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양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젠 한기주를 버리고 박신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는 <파리의 연인>에서 ‘왕자’의 모습으로 여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했으며 웃음 짓게도 만들었다.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탄탄한 배우이면서, <파리의 연인>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인기까지 얻게 된 박신양. 촬영장에서 여러 번 지켜본 그의 드라마 밖 모습과 인터뷰를 <파리의 연인> 종영에 즈음한 ‘아쉬운’ 마음으로 담아본다.
지난 13일 오후 2시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 앞. 박신양은 김정은을 파리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방영분을 촬영중이었다. 한창 감정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 박신양의 모습은 드라마 속 ‘한기주’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오늘은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이날은 박신양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 연기’를 앞두고 있었으며, 이미 그는 며칠째 이별 장면의 감정 표현을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대기중이던 그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대본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던 그는 수도 없이 읽어보았을 대사를 또 다시 연습하고 있었다. 박신양의 독특한 연습 버릇 중의 하나는 유난히 입을 많이 움직인다는 것. 아나운서들이 생방송을 앞두고 입 운동을 하는 것처럼 박신양은 촬영장에서 입 운동을 무척이나 열심히 한다. 박신양이 대본을 보는 동안 곁에서는 코디와 메이크업 담당자의 손놀림이 바쁘게 이어진다.
박신양이 대기하던 동안엔 김정은의 단독 컷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가야 하는 강태영을 연기해야 하는 김정은 역시 이날 무척이나 예민해진 상황. 며칠째 밤샘 촬영을 이어오고 있는 터라 김정은은 신경이 곤두서있는 듯했다. 그런데 잠시 뒤 김정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곧이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심각한’ 신을 찍기에 이날 현장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공항의 출국 게이트 앞에는 구경꾼들이 막무가내로 몰려들었고, 웅성거리는 소리와 쏟아지는 시선은 고스란히 배우들의 연기에 방해 요인이 되었다. 화면 속 배우들의 뒤에 담기는 구경꾼들의 어색한 시선 때문에 촬영 감독은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아 달라”며 특별 부탁까지 해야 했을 정도.
제작진은 급기야 ‘바리케이드’까지 치며 현장을 통제하고 나섰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박신양은 “대책 없이 이런 장소에 나선 게 문제지 몰려드는 걸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라며 한소리를 던졌다.
이날도 촬영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당시에도 마지막회 시나리오는 ‘긴급 수정’ 상태였고 대본이 늦게 나오는 터에 출연자들은 ‘쪽 대본’으로 촬영을 이어오고 있었다. 박신양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일주일 동안 총 수면시간이 네 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며 곁에서 푸념을 하던 매니저 역시 정신이 몽롱해 보였다. 화려한 화면과는 달리 <파리의 연인>의 촬영장은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연장 방송’에 대해 배우들이 ‘불가입장’을 밝힌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했다. 박신양이 “거의 생방송으로 찍고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 그러나 박신양이 연장방송을 반대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연장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스토리를 끌어가기 힘든 구도다. 애초 시놉시스대로 20부로 가야 적당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 끌고 가면 지루하고 식상해질 염려가 있었다. 이미 15부~16부를 넘어서며 극적인 재미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신양은 ‘한기주’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왔다. 자동차 회사 사장인 한기주의 ‘직업’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헤어스타일과 의상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그가 자신의 연기 비결에 대해 “캐릭터에 그 사람의 직업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을 정도. 이는 연기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범죄의 재구성> 때 머리를 좀 길렀었는데 이번 작품 들어가며 주위에서 ‘잘라보라’는 추천을 많이 했다.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과 세 가지 컨셉트을 가지고 심각하게 상의하다 나온 머리가 바로 이 머리다.(웃음) 의상도 처음엔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이젠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평소엔 그냥 면티에 헐렁한 바지 입는 걸 좋아한다.”
