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광 투자자 대신 ‘냉혹한 사업가’ 입성…‘라이프치히’ 분데스리가의 이단아로
임대 사업으로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구단은 러시아 억만장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있는 FC 첼시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제는 사뭇 양상이 달라진 듯하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많은 기업가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축구 구단에 투자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현재 축구계는 새로운 상업화 시대를 맞고 있으며, 구단이 하나의 기업처럼 되면서 각종 수익 모델도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자본의 힘’이다. <포쿠스>는 이런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는 축구 구단주들의 면면과 함께 급변하고 있는 축구 구단의 환경을 소개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VB)는 독일의 분데스리가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구단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3억 6500만 유로(약 4500억 원). 그야말로 재정이 탄탄한 하나의 기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셈이다.
현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있는 회장은 한스-요아힘 바츠케다. 그의 전직은 다름 아닌 사업가였다. 작업보호복 및 소방복을 제작하는 회사를 창업했던 바츠케는 2005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구단주로 취임한 후 오로지 축구단 운영에만 열중하고 있다.
사업가의 수완 덕분이었을까. 그가 취임한 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수익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최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3억 7600만 유로(약 4700억 원)의 기록적인 수익을 발표하면서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사실 이런 높은 수익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TV 중계권료, 스폰서, 투자금 등 사방에서 돈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다 건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롭게 바뀐 프리미어리그의 갑부 구단주들이 선수를 사들이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가령 지난 여름에는 도르트문트의 미드필더인 일카이 귄도간이 약 3000만 유로(약 375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는가 하면, 헨리크 미키타리안은 최소 4000만 유로(약 500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겼다. 이 성과에 바츠케 회장은 “물이 차올라 배를 띄웠다”고 말하면서 만족해했다.
이처럼 영국에서 독일로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자 새로운 형태의 투자자들도 축구 구단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은행가, 사업가, 펀드매니저, 스포츠 컨소시엄 등이 그랬다. 가장 최근에는 AC 밀란을 사들인 중국의 컨소시엄이 대표적인 예다. 1899년 창단된 유서깊은 명문 구단인 AC 밀란을 매입한 것은 중오우체육투자관리공사가 주축을 이루고 중국의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구성한 컨소시엄인 ‘시노-유럽 스포츠 매니지먼트’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양측은 AC 밀란의 가치를 7억 4000만 유로(약 9000억 원)로 평가했었다.
중국 자본의 손에 넘어간 것은 라이벌 구단인 인터밀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중국의 가전유통업체인 ‘쑤닝’이 인터밀란 지분의 70%를 매입했으며, 당시 인수 금액은 2억 7000만 유로(약 3370억 원)였다.
사정이 이러니 과거 함부르크 SV의 구단주였던 베른트 호프만의 슬로건이자 구단의 목표였던 “파산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좋은 경기 성적이다”라는 말도 무색하게 됐다. 이제는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투자자들이 얼마나 경영을 잘하는지가 파산을 피할 수 있는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이와 관련, 베렌베르크 은행의 경제학자인 외른 크비트차우는 “이제 축구는 새로운 경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처음 독일 선수들의 유니폼에 광고가 부착됐던 7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부터 축구는 점차 광고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9년 축구산업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같은 해 창단한 신생 구단인 RB 라이프치히를 통해서다. RB 라이프치히의 실질적인 구단주는 에너지드링크 기업인 레드불이다. 2부리그에 등록됐던 RB 라이프치히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실력있는 선수들을 하나둘 영입해 점차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창단 일곱 시즌만인 지난 5월에는 마침내 당당하게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로 승격됐다. 그야말로 빠른 성장세였다. 이에 크비트차우는 “RB 라이프치히는 단지 스포츠 경기만으로 수익을 거두고 않는다. 또한 구단을 기업의 홍보 도구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구단 자체가 기업의 광고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해서 창단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구단이 점차 상업화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분데스리가 구단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현재 분데스리가에 등록된 구단 가운데 FSV 마인츠와 SV 다름슈타트98, 단 두 개의 구단만이 시민 구단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구단들은 모두 KG(합자회사), GmbH(유한책임회사), AG(주식회사) 등의 형태로 대자본에 매각된 상태다. 이에 대해 크비트차우는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90년대 중반에는 구단의 매출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구단을 비영리 단체로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축구단의 구조가 기업처럼 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예컨대 현재 살케04 축구단에는 재무 부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현재 이곳에는 경리부터 회계사까지 모두 열여섯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체육전문학교나 대학교에는 스포츠경제학자를 양성하는 학과도 신설됐으며, 졸업생들은 모두 스포츠 관련 특허권, 상품판매, 재무, 회계 분야의 전문가들이 된다.
