내가 잘생기고 키가 컸으면 사람들한테 거부감을 일으킬 것 아닌가. 난 처음엔 가학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다가 나중에 포장도 해주고 양해를 구하는 개그를 많이 한다. 근데 내가 외모로 사람들한테 가학적으로 해도 사람들이 별로 안 싫어한다. 이런 식이다. ‘어휴, 피부가 왜그래요. 애인 없죠?’ 그러면 ‘사회자도 애인 없죠?’ 그러면서 같이 웃는다. 속으로 ‘지는 오죽할까’ 그러지 않겠나, 하하. 내가 잘생겼다면 ‘그래, 너 잘생겼다 이거지?’ 그럴 것이다. 난 이렇게 뻘밭에서 같이 뒹군다. 같이 진흙 던지고 노는 거다. 내가 먼저 들어가 흙 묻히고 들어오라 그러니 사람들이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목소리나 사투리 때문에 방송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목소리가 별로 안 좋다. 그러고보니 신체 부위 중 좋은 데가 하나도 없다.(웃음) 사투리도 쓰고. 방송인으로서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근본적인 대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웃음을 준다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곳이 대구이고, 경상도이고. 그걸 굳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노력을 전혀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한 달 정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난 못 고친다.(웃음)
시간이 차츰 흘러가자 김제동다운 달변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연예인들의 에피소드는 지면에 모두 담지 못할 만큼 포복절도할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1대1’로 하는 인터뷰에는 정말 자신 없다는 김제동. 그는 마이크를 잡고 대중들 앞에 설 때가 가장 편하단다. 그러니 이날 인터뷰는 그에겐 꽤 불편하고 힘든 자리였으리라. 그러나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 지나가는 모든 팬들에게 빠짐없이 인사를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 김제동’이 연예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다는 김제동의 전성시대가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쭈욱 계속되길 바라면서 수줍음 많은 남자와의 첫 미팅을 마무리했다.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