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바보 아니라면 민주당 가지 않을 것”
▲ 최근 중국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오는 26일 재보선에 ‘올인’하지 않겠다며 남은 임기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문 의장이 4·2 전당대회에서 여당의 ‘선장’으로 오른 지도 어느덧 6개월여. 그동안 4·30 재보선 참패와 당내 개혁-실용 노선 간의 갈등 등으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앞날이 평탄해보이지도 않는다. 당장 10월26일 치러지는 재·보선부터 걱정이다.
최근 그는 재·보선에 “올인 할 생각은 없다”며 “남은 임기(1년6개월)를 다 채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혹시 모를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요즘 그가 즐겨 쓰는 말 가운데 ‘호시우행’(虎視牛行)이 있다. 호랑이의 눈으로 ‘또박또박’ 바라보고, 소걸음처럼 ‘뚜벅뚜벅’ 걷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이다. 그런 문 의장을 지난 7일 <일요신문>이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만났다.
―올해 안에 북한을 방문해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겠다고 했는데.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있었나.
▲청와대와 조율한 적은 없다. 다만 지난 9월에 6자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이 채택됐을 때 ‘북한에 한번 가겠다’고 했다. 청와대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남북화해협력위원회, 국정원까지 다 얘기해 놨다.
―방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면담할 계획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수장이고, 나는 대한민국 집권당 대표이기 때문에 당연히 면담이 이뤄져야 한다. 내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지금은 호시우행(虎視牛行)밖에 묘책이 없다’고 했는데…. 호시우행의 묘책이란 무엇인가.
▲호시우행은 어떠한 말이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의 목표를 향해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말은 여덟 자로 요약이 된다. 호랑이 눈처럼 ‘또박또박’ 바라보고, 소걸음처럼 ‘뚜벅뚜벅’ 가겠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정한 목표를 향해서 가겠다는 것이다. 별다른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취임 6개월 기자회견에서 ‘조기전당대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는 26일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해도 당 지도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우선 우리가 완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참패하면 (당 지도부가) 모두 그만두겠다고 할 만큼 큰 선거는 아니다. 대선이나 총선이라면 ‘다 걸기’(올인)를 할 만하다. 하지만 네 곳의 재·보선 결과를 놓고 ‘다 걸기’를 한다면, 재·보선이 있을 때마다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해야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재·보선에서 당은 어떤 지원을 할 계획인가. 특히 ‘적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출마하는데 당의 역량을 집중할 생각도 있나.
▲오히려 이강철 후보가 중앙당이 몰려와서 지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강철 후보는 제발 오지 말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거기다 무슨 지원을 하겠는가. 특정 지역에만 전략적으로 집중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어느 쪽이라도 우리는 공평하게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우린 몽땅 다 걸진 않겠다는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기 당 복귀를 반대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렇다면 당 복귀 시점은 언제쯤이 좋다고 보는가.
▲그것은 ‘모범답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다. 평안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못하지 않나. 두 번째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구상이다. 장관을 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결정하면 돌아와야 한다. 세 번째는 복귀하고 싶지 않지만, 당에서 강하게 복귀를 원할 때이다. 네 번째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만약 대권에 뜻이 있는 분들이라면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대통령의 구상은 물어보지 않았고, 국민의 공감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다만 본인들이 ‘당분간’ 장관 일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당분간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복귀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할 일을 마무리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에서 ‘복귀 하세요’라고 할 때도 아니다. 이 두 가지는 합의가 됐다. 그래서 당분간 복귀는 없다.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만 충족돼도 복귀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거나, 대통령이 그만 당으로 돌아가라면 그냥 돌아오는 것이다.
―‘여당이 이렇게 가다가는 분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여당 분당론’이 불거지기도 하는데.
▲선거구가 개편돼서 이해가 얽혔을 때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그 말의 실체가 없다. 우리 심정에서 분당을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나가고 싶다면 말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 차기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 ||
▲순간순간 당론과 다르다고 해서 탈당하면 모두 탈당해야 한다. 매일 탈당하고 분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탈당해야 한다. 이를테면 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당론은 형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나도 탈당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괜한 우려다. 목소리가 다른 것은 민주정당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제안했다가 ‘일시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는 연정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선 연정에 대한 첫 구상을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비서진에서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비서들이 얘기한다고 해서 듣는 대통령이 아니다. 혹시 바깥에 있는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이 그렇게 제안했다면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연정에 대해선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당선자 시절, 정권 인수위 시절, 국회 나와서 연설할 때 항상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견해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색깔이 다른데 어떻게 연정을 하나 걱정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연정은 당 대 당으로 통합하는 게 아니다. 야당은 정권 말기에 거국내국 하라고 주장하더니, 요즘은 말을 못한다. 연정을 반대했으니 못한다. 거국내각이라는 게 연정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연정 반대론엔 문제가 있다.
―민주당이나 민노당과 소연정할 의향은 여전한가.