▲ <파리의 연인> 중 고성의 정취가 풍기는 ‘샤또 드 몽빌라젠느’ 호텔에서의 왈츠신. 박신양은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 ||
배우의 캐스팅 과정은 연기력이나 인기 이외에도 개런티 및 소속사의 ‘입김’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박신양과 같은 싸이더스HQ 소속의 오주은(문윤아 역)이 캐스팅된 것도 이 같은 부분을 전혀 제외할 수 없다.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오주은은 애초 비중이 큰 역이 아니었다”면서 “박신양씨가 캐스팅되면서 이른바 ‘끼워 넣기’의 형식으로 배역이 결정됐다”고 전했다. 또한 박신양 역시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1천만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거액의 개런티를 받기로 한 것이 한 가지 ‘조건’이었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박신양이나 김정은, 또한 이동건과 오주은이 각자의 배역을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면 이같은 잡음은 더 크게 불거져 나왔을 것이다. 한때 소문으로 나돌았던 ‘배우들 간의 불화설’이 큰 여파 없이 잠잠해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식상한 판타지성 스토리에 50%를 넘나드는 시청률은 ‘심한’ 것 아니냐는 일부의 분석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결과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주인공 강태영의 ‘상상 속 시나리오’였음이 밝혀지며 이 같은 판타지가 오히려 개연성을 갖게 되기도 했다.
‘무리한 PPL’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드라마 초반 파리에서의 촬영분량에만 무려 9억원이 들어갔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작사의 입장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는 있다. 또한 그로 인해 ‘파리’는 젊은 여성들이 꿈꾸는 관광지로 다시금 부각됐다.
박신양 자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 떠올린 것도 바로 파리에서의 촬영장면이라고 한다. 바로 고성의 정취가 풍기는 ‘샤또 드 몽빌라젠느’ 호텔에서 박신양과 김정은이 멋지게 춤을 추던 장면이다. 오솔길을 타고 한참을 가면 눈앞에 그림처럼 호텔이 나타난다고 한다. 박신양은 “화면에선 오히려 덜 예쁘게 나와 안타깝다”며 “실제 촬영할 때 분위기는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배우가 아닌 인간 박신양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배우로 알려진 것도 이런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실제 박신양은 주변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성격이다. 집이 멀어 고생하는 매니저에게도 렌터카를 무상 대여해 쓰도록 하는 배려를 하고 있다. 결혼 당시 아내 백혜진씨에 대해 나돌았던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촬영장에서 가급적 가족 얘기는 잘 꺼내지 않지만 매니저를 통해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의 자상한 면면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박신양은 미국에 주로 머물고 있는 아내와 딸 승채와 ‘화상채팅’을 나누며 위안을 삼고 있다고 한다.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이 노래를 불러주는 ‘파자마 파티’ 촬영 때는 촬영장에 있던 인형들을 딸을 위해 챙겨가기도 했을 정도. 지난 6월말 한국에 들어온 부인 백혜진씨와 딸과는 이번에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매니저의 표현대로라면 액션 느와르 멜로 등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를 받아 ‘쌓아두고’ 있는 박신양은 앞으로 차분히 다음 작품을 고를 계획이다. 드라마의 열악한 제작여건에 대해 꼬집었던 그는 다음엔 영화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뮤지컬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고 주연해 내년쯤 선보일 계획이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가구매장도 의류 안경 등으로 범위를 넓혀 ‘브랜드 런칭’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해 준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박신양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자신도 ‘시청률 50% 나오는 드라마는 배우로서 평생 한번 만나기 힘들다’며 뿌듯해 하고 있는 눈치다.
“<약속>이나 <편지> 찍을 때도 이렇게 팬들의 반응이 뜨겁진 않았는데 요즘엔 10대 팬들이 집 앞에 찾아와서 기다리곤 해요.(웃음) 가수들한테도 그런 일은 뜸해졌다는데…(웃음). 모든 게 감사하고 고맙죠. 앞으로 할 일이 많이 생겼어요. 이젠 한기주를 버리고 박신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