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두려워하는 고령자들 ‘합장’ 선택…1년에 두세 번 교류하다가 서로 장례 치러줘
일본의 인구수는 1억 2200만 명으로 세계 12위다. 그러나 일찍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든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농업 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67세이고, 자위대원은 평균 36세다. 의료업계에서는 간병인의 나이가 환자의 나이와 몇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고독한 사람은 늘고 있다. 일본 고령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고독사, 고립사일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일본 사회를 갉아 먹고 있어 2021년 일본 정부는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혈연이 아닌 묘지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겨나고 있다.
“같은 무덤에 들어갈 사람인데, 얼굴 정도는 아는 게 좋겠다 싶어 참석하게 됐다.” 고베시에 사는 70대 여성 A 씨는 최근 또래 30여 명과 점심 모임을 했다. 고향도 살아온 인생도 제각각이지만, 삶을 마감하게 되면 화장한 유골이 같은 무덤에 합장될 사이다. 그래서 서로를 ‘묘우’라 부른다.
NHK에 의하면, 효고현의 고령자 생활협동조합(생협)은 고베시에만 두 곳의 합장묘를 운영 중이다. 생전 자신의 묫자리를 이곳의 합장묘로 정한 계약자는 256명에 이른다. 계약자들은 “죽고 나서 무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돼 좋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등을 이유로 합장묘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액은 납골료와 공양료 등을 포함해 1인당 15만~20만 엔(약 135만~178만 원)이며, 사후 유지비는 따로 들지 않는다.
생협 측은 “같은 무덤에 누울 이들끼리 미리 만나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아 10년 전부터 점심 모임을 열고 있다”고 밝혔다. 연 2~3회 개최하고 있으며, 참석 여부는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처음에는 참석률이 절반 정도였으나 지금은 90%까지 높아졌고, 모임마다 30명이 넘게 온다.
2022년부터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해온 70대 여성은 “다 같이 모여 맛있는 걸 먹고 ‘또 보자’며 헤어진다. 묘우는 담백한 사이로 서로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지 않아 편하다”고 전했다. 처음으로 참석한 70대 남성은 “모르는 사람과 식사하면 긴장해서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인데, 합장묘가 이어준 인연이란 생각에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 또한 묘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본 시니어 생활문화연구소의 고타니 미도리 대표는 “흔히 혈연관계가 아닌 남남끼리 무덤에 들어간다고 하면 거부감이 드는 고령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생면부지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생전 교류가 있으면 안심감, 안정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고타니 대표는 “혈연을 넘어 무덤에 함께 들어간다는 유대감이 노인들의 삶을 느슨하게나마 지탱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합장묘를 계약한 60대 여성은 “마지막 누울 자리를 마련해 한시름 놓았다”며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묘우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모르는 사람과 합장해야 하므로 생전 친하게 지내려는 묘우가 있는가 하면,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같은 무덤에 합장하기로 약속한 묘우도 있다. 후자는 대체로 생활환경이나 살아온 배경이 비슷한 경우다. 일례로 도치기현 나스초에 위치한 고령자용 주택은 입주자가 이용할 수 있는 합장묘가 설치돼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합장묘나 장례식 시설을 설치하려는 고령자용 주택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옛날이라면 고령자 시설 내 장례식이나 무덤 관련 이야기는 금기였지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인 종활(終活)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가 됐다.
최근에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합장묘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에 단체가 발 벗고 나서 회원을 모으고 교류행사를 기획하는 일도 흔하다.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NPO법인 엔딩센터가 대표적으로, 벚꽃장 묘지에 들어갈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 교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벚꽃장 묘지란 벚나무를 중심으로 만든 정원형태의 공동묘지로, 여러 사람의 유골이 벚나무 아래 함께 묻힌다. 후손이 따로 무덤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수목장이다.
엔딩센터가 개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우리집’이라는 공간은 묘우들을 위한 독채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언제든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먼저 간 묘우를 그리워하며 서로의 건강상태를 묻기도 한다. 70대의 한 여성은 “무덤으로 연결된 친구라서 병이라든지 죽음이라든지 다른 데서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엔딩센터의 이노우에 하루요 이사장은 “일본 가족 중 가장 많은 형태가 단독세대(1인 가구)다. 예전처럼 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서 절에 모시는 엄격한 절차의 의식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돕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3세대 동거가 감소하면서 현재의 손자 세대들 대부분은 조부모를 가족이 아닌 친척 정도로 인식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가족의 종적 유대에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져 이제는 자식이나 손자가 있어도 합장묘를 택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자식과 손자가 성묘를 와줄까’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인생을 더 잘 살고 싶다’라는 쪽으로 고령자의 의식이 변화한 것도 합장묘가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