▲정책과 사안에 따라 공조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책 공조는 한나라당과도 해야 한다. 당장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도 그렇다. 민주당이나 민노당하고도 그때그때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반대하고 있다. 당 대 당 통합이 아니다. 연정은 사안별 정책공조에 가까운 것이다. 일본과 독일도 그렇게 하지 않나. 일본은 자민당과 공명당이 공천 연합도 했다. 그 같은 외국 사례를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의장은 지난 2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국민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합당엔 시너지 효과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절차적으로 투명하게 해야 한다. 각 당에서 위임받은 사람들이 협상해야지, 밀실에서 대표끼리 만나서 논의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야합이 된다. 그런 상대로 민주당이 가장 적합하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동근생’(同根生·같은 뿌리에서 나옴)이다. 개혁성에서도 다를 게 없다.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점, 뿌리가 같다는 점, 여기에 같이 대통령 선거를 치러 현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아주 닮았다.
―고건 전 총리가 차기 대선의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 고 전 총리를 영입하려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또 일각에선 중부권신당과 민주당이 연합해서 고 전 총리를 영입하려 한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내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중부권신당과 민주당이 고건씨를 모시든 뭘 하든 그들의 얘기고, 그들의 잔치다. 우리가 얘기할 게 아니다. 그리고 고건씨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민주당 후보가 되겠다고 하겠나. (고 전 총리도 민주당 영입설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구렁텅이로 빠지는 길인데 대통령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길로 가겠나.
―그런데 여당이 차기 대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장관, 추미애 전 의원 등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것은 (여당의) 실무진에게 물어봐라. 나는 그런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다. 아직 2년 이상 남은 대통령 선거를 여기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는 얘기할 수 있다. 당내에서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영입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아직은 후보가 많이 있다. (그렇게 하면) 후보들의 사기가 꺾인다.
―그렇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현재 여당 내에서 거론되는 후보군으로 치르겠다는 것인가.
▲후보의 30% 이상을 전략 공천할 수 있기 때문에…(가능하다). 하지만 벌써 전략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때 가서 (전략공천) 하면 되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지금 얘기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남의 당 후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세 분 다 훌륭한 분들이지만, 세 분 다 대통령 자격으론 결정적 흠도 있는 분들이고.
―당·정·청의 여권 핵심 수뇌부 12명이 모이는 ‘12인회’에 대해 옥상옥이라며 불필요론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그 자리는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공식 의결기구도 아니다. 당 정책 전반을 조율하는 ‘연합사령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컨트롤 타워’라고 할까. 매주 한 번씩 저녁 먹으면서 만난다. 최근엔 ‘소주세 인상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거기서 정치 얘기는 안한다. 당·정·청 간의 첨예한 정책 문제를 얘기한다. 여당과 정부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조율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차기 정부에서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비공개일 뿐 비밀 모임이 아니다.
▲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 직후 문희상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문 의장은 노 대통령의 연정론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려면 그에 앞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우선 지역 구도를 타파할 만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로 개편되면 한나라당이 희생될 테니 대통령도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강도 있게 피력한 것뿐이다. 그런 의지를 표현한 것이지, 대통령 그만두겠다고만 말한 것은 아니다.
―안기부 도청문건 사건이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는데, 도청 테이프 공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개되어야 원칙이다. 그런데 현행법으로는 안 되니까 특별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난 지금도 국민의정부에서 도청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믿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도청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도청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내가 (국정원에) 재임할 때 미림팀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난 김은성(전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이 절대 도청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불가사의하다.
―올해 국감을 ‘삼성 국감’이라고 할 정도로 삼성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
▲삼성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다. 국가는 기업을 활성화해서 경제를 살려야 할 책무가 있다. 또 하나의 원칙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불문하고 공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이 가장 기본 원칙이다. 삼성도 법률을 지켜야 한다. 법을 잘 안 지키면 응징해야 한다. 삼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때려서도 안 되지만 삼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봐줘서도 안 된다.
―당 의장에 대해 ‘너무 힘이 없다’ ‘청와대 눈치를 많이 본다’는 등 지도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하니 내 뜻대로 잘 됐다고 본다. 과거 제왕적 대통령 시절에 여당 대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 재미에 여당 대표를 했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을 권력의 도구로 부렸다. 그런데 그 시대는 지났다. 여당 대표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것 아니냐. 이게 바람직한 것이다. 만일 그렇게 봤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간혹 지금도 여당 대표하면 힘이 있는 줄 알고 나한테 기대하고 요구하는데 그것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못 읽은 것이다. 내가 눈치를 봐야 한다면 (전당대회에서) 나를 선출해준 당원들과 국민이다. 당원의 명령은 대통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점수만 따려고 한다면 대통령과 매일 한 판씩 하면 된다. 국민들은 박수치겠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차기 대선에서 출마할 뜻이 있나.
▲현재로선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