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나게 망가진 ‘코미디의 여왕’
▲ 김선아 | ||
‘한국의 르네 젤위거’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살을 불린 것쯤은 그에겐 대수도 아니었다. 영화배우로 탄탄히 자리를 잡고 있던 터에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배우에겐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는 김선아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명실상부한 톱스타로 거듭났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모두 인기를 얻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삼순이’가 되기까지 김선아가 걸어온 연기세계를 살펴보면 그가 가진 연기내공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였던 시절.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아득하고 항상 울렁거렸다. 그 느낌이 좋았다. 거기까지 사랑이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버린 사랑을 흐느끼며 되뇌는 삼순이의 대사다.
묘하게도 ‘삼순(三旬)’의 국어사전 설명에는 ‘서른살’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드라마에서 역시 서른 살의 ‘김삼순’이 대한민국의 30대 여성들에게 불어넣어주고 있는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삼순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하는 김선아에게 열광하는 것은 대다수 여성팬들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사한 내용 중 “삼순이와 같은 여자친구를 사귀겠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남성들이 ‘노’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유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저 바라보기엔 재미있고 귀엽기도 하지만 ‘내 여자’로 만들기는 싫은 심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여성에게도 삼순이와 같은 모습이 조금씩은 숨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30대 여성이라면 이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삼순이를 리얼하게 연기하고 있는 김선아 또한 올해 서른 살이 되었다. 곧 드라마에서도 삼순이의 예쁜 사랑이 펼쳐지겠지만, 실제 김선아도 지금 사랑에 푹 빠져있다. 여배우들이 애인이 있다고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솔직한 성격의 김선아는 스스로 이러한 중대 사실을 고백해버렸다. 지난 5월26일 <내이름은 김삼순>의 제작발표회장에서 “남자친구와 같은 커플링을 끼고 있다”며 손에 낀 반지를 내보인 것. 물론 김원희 김정은 등 절친한 동료들 사이에선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일이었다. 얼마 전 결혼한 김원희는 방송에 출연해서 “선아의 남자친구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김선아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남자친구에 대해 해프닝이 섞인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난 4월1일 만우절을 핑계 삼아서였다. “선아… 남자친구 생겼어여… 수줍…”이라는 제목을 보고 놀랐던 팬들은 아래에 “이히히… 오늘은 만우절이랍니다”라고 덧붙인 것을 본 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선아가 배우로서 체중을 불린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보단 남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심지어 인터넷에 ‘김선아 몸무게’라는 검색어가 다 뜰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오히려 남자친구가 통통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떡 버티고 있으니 드라마에서 삼순이가 아무리 구박을 받고 서러워도 김선아는 즐겁기만 하지 않을까.
결코 만만치 않은 삼순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김선아표’ 연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물며 코미디 장르에서만큼은 여배우 중 ‘국내 최고’라 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서 그가 걸어온 연기세계를 한번 되돌아보자.
김선아는 96년 잡지모델을 시작해 98년 SBS <승부사>를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이후 MBC <그 해 겨울날의 풍경>(1998년), MBC <세상끝까지>(1998년), SBS <해바라기>(1999년) 등 줄곧 드라마에만 출연했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는 지난 2001년 MBC <황금시대>를 끝으로 영화로 진출하게 된다. 김선아는 2001년 영화 <예스터데이>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뒤, 2002년 <몽정기>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몽정기>는 하지원의 출세작이기도 한 <색즉시공>과 비슷한 시기에 맞붙어 동시에 흥행을 거두었다. 이 두 영화는 한국영화계에 본격적인 섹스코미디 영화의 붐을 몰고 오기도 했다. <몽정기>에서 김선아는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생 ‘유리’로 등장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섹시한 이미지와 건강미, 코믹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남성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지난 5월26일 <내이름은 김삼순> 제작발표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삼순’역의 김선아, ‘진헌’역의 현빈, ‘희진’역의 려원, ‘헨리 킴’역의 다니엘 헤니. | ||
영화계에서 김선아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사랑에 대한 정의, 그걸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비유가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사랑을 하면서도 한눈을 팔지만 여자는 한 번 사랑하면 그 사랑에 충실한다. 남자는 섹스가 끝난 순간 여자를 바꾸고 싶어하지만 여자의 사랑은 섹스가 끝난 순간부터 증가한다.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믿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의 힘을 갖고 있지만, 때로 우리의 마음에 상처 한 조각을 남기고 떠난다. 특히 남성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반성해야 한다.”
김선아는 특히 ‘여자들의 얘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
드라마 속 삼순처럼, 김선아 역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두 명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혼자 술을 마실 때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나 따뜻한 얘기를 건네주거나, 사랑에 아파할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들에서 김선아의 연기는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김선아라는 배우의 매력은 화면 밖에서 더 눈에 띈다. 그는 동료배우들 사이에서 의리 있고 인정 많고 인간성 좋은 배우로 소문나 있다. 술자리에서는 끝까지 남아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촬영장에서도 힘든 기색 없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앞장선다. 일명 ‘3K’로 뭉친 김원희, 김정은과는 ‘평생 동지’로 남기로 했단다.
언젠가 연예인들이 제일 많이 모인다는 시상식장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김선아는 오랜만에 만났는지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박경림을 보자 멀리서 뛰어와 호들갑스럽게 아는 척을 했다. 당시 처음 본 기자에게도 스스럼없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며 속으로 남다른 친근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항상 지금처럼 ‘행복 비타민’이 차고 넘치는 건강한 연기자, 김선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