실제 유럽의 주요 구단들이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유럽의 상위권에 속하는 명문 구단들은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공룡 기업과 다를 바 없다. 가령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우를 보자. 2014년 알리안츠 생명보험그룹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한 FC 바이에른은 당시 알리안츠로부터 1억 1000만 유로(약 1300억 원)의 투자를 받았으며, 이는 8.33%의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계약을 체결한 후 FC 바이에른의 가치는 13억 2000만 유로(약 1조 6000억 원)로 치솟았으며, 이는 독일의 최대 건설회사인 ‘빌핑거’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단, 빌핑거의 직원수가 3만 9000명이란 점을 생각하면 FC바이에른의 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거대 기업이 된 FC 바이에른의 수익이 지난 일곱 시즌 내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가령 2008~09 시즌의 수익은 150만 유로(약 19억 원)에 불과했지만, 2104~15 시즌에는 3140만 유로(약 400억 원)로 급상승했다.
가장 큰 수입원은 예나 지금이나 TV 중계권료다. 여기에 분데스리가의 경우 2017~18 시즌부터 TV 중계권료를 85% 인상할 계획이며, 이렇게 될 경우 매년 14억 유로(약 1조 7000억 원)에 달하게 된다. 이것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프리미어리그에 비하면 결코 많은 것도 아니다. 맨유, 아스널, 첼시 등 인기 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경우에는 33억 유로(약 4조 원)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단들은 해외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동아시아 등 바다 건너에서 친선 경기를 종종 갖는 것도, 그리고 중국어나 아랍어로 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쾰른스포츠전문학교의 스포츠경제경영학과 교수인 세바스티안 울리히는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은 수백만 달러의 잠재적 가치가 있다. 수십 억은 아니더라도 수백만 명의 잠재적인 축구 팬들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홈팬들을 상대로 한 수익이 정체기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독일, 영국, 스페인의 축구 산업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오늘날 축구 구단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넉넉해졌으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서 끊임없이 수익을 내고 있다. 이를테면 FC 바이에른의 전용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는 관중들이 막간을 이용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게임회사인 EA와 손을 잡았으며, 도르트문트는 미국의 급식회사인 ‘아라마크’에게 팔았던 매점 운영권을 지난 2015년 다시 사들인 후 소시지, 맥주 등을 판매해 부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구단들이 가장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업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선수를 임대하는 사업이다. 임대 사업으로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구단은 러시아 억만장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있는 FC 첼시다. 현재 51명의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첼시는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스물여섯 명을 다른 구단에 임대한 상태다. 현재 이 선수들의 가치는 총 약 1억 2000만 유로(약 1500억 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쯤되면 첼시가 선수들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축구 투자가들은 더 이상 오로지 축구에만 미쳐있는 축구광들이 아니다. 이제는 냉혹한 사업가들이 대부분이다. 가령 센시가 가문이 구단주였던 AS 로마는 지난 2011년 재정 악화 끝에 결국 미국의 투자은행 사업가인 토마스 베네디토에게 구단을 넘겼으며, 현재 베네디토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제임스 팔로타가 구단주로 취임해있다. 그런가 하면 FC 리버풀은 2010년 미국 펜웨이 스포츠그룹이 3억 파운드(약 4000억 원)에 인수했으며, 최근에는 다시 중국의 국영금융기업인 광다그룹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스널은 2011년 미국의 억만장자인 스탠리 크뢴케가 인수했다.
축구 구단에 대한 아랍 부호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2008년 맨시티를 인수한 아랍에미레이트 부총리 겸 아부다비 왕자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 대표적이며, 이밖에 카타르 국왕인 타밈 빈 하미드 알 타니도 현재 파리 생제르망을 소유하고 있는 구단주다.
<포쿠스>는 사업가 출신인 이런 새로운 구단주들은 어쩌면 축구 본연의 모습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기 결과를 주가처럼 해석하는 철저한 사업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구단주들이 꼭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포쿠스>는 덧붙였다. 이들이 어설프게 축구 경기에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